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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사랑, 열두 살의 봄

05

by 여름

요즘 초등학생들은 이성 친구를 제법 쉽게 사귄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 사이에서도 이성 교제를 자연스럽게 바라보는 분위기다.

과거보다 성장이 빨라지기도 했거니와 각종 매체의 발달로 이성에 일찍 눈을 뜬 탓도 있을 것이다.



우리 공부방에 다니는 5학년 남학생 K군은 요즘 콧노래가 절로 난다.

열두 살 인생에 이토록 설레어보기는 처음이다.


아직 키가 좀 작긴 해도 집안 어른들에게 잘생겼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

가만히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차은우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런 K에게 처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같은 태권도에 다니는 6학년 Y양이다.


둘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결국 서로의 여자친구, 남자친구가 되기로 했다.

Y양은 K군 보다 한 뼘 정도 키가 컸지만, 키 차이 따위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둘은 매일 태권도에서 만났다.

다른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편의점도 가고, 자전거도 함께 타며 그들만의 추억을 나누었다.


이런 게 사랑인 걸까.

K는 매일매일이 행복했다.


벚꽃이 흩날리는 어느 봄날이었다.

끼이이이이익-

힘없이 공부방 문이 열렸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문 여는 소리만 들어도 아이들의 기분이 느껴질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묵직한 문을 힘차게 당기면 '끽-'하고 짧고 경쾌한 소리가 난다.

하지만 힘없이 그 문을 잡아당기는 날이면 그 마음을 반영하듯 '끼이이이익-' 한없이 늘어지는 소리가 나는 것이다.


그날 처음으로 공부방 문을 연 주인공은 바로 K였다.

평소라면 싱글벙글 '내 여친이 최고야'를 외치며 들어섰을 아이인데 어째 표정이 이상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속상한 일 있었어?"


나는 K의 얼굴을 가만히 살피며 물었다.


"쌤... 저 지금 차였어요. 카톡으로 헤어지자고 연락 왔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콧노래를 부르던 아이였는데 뜻밖의 말에 나도 동그란 토끼 눈이 되었다.


"갑자기? 그래서 그렇게 울상이었구나... 놀랐겠다. 그래서 헤어지기로 한 거야?"


"몰라요. 걔 진짜 싫어요. 어떻게 그래요? 아... 정말 짜증 나요. 어떻게 해요, 저?"


꿈뻑꿈뻑 애써 눈물을 삼키며 겨우 대답하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속상하면 울어도 괜찮아. 참지 않아도 돼."


K는 허락을 구하듯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으앙-"


그야말로 아이다운 울음이었다.

아직 열두 살 어린아이에게 실연은 이토록 아픈 것이었다.

그만큼 진심을 준 것이겠지.


나이가 어려도 사랑하는 감정은 진짜일 수 있겠다.

마냥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초등학생 아이가 사랑 때문에 목놓아 우는 것을 보니,

사랑이라는 감정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 뒤로 K의 마음속 상처가 아물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6학년이 된 지금은 그날을 회상하며 배꼽이 빠지도록 웃곤 한다.


그리고 K는 여전히 솔로다.


"쌤, 혼자 있는 러브버그는 불쌍해요. 붙어있는 애들은 제가 다 밟아버렸어요! 저 잘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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