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은 왜 '착한 거래'처럼 느껴질까?

by 레일라노트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 정리를 한다.

작은 옷장 안에 사계절 옷을 전부 담을 순 없으니, 계절에 맞지 않는 옷들은 꺼내야 한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매번 손이 가지 않는 옷들이 나온다. 살 땐 자주 입을 것 같았지만, 결국 한 번도 손 대지 않은 채 다음 계절을 맞이한다.


하지만 걱정은 없다. 나에겐 당근마켓이 있으니까.

상태는 멀쩡하지만 더는 입지 않는 옷과 액세서리는 판매하고, 누군가가 올려둔 읽고 싶었던 책이나 미개봉 화장품은 싸게 사들인다. 그 과정은 놀라울 만큼 가볍고, 또 안심된다.


왜일까?



#1. 이건 중고가 아니라 따뜻한 순환이다


한두 번 입은 옷, 안 쓰는 악세사리를 올려두면 생각보다 빠르게 팔린다.
“잘 입을게요, 감사합니다!”
누군가 내 물건을 기쁘게 가져가는 모습을 보면, 버리는 대신 잘 순환시켰다는 기분이 든다.


반대로 내가 그 입장이 되기도 한다.

읽고 싶던 책이 올라오면 정가의 절반 이하로 구입할 수 있다. 중고라기보단, 누군가의 손을 거쳐 내게로 오는 느낌에 가깝다.


재밌는 건, 이럴 때 ‘구매했다’는 표현보다 ‘데려왔다’거나 ‘받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는 점이다.

당근마켓에서 이루어지는 건 단순한 소비가 아니다. 어쩌면 '나는 합리적인 소비자'라는 생각을 스스로에게 확인시키는 행동일지도 모른다.



#2. 착한 소비자의 자아를 만드는 것


당근마켓은 단순한 중고 거래 앱이 아니다.

이 플랫폼은 거래의 본질이 ‘선한 행동’처럼 느껴지도록 섬세하게 설계돼 있다.


1. 로컬 기반 시스템
'내 근처'라는 위치 기반 구조는 거리감을 줄이고 심리적 신뢰를 높인다.
이는 단순한 가격 경쟁보다 심리적 거리 설계에 초점을 맞춘 마케팅 방식이다.


2. 매너온도와 후기 시스템
이용자 평판을 수치화한 매너온도는 단순한 UX 요소를 넘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자아 이미지를 만든다.

매너 있는 거래를 할 수록 좋은 사람이라는 점수를 부여받고, 그 평판이 또 다른 거래를 부른다.


3. ‘거래 완료’가 아닌 ‘감사 인사’ 중심 피드백
거래가 끝난 뒤 앱은 '감사합니다'라는 알림을 띄운다.

단순한 결제 완료가 아닌 감정 보상을 유도한다. 이건 구매 후 죄책감을 뿌듯함으로 바꾼다.


사실 '당근마켓'이라는 이름부터 그렇다.
야채인 당근은 듣기만 해도 순하고 건강한 이미지다. 무기명 앱이 아니라 당근마켓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와 거래를 한다는 건, 처음부터 어느 정도의 신뢰와 선의를 깔고 시작하는 셈이다.

‘중고나라’보다 훨씬 덜 긴장되고, ‘번개장터’보다 훨씬 덜 빠르다. 그 중간 어딘가에서, 당근마켓은 이름만으로도 부드럽고 느긋한 분위기를 만든다.


결국 당근마켓은 제품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이타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소비자라는 정체성을 이용자 스스로 형성하게 만든다.



#3. 당근마켓은 가치를 거래하는 플랫폼이다


당근마켓은 앱 진입부터 탐색, 거래까지 모든 과정에서 불필요한 정보를 최소화한다.

광고 배너도 없고, 복잡한 추천 시스템도 없다.
보이는 건 '내 근처 인기 게시물'과 '가장 최근 등록된 항목'뿐이다.


이런 구조는 탐색 피로도를 줄이고, 거래 진입 장벽을 낮춘다.

복잡한 설명 없이, 이용자는 단지 “이건 필요해 보이네”라는 생각으로 손을 뻗게 된다. 그렇게 소비는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선택처럼 느껴진다.


버리려던 물건은 새로운 주인을 만나고, 나는 옷장에 여유 공간을 확보한다.

동시에 작은 선행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경험이 반복되면, 소비는 어느새 가치 있는 행동으로 기억된다.



#4. 당근마켓 수익은 어떻게 날까?


당근마켓은 대부분의 거래가 무료 직거래다. 수수료도 없고, 앱을 이용하는 데 별다른 비용도 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네카라쿠배당토'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다. 어떻게?

핵심은 단순하다. 이용자에겐 면죄부를 주고, 광고주에겐 타깃을 판다.


가장 큰 수익원은 광고다. 당근마켓은 반경 300m~1.5km까지 좁게 조정 가능한 지역 기반 타겟팅을 제공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강력하다.

단골 가게, 동네 미용실, 베이커리처럼 좁은 반경 안에서 움직이는 소비자들에게 직접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2023년 한 해에만 당근 광고주 수와 광고 집행량은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작은 점포뿐 아니라 쿠팡, 배스킨라빈스 같은 대형 브랜드들까지 당근에 지역 타깃 광고를 싣고 있다.


이처럼 하이퍼로컬 기반 광고는 당근 수익의 99% 이상을 차지하며, 이 모든 구조는 ‘내 근처’라는 익숙한 동네 감각 위에 설계돼 있다. 말 그대로 광고조차 따뜻하게 보이는 시스템이다.


게다가 소상공인을 위한 ‘당근비즈(비즈프로필)’도 있다. 기본적인 가게 정보 입력은 무료지만, 상단 고정·검색광고·우선 노출 기능은 유료로 전환된다.


중고차, 부동산, 단기 알바처럼 거래 위험이 높거나 정보 신뢰가 중요한 카테고리는 이미 B2B 영역으로 유료화됐다.

사업자 인증 후에만 글을 올릴 수 있고, 광고를 집행하려면 유료 계정이 필요하다.


거기에 더해 ‘당근페이’ 같은 부가 서비스도 있다. 등록 계좌를 사용하면 대부분 무료지만, 미등록 계좌로 송금 시 수수료가 발생하고, 추후에는 보험·택배 등 부가 유료 서비스 확대도 예고된 상태다.


정리하면, 당근마켓은 소비자에겐 ‘합리적이고 착한 거래자’라는 자아 이미지를, 광고주에겐 정밀 타겟 광고 솔루션을 판매한다.

당근마켓이 거래 수수료 없이도 높은 매출과 기업가치를 만들어내는 이유는, 상품이 아니라 가치와 정체성을 유통하는 구조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5. 결국, 내가 산 건 ‘내 이미지’였는지도


사실 나는 당근마켓을 쓸 때,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라거나 착한 소비자가 되고 싶어서 이용하는건 아니다.
그냥 싸게 사고 싶고, 집에서 안 쓰는 물건은 누가 좀 가져갔으면 해서 시작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당근마켓은 거래가 끝날 때마다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을 슬쩍 건드린다.
이용자에게 그걸 강요하진 않지만, 그렇게 느껴지게끔 만들어진 구조 위에서 우리는 사고팔고 있다.


어쩌면 당근마켓이 진짜 잘하는 건
“중고 거래”가 아니라
“따뜻한 거래”라는 감정을 남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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