무엇이 멈추게 하는가? 동서분단

분단의 흔적을 음미해 보기(후편)

by 헨리 월터

전편에 이어서 계속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여담으로 베를린 장벽이 있었던 브란덴부르크 문과 동독의 비밀 정보기구였던 슈타지 관련 내용은 따로 분리하였다.)


3. 눈물의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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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셋째날 오전에 방문한 눈물의 궁전 외관과 프리드리히슈트라세 역

베를린 세 번째 날에 찾은 곳 중 하나로, 7년 전에 찾았던 홀로코스트 추모관과 마찬가지로 다른 일반적인 박물관들과 다르게 무료 입장이었다. 독일에 거주 중인 지인으로부터 이곳을 추천받았을 때, 처음에는 막연하게 독일의 별궁 정도로만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막상 이곳을 방문하였을 때 그것은 오판이었다. 이곳은 냉전과 분단을 상징하는 베를린 내의 공간 중 하나로, 1962년부터 1989년까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나누던 경계선과도 같았다. 완전히 적대적으로 바뀌어 상호 왕래가 통제된 남북한과 다르게, 동서로 분단된 독일 내에서 사람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서로의 공간으로 왕래할 수 있었다.


20250613_120724.jpg 눈물의 궁전 전시물 중 분단을 확인할 수 있는 단면. 동독과 서독은 각자의 마르크를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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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노래하던 사람들은 당국으로부터 테러리스트라는 오명을 쓰는 것도 감수해야 하였다.

그렇지만 이와 같이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약은 뒤따랐다. 동에서든 서에서든 화폐는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다 쓰고 나와야 했고, 일간지나 신문 등과 같은 기록물의 반입은 물론이고 반출까지 모두 금지되었다. 그리고 이곳은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벗어나려는 목적에서 동독에 거주하던 많은 시민들과 예술인들이 자유를 찾아 이용하는 공간이기도 하였단다. 당연하게도 동독 정부에서는 자유를 부르짖는 그들에게 테러리스트라는 틀을 씌우며 억압적으로 사회를 통제하고자 하였다.


20250613_122157.jpg 통일된 독일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 컷

이와 같은 통제에도 불구하고 동독 정권은 무너졌고, 동서로 분단되었던 독일은 다시 하나의 나라가 되었다.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염원하던 자유와 하나된 나라가 찾아왔지만, 동시에 네오나치의 흥기 등의 새 문제에 허덕이고 있는 상태다. 과연 이 시점에서 눈물의 궁전은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의 한국에는 어떤 가치를 잔잔하게 들려줄 수 있을까? 전시실을 나와 점심을 먹으면서 그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4. 베를린 장벽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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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시절 검문소가 있었던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조금 더 걷다 보면 베를린 장벽이 있었던 흔적을 마주할 수 있다.
20250614_153636.jpg 멀리서 바라본 옛 장벽의 모습. 장벽 앞의 풀밭은 원래 제 3제국 시기의 정보기구인 게슈타포가 있었지만, 전후 철거되었다.

분단 국가의 상징을 보여주는 검문소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조금 더 걷다 보면 칙칙한 느낌을 풍기는 콘크리트 벽 하나가 관람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바로 동서 분단의 상징인 옛 베를린 장벽의 흔적이다. 현재 장벽의 뒷면에는 나치 정권의 만행을 알리는 각종 설명 패널이 붙어 있었는데, 왼쪽부터 시작해서 오른쪽 끝으로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 설명 패널을 모두 본 후 뒤를 돌아보면 지금은 역사관으로 쓰이는 건물이 하나 있다. 그렇지만 이곳은 사실 독일 제 3제국 시기, 즉 나치 정권이 집권한 시기의 정보기구인 게슈타포의 본부가 있었던 곳이다. 게슈타포는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철거되면서 사라졌고, 게슈타포가 지니고 있었던 정보기구로서의 역할과 위상은 슈타지에게로 넘어갔다. (여담으로 쾰른 지부 게슈타포는 현재 일드하우스라는 이름의 기록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20250613_154349.jpg 포츠다머 광장에 전시되어 있었던 장벽의 흔적. 중간마다 설명이 적혀 있고, 과거와 현재를 대조한 사진이 붙어 있었다.

장벽의 흔적은 단지 옛 게슈타포 터 앞에만 국한되지 않았고, 포츠다머 광장 내에서도 장벽의 잔해를 활용한 작은 야외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작은 전시에서는 오늘날 다양한 사람들의 왕래가 가능한 공간들이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장벽이 세워져 있었고, 자유를 억압하는 상징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통일의 상징과도 같았던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최종적으로 이루어졌던 시기는 1989년이 아닌 1994년이라고 한다. 즉 2000년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지금과 같은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가며 설명을 읽을 때 온전히 이해된 것은 아니었고, 지금에 와서 기억을 더듬으려니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지금의 거리들도 알고보면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갑갑하고 삭막하였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5. 동독 생활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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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슈프레 강변에 있었고, 이날 갑작스럽게 소나기가 내렸다.

말 그대로 구 동독 시절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박물관이다. 이곳은 베를린 시티패스 혜택에 적용된 곳은 아니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렇지만 다른 박물관들과 달리 영업 시간이 길었고, 냉전 시기 동독 사람들에게 일상 생활이었던 순간을 엿볼 수 있었던 점에서 흥미로운 곳이었다. 7년 전에 찾았을 때 분단의 상징을 나타내는 공간으로 체크포인트 찰리를 찾았다면, 이번 여행에서는 냉전 시기 동독에서의 생활 단면을 음미해 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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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이 캐비닛의 문을 열어젖히면 전시물과 설명이 나오는 형태(좌)와 선전물을 패널 형태로 만들어서 벽면에 부착한 형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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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유치원의 모습을 복원한 형태(좌)와 당시의 여가생활 중 하나를 짐작하게 한 전시물(우) 일부 전시물은 관람객이 직접 운용하면서 잠시나마 체험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날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고, 휴대전화 배터리는 거의 방전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베를린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에 꽂혀서 어떻게든 사진들을 최대한 담아보려고 애를 썼다. 이 박물관의 전시 형태는 일반적으로 캐비닛에 있는 크고 작은 문을 열었을 때 관람객이 내부의 전시물과 함께 설명문을 볼 수 있게 설계된 것들이 많았다. 그 외에는 당시의 생활 공간을 재연해 놓았거나, 벽면에 포스터를 부착함으로써 선전을 통한 사회 통제가 가능하였던 시대를 짐작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전시물이 현재의 중년 및 노년층 사람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의 단면이었을 수 있고, 그것을 전혀 겪지 않고 자랐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호기심과 흥미의 대상이 되기 충분하였다.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그러한 단면이 이 박물관 내에서는 적어도 실천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박물관이 싫다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을 것이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홍역을 치를 것이 명약관화다.)

막상 하나씩 열어보면서 느낀 점은 이데올로기만 다를 뿐 역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본질적으로는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서 체제 경쟁을 비롯한 온작 냉혹한 현실의 벽이 존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는 구성원 누구나 평화롭게 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전후 경제 발전이 있을 때 사회주의를 채택한 나라들의 경제 성장은 결코 업신여김을 받아도 될 수준은 아니었다. 물론 오늘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적인 가치와 현실 간 모순은 좁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상태에서 많은 나라들의 체제가 붕괴되거나, 개혁의 일환으로 시장경제를 일부 받아들이는 식으로 변화를 선택하였다.


그렇다면 이제 그 다음은 무엇일까? 냉전 체제가 종식된 것이 곧 모든 사회 문제의 해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빈부의 차이는 존속하고 있고, 그에 따라 사회적 약자들이 소외되는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제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그리고 사회주의는 정말 종언을 고하였다고 볼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맞다면 그 이후에 나올 사회 사상은 무엇이고, 사회주의의 실수를 넘을 수 있을까? 전시를 관람한 후 슈프레 강변을 따라 숙소로 걸으면서도 나만의 상상은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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