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네, 제가 한여름입니다만.

13. 마지막화

by 여름

태어나서 이름에 대해 인식한 뒤로 줄곧, 수십 년 동안을 좋아할 수 없었던 내 이름.

때로는 마음에 들던 날도, 조금은 우쭐하던 날도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부담스러웠던 이름이었다.


이름은 늘 나보다 앞서 있었고, 나는 그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 느린 걸음을 재촉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넘어지기 일쑤였고, 넘어진 나를 다그치며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곤 했다.


없는 듯 그림자처럼 살고 싶었던 내게 내 이름은

마치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처럼, 나를 낱낱이 비추는 듯했다.


나는 늘 이름을 앞서 가지 못해 좌절감을 느꼈고 작아졌다.

누군가는 이름 때문에 인생이 힘들 거라 경고했고, 누군가는 이름이 사주와 맞지 않는다며 바꾸기를 권했다.

때론 내 삶이 힘겨울 때마다 그 말들이 떠올라 괜히 이름을 원망하기도 했다.

개명을 시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그 기억은 씁쓸한 상처로 남았다.


그때는 이름이 내 발목을 붙드는 족쇄 같았다.

어쩌면 그 모든 불운의 원인을 떠넘길 만한 가장 손쉬운 표적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름은 나를 원망하는 일이 없었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그토록 모질게 굴었던 나인데 내 이름은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세상이 나를 등지고 혼자라고 느껴지던 순간에도 이름은 늘 조용히 내 곁을 지키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야 알았다.

지푸라기라도 붙들고 싶던 순간마다, 내 이름은 그렇게 나를 다시 불러 세웠다.



너답게 살아. 너는 여전히 너야.



그래서일까.

지금의 나는 누구보다 내 이름을 사랑하고 아끼게 되었다.


나를 상징하는 세 글자, '한여름'

햇살처럼 환하고, 바람처럼 자유롭고, 생명력이 넘치고, 열정적이고, 차갑도록 뜨겁고, 외로우면서도 풍성하고, 그럼에도 늘 나 자신으로 남게 해주는 그 계절을 닮은 세 글자.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나와 찰떡으로 맞는 환상의 조합이었다.


이제 나는 내 이름을 감추지 않는다.

누군가 잘못 불러도 굳이 정정하지 않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또렷하게 내 이름을 말한다.

그건 단순히 발음을 고쳐 잡는 일이 아니라, 내 존재를 분명히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온 길과 겪어낸 시간, 그리고 다시 일어선 마음을 증명해 주는 단단한 뿌리.

다시 찾은 내 이름은, 나 자신 그 자체였다.

이름은 나를 가두는 벽이 아니라, 나를 열어주는 문이었다.

결국 나는 길을 잃지 않았고, 내 이름 속에서 다시 길을 찾았다.


아직 이루지 못한 꿈도, 앞으로 펼쳐질 인생의 고락도 내 이름과 함께라면 결코 두렵지 않다.

앞으로도 나는 내 소중한 이름 세 글자와 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 내 숨이 멈추더라도 내 이름 석 자는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그 믿음 위에서, 나는 오늘보다 더 나답게 살아갈 것이다.





이로써, <네, 제가 한여름입니다만.>의 여정을 마치려고 합니다.

그러나 제 이름과 저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묵묵히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부디 당신의 이름도, 당신의 삶 속에서 빛나길 바랍니다.

읽어 주셔서, 마음을 나눠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keyword
이전 12화잃어버린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