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회한들

Bangkok, THAILAND

by Julia P

작열하는 태양이 머리 위로 뜨겁게 떨어진다. 피부에 들러붙은 눅진한 습기에 빳빳하던 옷도 녹아 내리듯 흐물흐물해지고, 눅눅한 공기에 숨은 턱턱 막혔다. 그럼에도 어째서인지 그 모든 것이 나쁘지 않았다. 숨을 훅 들이켜면 폐부를 가득 채우는 더위의 냄새가 좋았다. 여름을 사랑하는 나에게 방콕은 기대한 것 이상으로 마음에 드는 도시였다. 그리고 그 여름에 뛰어들기 전, 나는 내 괴로움의 근원을 찾아보자는 뚜렷한 목표를 세웠다.


아픔에 형태가 있다고 믿은 적이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고통스러울 수 없다고, 형태도 없는 것이 나를 이렇게 타격 입힐 수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던 어느 날 문득, 더 이상은 그 아픔에 나를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실체를 찾아내자고 다짐했다. 내가 나를 진정으로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그러겠다는 용기는 낼 수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나의 태국 생활이 시작되었다.


느림이 아닌 여유


느린 것과 여유로운 것은 다르다. 그를 나는 태국에서 살면서 피부로 처음 깨달았다. 내가 본 태국은 ‘여유’를 아는 나라였다.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Escalator를 걸어 올라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비티에스BTS(주: 방콕의 대중교통으로 스카이트레인Skytrain이라고도 한다) 열차가 일정 수준으로 차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다음 열차를 기다렸다. 나를 대하는 현지인들의 얼굴에는 늘 은은한 미소가 걸려 있었고, 유창하지는 않아도 내가 외국인인 것을 알면 어떻게든 영어로 대화하고자 해 주었다.


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좋은 기억이 많이 남아 있다. 나를 살뜰히 챙겨주는 연인과 같은 나라에서 지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더불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니 예기치 못하게 그 안에서 쉼이 찾아왔다. 내가 다니던 로펌은 출퇴근 시간이 탄력적인 곳이었고, 업무량은 적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의 생활이 버거운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그에는 태국이라는 나라, 그리고 그 회사가 기본적으로 지닌 여유로운 문화와 분위기가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실무로 온보딩Onboarding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시작은 모든 것이 좋았다. 물론 모든 일이 그러하듯,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없었다.


마음이 향하는 곳


변호사가 되었다고 해서 꿈을 오롯이 이룬 것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나는 실무를 시작하고서야 알았다. ‘어떤 일을 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은지, 추상적으로야 생각해 보았었지만 구체적인 업무에 대한 그림은 그리지 못했다. 이때의 나는 현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상당히 현실과 타협한 상태였다. 전문영역을 스스로 고를 수 있는 행운은 아주 소수의 사람이 갖는 것이다. 대부분은 생각지 못했던 영역에 진입하게 되고, 그 안에서 길을 찾으며 살아간다. 그게 내가 가진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어떤 일이 주어져도 제대로 해내기만 하면 된다고, 반드시 실력을 증명해 보이겠노라 다짐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보다도 훨씬 난이도가 높았다.


국제중재나 기업법무를 하고 싶었지만 작은 로펌이었기에 그런 업무만을 선택해서 할 수 있지는 않았다. 기업이 당사자인 계약서를 보기도 했지만, 이혼소송, 형사사건, 개인정보보호법, 환경법 등 온갖 영역의 일들이 쏟아졌다. 업무의 성질이나 내용, 그리고 나와의 궁합은 직접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제대로 알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했다. 적성에 온전히 맞는 일만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하기 괴로운 일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회사를 다닌지 반년이 지난 즈음부터 난감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로펌의 대표이사는 내가 고객을 유치하는 데 집중하기를 바랐다. 아무래도 폐쇄적인 태국의 법률시장을 생각할 때, 나를 해외 변호사로 쓰는 것보다는 사업 개발에 활용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태국에서 열리는 한국의 다양한 네트워킹Networking 행사에 나가고, 한국어 웹페이지Web Page를 개설 및 관리하고, 클라이언트 미팅Client Meeting을 진행하고, 그렇게 고객을 유치하는 일을 얼마간 했었다. 하지만 이때는 알 수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정확히 알지 못해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확실하게 느낌이 왔다. 이는 내가 하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일이 결코 아니었다.


두 발을 딛고 서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만큼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고 늘 생각했었다. 직장에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그렇게 나 자신을 다독이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 경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업무를 하고 있었다. 내가 성인이 되고부터 준비해서 취득한 변호사 자격증을 활용하고 있지도 않았다.


첫 직장인 만큼 얼마 일해보지 않고 회사를 옮기는 것이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몇 개월 간의 고민 끝에 나는 결국 이직을 결정했다. 이대로는 오히려 진로를 돌이킬 시기만 늦어진다는 판단이었다. 결단을 내리니 행동은 빨랐다. 태국과 한국, 미국에 있는 회사와 로펌들에 이력서를 넣었고, 종래에는 한국에 있는 중견 기업에 사내 변호사로 입사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솔직한’ 면접을 보았는데, 이는 태국에 살면서 내 안에 작지만 분명한 변화가 일어난 덕분이었다.


핑크(P!nk)라는 가수의 곡, 트라이Try에서는 ‘갈망이 있는 곳에는 불꽃이 있고Where there is desire there is gonna be a flame, 불꽃이 있는 곳에는 누군가 타게 되어 있으나Where there is a flame someone’s bound to get burned, 타버린다 해서 죽는다는 의미는 아니니But just because it burns doesn’t mean you’re gonna die,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 가려고 할 것You’ve gotta get up and try, try, try’이라고 얘기한다.


태국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가진 욕심이 지금껏 나를 태우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적당한 슬픔과 소소한 기쁨으로 매일을 채워 가며 천천히 그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 순간 전보다 한결 가벼워진 아픔에 무엇을 버렸는지 생각해 보니 그 정체가 욕심이었다. 그를 장작 삼아 마음이 새까맣게 타고 있었음을 깨우쳤다.


그렇다고 그에 져 버릴 순 없지 않은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잿가루 툭 털고 일어나서, 마음의 근육을 단단히 다지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일이었다. 나와 함께 타버린 많은 것들을 털어내 보니 남는 것은 오롯한 나 자신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와 비로소 조우遭遇했다.


사랑의 기원


삶의 중심을 ‘나’로 잡으니 많은 것이 수월해 졌다. 내가 노력해서 갖춘 자질들, 또 나라는 사람을 의미 있게 보아주는 곳이야 말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장소임을 태국에서의 직장생활로 깨달았다. 이곳에서 나를 나로서 인정받는 경험을 했고, 그것이 곧 회사와 내가 서로를 가치 있게 여기기 위한 전제조건임을 알게 되었다. 반대로 내가 쌓아 온 자질을 의미 있게 여기지 않는 곳에서는 아무리 나라는 사람의 인격적 가치를 인정해 주어도 일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삶의 중심이 잡히고 나니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의 패러독스Paradox도 눈치챘다. 그리하여 인정의 시선을 외부가 아닌 내부로 돌렸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나는 따뜻함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다정함은 마음의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한정된 자원, 즉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내게 끊임없이 애정을 주는 피터를 보며 생각한 것이 있다. 내 인생을 얼마 알지도 못하는, 나의 단편만을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한 그가 나를 사랑할 수 있다면 나는 나를 더욱 더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정말 애쓰며 살았는데. 정말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래서 마음을 새로이 먹었다.


실패를 자책하는 대신 내가 살아온 날들을 애틋하게 여기고, 지금에 무사히 이르렀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타인, 정확히는 나의 연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또한 내가 모르는 전쟁을 치르며 살아왔을 것이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조각을 내어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게 참 고마웠다. 피터로 인해 상처받는 순간들도 있지만 그 또한 그의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니 어쩐지 일견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서로에게 자국을 남기며, 서로의 역사를 가늠하며 함께하는 것이 사랑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놓을 수 있는 용기


이는 비단 연인뿐이 아닐 것이다. 가족, 친구들, 또 내가 살아오면서 맞닥뜨린 수많은 인연들. 내가 그들에게 입힌 상처가 나의 치열한 싸움에서 비롯되었듯이, 그들이 나에게 입힌 상처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 흔적은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무언가와 맹렬히 싸워왔다는 방증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깨닫는다. 내가 입은 마음의 상처는 누군가의 상흔을 나눠가진 것이라는 걸. 그 행위 자체가 넓은 의미에서 사랑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나 자신에게 남긴 상처도 결국 나를 사랑하기에 생긴 것이리라. 그 상처를 제때 알고 보듬었다면 덧나는 일이 없었을지 모른다. 나는 사랑하는 법도, 사랑받는 법도 몰랐고 그리하여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손에 쥔 욕심을 놓지 못하고 몸에 나는 생채기를 이날까지 방치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나눠가진 상흔을 지나가버린 무언가의 흔적으로만 남기지 않고 지금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려야 했다. 손에 쥐고 있던 미움과 억울함과 서글픔을 버리고, 그 손으로 다른 것을 잡아야 했다.


그렇게 나는, 오랜 회한들에 안녕을 고했다.





일곱 번째 편지



안녕, 사랑.


내가 이 책에 네 이야기를 쓸까 고민 중이라고 했을 때, 너는 충격을 받아 얘기했지, “어떻게 누나 인생에 대해 쓰는데 나에 대해 안 쓸 수가 있어?” 하고. 네가 맞았어. 이 장章을 쓰면서, 내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 없이는 불완전하고 덜 솔직할 거라는 걸 깨달았거든.


나를 자라게 해주어 고마워. 너는 나를 매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고, 나는 우리가 함께 한 시간 동안 내가 바뀌어 온 모습이 썩 마음에 들어.


영원한 무언가를 약속하기는 조심스럽지만, 내가 얘기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이거야: 너를 결코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겠다는 것. 항상 우리가 함께하는 순간들을 감사히 여길 것을 약속해. 그리고 나 역시, 내가 너를 행복하게 만들기를 바라.


나는 늘 우리가 함께 쌓아갈 인생을 기대해. 아마 정말 아름다울 거야.


너의 가장 친한 친구.


The Seventh Letter



Hi, love.


When I told you I was contemplating whether to include your story in the book, you were shocked and said, “How can you not write about me when the book is about your life?” You were absolutely right. While writing this chapter, I realized that my story would be incomplete and less sincere without the story of us.

Thank you for helping me grow. You make me a better person every day, and I love how I’ve changed through the life we’ve shared together.

I can’t promise anything forever, but one thing I can say is this: I will never take you for granted. I promise to always appreciate the moments we have together. And I hope I make you happy too.

I look forward to the life we’ll build together. I’m sure it will be beautiful.


Your best fri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