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인연을 통해 들은 그들의 속사정
여행 중에서 가장 기억에 강하게 남는 묘미를 꼽는다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개인에 따라 국내와는 다른 이색적인 풍경이나 깨끗한 거리, 맛있는 음식과 술이 있는 곳, 혹은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넘치는 문화 공간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좋지만, 나는 현지인을 통해 그 나라의 속사정을 들어보는 순간이 가장 잊기 어렵다. 특히 지난 여행에서 가늘게 연결되었던 옛 인연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말이나 글 몇 줄로는 표현하기 참 애매하다.
7년 전 겨울, 나는 도르트문트행 버스에서 나와 7살 차이가 나는 리처드를 처음 만났다. 연을 맺게 된 계기는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버스를 탈 때 내 옆자리에 앉았던 승객이었고, 휴게소에 잠시 쉬던 중 길어지는 휴식 시간 속에서 서로 말문을 텄던 것이 시작이었다. 우리는 헤어지기 전에 서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교환한 후 간헐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여행 계획이 확정된 후 그를 베를린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베를린에서 머문 지 사흘째 되는 날의 초저녁, 나는 그를 프리드리히슈트라셰 역 근처의 두스만에서 만났다. 나는 그로부터 저녁 메뉴로 돼지 목살로 조리한 스테이크를 한 접시 대접받았고, 그의 입을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중 기억에 나는 이야기들 몇 편을 꺼내면 다음과 같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에 따라 느끼는 온도차가 날 수도 있고, 정확한 사실과는 다를 수 있음.)
리처드가 나에게 물었던 질문 중 제일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자신이 배가 조금 나왔는데 한국 사람들에게는 돼지 소리를 들을까 걱정이란다. 나는 훤칠한 키 덕분에 전혀 그럴 일 없다고 하면서도 한국에서 뚱뚱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를 물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의 대부분은 잘 쳐주더라도 과체중이거나 아주 약한 편이란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믿기지 않아서 웃었는데, 남은 기간 독일에 머무는 동안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정말 한국인들의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체구들이 꽤 많이 보였으니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대체로 코골이가 심하게 나서 제대로 잠들지 못한 날이 많았다. 지금 시점에서 복기한다면 아마 식단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밀가루 음식에 고단백과 고지방이 일상이니 인종을 막론하고 살이 붙을 수밖에 없다.
내가 리처드에게 병원비에 대해 물어보았을 때 그의 대답은 "공짜인데?"였다. 그의 대답에 내가 부러워하자 그는 전혀 부러워할 것이 못 된다고 하였다. 일단 심하게 부상을 당하였을 때, 비싼 보험비를 감수해야 하고, 병원에 가더라도 자신의 주치의가 빠른 시일 내로 치료해주는 방식이 아니란다. 응급실 행이 아닌 이상, 그냥 단순히 진통제 몇일분 혹은 통증을 완화시켜 주는 연고 등을 처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며칠 내로 나을 가벼운 질병도 완치까지 3~4주 가량 소요된단다. 리처드가 들려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참 다른 의미에서 그들도 단점을 겪고 있음을 생각할 수 있었다. 동시에 한국의 의료 시스템 혜택을 받는다는 점이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였다. 한국에서는 병원비와 약값을 걱정해야 하지만, 적어도 아프면 병원에 가서 N일 분량의 처방전을 받고 빠른 시일 내에 나을 수 있으니까.
독일에서 신호등을 건널 때 일반적인 패턴은 다음과 같다. 빨간 불일때는 "뚜우 뚜우" 식으로 느리게 소리가 반복된다면 파란 불일 때는 "뚜뚜뚜뚜" 식으로 빨라진다. 그리고 한국에서 파란불이 깜박거리다 빨간불이 될 때 이곳은 그런 것이 없이 빨간불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신호등과의 다른 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바로 보행자를 위한 선이 전혀 그어져 있지 않고, 신호가 불일치해서 걸을 때 골탕을 먹는다는 점도 포함된다. 물론 신호등의 신호가 잘 맞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리처드도 공감하는 눈치였고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점에 대해서는 잘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불만이란다. 독일에서 신호등으로 골탕을 먹었던 나는 국내의 신호등과 비교할 수 있었는데, 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한국의 신호 체계 속에서 오히려 교통사고의 위험이 적을 것으로 생각될 정도였다.
이러한 독일의 특징에 대해 내가 놀람과 공감을 느낀 것과는 별도로, 리처드가 한국에 관심을 가졌던 지점은 지난 연말의 계엄과 올해의 정권 교체였다. 그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가 해 준 이야기에 따르면 독일은 근래에 치러졌던 선거에서 극우 성향의 대안당이 약진하면서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단다. 오래도록 눌러둔 과거의 망령이 되살아나 사람들의 일상을 억압할 수 있음에 대한 우려였다. 그와 같은 환경 속의 리처드에게 한국의 사례는 아마 선망의 대상이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한국에서 시민들의 힘으로 지도자를 교체한 사례가 더 있음을 말해주었을 때 그는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어쩌면 잘 모르고 있어서 그렇지, 유럽의 현지 사람들도 정치의 무능에 대한 답답함은 물론이고 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부정적인 요소의 출현에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더라도 나는 외국 현지 사람들이 한국에 대한 환상을 강하게 품지 않기를 바란다. 현실 정치는 국경을 막론하고 참 풀기 힘든 숙제다. 그래서 환상이 크고 아름다운 만큼 받게 될 환멸감도 크고 치유 불가능한 수준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리처드와 나는 헤어졌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구체적인 일정을 다시 알려주겠다는 말로 재회를 기약하였다. 개인적으로 리처드와의 만남은 한국인들에게 잘 와닿지 않을 속사정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동시에 나는 숙소로 돌아오면서 한 가지를 곱씹어볼 수 있었다. 과연 나는 한국의 장단점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애정을 가지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과 관련 있는 모든 환상을 깨고 대하자는 나만의 철학과 별도로, 막상 그가 찾아왔을 때 나는 어떤 부분을 얼마나 잘 알려줄 수 있을지 답을 내리기 어렵다. 지금도 그날의 일이 떠오를 때면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이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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