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멈추게 하는가? : 시야 확장

브란덴부르크 문 주변을 걸으며

by 헨리 월터
20250613_131912.jpg 베를린의 랜드마크인 브란덴부르크 문을 정면으로 담은 모습

한국의 수도이자 세계적으로 알려진 곳 중 하나인 서울에서 랜드마크를 꼽는다고 한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은 광화문 광장의 모습을 꼽을 것이다. 그리고 독일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나 독일을 찾은 경험이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으로 브란덴부르크 문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브란덴부르크 문과 관련해서는 뒤편으로 장벽이 들어서 있었다가 철거되었던 사실이 국적을 막론하고 강하게 주목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만을 비추자니 놓치는 부분이 생각 외로 있다. 이 문은 1791년 만들어졌고, 이곳으로 군대가 개선하는 행사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베를린에서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1936년에는 홍보 포스터로서 문 위의 청동 조각상이 부각되는 시절도 있었다. 이제 그 주변의 모습을 한 꺼플씩 벗겨본다면 다음과 같다. (사족으로 나에게는 이 장소에서 추억을 상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시야를 더 넓히고 한국과 비교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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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덴부르크 문 뒤편으로 가면 3.18 광장이 나오고 그 역사적 흐름이 적혀 있다.

이제 문 뒤편으로 이동해 보자.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라면 광화문 뒤로 조선의 최대이자 가장 중요한 궁궐인 경복궁이 맞이하는 모습일 것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문 뒤로 나가면 넓게 트인 광장이 하나 나온다. 바로 3.18 광장이라는 곳이다. 우리 식으로 치면 광주의 5.18 광장을 연상하였을 때 꽤 유사하면서도 흥미로운 지점이 하나 나온다. 바로 제국 정부를 상대로 시민들이 저항한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1848년 3월에는 시민들이 이곳에서 제국 정부를 상대로 유혈 시위를 벌였고, 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18년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반전 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곳은 베를린을 동서로 가르는 장벽이 들어섰던 곳인 동시에 이곳에서 장벽이 허물어지는 방송이 생중계가 되었다. (참고로 분단을 상징하던 장벽이 붕괴되면서 재통일의 상징으로 남은 생중계 방송은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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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근처에 보였던 작은 추모 공간. 모두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다 희생된 사람들이다.
20180129_141058.jpg 2018년 1월 29일 찍었을 때의 모습. 같은 장소지만 다른 느낌이 물씬 든다.

여기서 눈을 돌려서 국회의사당이 있는 방향으로 천천히 이동해 보자. 사람들에게는 국회의사당에서 베를린 시내의 전경을 보는 것에 더 관심이 갈 것이다. 그렇지만 가다보면 중간에 십자가 표시로 된 조형을 발견할 수 있다. 무심코 지나치기 쉽겠지만 이 또한 분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공간 중 하나다. 바로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7년 전에도 이곳이 있었는데, 다시 찾았을 때는 해당 인물 사진도 첨부하는 등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아마 관련 정보가 추가로 더 제보되거나 슈타지 문서 연구 등 방법으로 보강된 결과일 것이다. 한국인들의 시선으로 치면 (목적을 떠나서) 탈북 도중에 이런저런 방법으로 붙잡혀 송환되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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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기념탑의 모습. 탑 위에서 멀리 바라보면 일직선으로 브란덴부르크 문과 연결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 뒤편에 선 상태에서 직진하면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한 전승기념탑이 나온다. 이 지점은 세계사 내용을 학습하였다면 한 번씩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즉 독일이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통일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프랑스와 전쟁하게 되었고,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승전 후 독일군은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해 개선하였고, 승전을 기념하면서 세운 탑이 오늘날 알고 있는 기념탑이다. 물론 현재의 위치는 설립 후 후대에 조금 옮겨진 결과라고 한다.


20250613_135133.jpg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

이제 베를린 장벽이 동서를 나누는 기준이었음을 생각하고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보자. 그곳은 오늘날 포츠다머 광장으로 불리는 곳으로 가는 길이다. 광장까지 가는 길에 두 가지의 흥미로운 지점이 보이는데, 그 중의 하나는 독일의 과거사 인식을 잘 보여주는 공간인 홀로코스트 추모관이다. 7년 전에는 체크포인트 찰리를 본 직후에 찾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단순히 거쳐가는 공간 정도에서 끝났다. 그렇지만 사실 이 차갑고 뻣뻣한 콘크리트 조형 속에 깊이 들어가서 걷다 보면 매우 흥미로운 곳임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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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추모관의 조형을 눈앞에서 보았을 때의 모습. 막상 들어가면 마치 미로 속에 갇힌 느낌을 주면서 공포감을 느낄 수도 있다. 사진은 2018년 1월 28일 찍은 것들이다.

홀로코스트 추모관에는 사진에서 보이듯 직육면체로 된 수백 개의 콘크리트 조형이 놓였는데, 크기가 모두 제각각이다. 즉 누구나 벤치삼아 걸터앉을 수 있는 작은 것에서부터 사람의 키보다 높은 형태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가 전혀 규칙적이지 않다. 막상 가장자리에서 보았을 때는 왜 이것을 설치한 것인지 감을 잡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지만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치 내가 미로에 갇힌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기 때문이다. 앞을 보다가 다른 사람을 피하거나 혹은 호기심에서 옆으로 가기를 반복하다 보면 내가 가려는 방향과 전혀 다른 곳으로 빠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묘지가 연상된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정체성을 상실한 제 3 제국의 모습, 혹은 사회 전체를 겨냥하여 죄책감을 자극하는 방법이라고도 한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위의 해석들은 모두 일견 타당해 보인다.


20250613_140727.jpg 홀로코스트 추모관에서 조금 더 올라가다 보면 주정부 사무소가 나온다. 내 눈에 비쳤던 건물은 헤센주 정부사무소였다.

다른 하나는 홀로코스트 추모관에서 조금 더 걷다 보면 확인할 수 있는데, 바로 눈앞에 비치고 있는 건물 몇 채가 그것이다. 이 건물들은 독일 내 주정부 사무소들로, 독일이 연방 체제의 공화국임을 알 수 있게 하는 지점 중 하나다. 적어도 나의 눈에 가장 잘 비쳤던 공간은 헤센이라고 적힌 주정부 사무소 단 한 곳이었다. 그렇지만 나중에 구글 지도로 확인해 보니 헤센 주변에는 삭소니와 라인란트 팔츠 주정부 사무소도 같이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지방자치제도를 표방하였지만 서울에 상당한 권력이 집중된 한국의 모습과는 다른 결이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굳이 억지로 당겨보자면 모 기구의 OO지부 서울 사무소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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