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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의 경첩은 손끝에 닿았다

손끝의 눅눅함, 그리고 새로운 공간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1번>이 이 글에 걸려야만 하는 이유는 단순한 배경음악을 넘어, 글의 숨결과 따라 흐르기 때문입니다. 이 곡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들을 소리로 직조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Xm7s9eGxU&list=RDS-Xm7s9eGxU&start_radio=1

Erik Satie - Gymnopédie No.1

정적의 냄새의 읇조림

이 글의 복도는 정적 속에 숨 쉬는 공간입니다. 짐노페디는 바로 그 정적의 냄새를 소리로 풀어냅니다.

H가 벽에 손끝을 대는 순간 느껴지는 차가운 눅눅함처럼, 이 곡의 온도는 차가우면서도 어딘가 촉촉합니다.

글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미묘한 불안감을 담고 있습니다. 청결함 뒤에 숨은 불순물을 허용하지 않는 결벽증, 그리고 사프란의 씁쓸한 향. 짐노페디의 미니멀한 구성은 이러한 불안의 심연을 더듬어 들어갑니다. 조심스럽게 반복되는 선율은 H의 복잡한 내면을 속삭이듯 표현합니다. 이 곡은 '덮을 수 없는 상처의 흔적'처럼, 사라지지 않는 기억의 고통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

H와 그의 그림자가 문 앞에 섰을 때, 문이 열리기 직전의 조용함입니다. 짐노페디는 바로 그 침묵의 순간을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줍니다. 격렬한 클라이맥스 없이 마무리되는 이 곡은, 문 너머의 '날카로운 하얀 빛'이 가져올 변화를 묵묵히 예고합니다. 이 곡은 복도의 어둠과 문 너머의 빛 사이, 그 경계선 위에 선 망설임을 가장 세련되고 불안하게 표현하는 유일한 음악일 것입니다.




The carpet swallowed the footsteps, returning only a faint echo.



...그리고 새로운 공간은

은은한 조명이 드리운 학회장 복도였다.

긴 카펫은 발자국 소리를 삼켰고, 그 울림은 벽에 부딪혀 메아리로 되돌아왔다.

닫힌 문들 뒤로, 각자의 고립이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복도는 그들이 잠시 내려놓은 감정의 부유물로 가득 차 있었다.

공기는 미묘한 냄새로 가득했다. 희미하게 사람의 체취가 섞인 먼지, 표백제처럼 날카로운 세제 냄새.

그 위로 청순한 비누 향의 섬유유연제의 얇은 막이 드리워졌다.

익숙하지만 어딘가 낯선, 차가운 청결함의 잔향이었다. 마치 모든 것을 덮어버리려는 듯, 불순물을 허용하지 않는 결벽증처럼 완고한 냄새. 그러나 이내 따뜻하면서도 씁쓸한 사프란의 향이 희미하게 뒤섞이며 묘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H는 그 향이 어디서 왔는지 정확히 감지했다.


The corridor breathed of dust, detergent, and a powdery veil of cold cleanliness.

그녀의 뇌리 속에는, 사프란의 향과 함께 스쳐 지나가는 오래된 기억의 조각들이 있었다.

H는 잠시 벽에 손끝을 대었다. 차갑게 눅눅한 벽지는 오래된 결을 품고 있었다.

마치 여러 손이 덧대어져 닳아버린 것처럼 울퉁불퉁한 표면이었다.

그는 손끝에 느껴지는 미세한 굴곡을 따라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닦아내려던 순간, 손끝에 남은 것은 오히려 더 진한 얼룩이었다.

그것은 지워지지 않는 기억, 덮을 수 없는 상처의 흔적이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H 역시 마찬가지였다.

Her fingertips brushed the wall; the texture left a darker stain than before.

어떤 말도 이 복도의 침묵을 깰 만큼 충분하지 않았다.


그림자는 그들의 키보다 몇 배는 더 거대하고 길었다.

한 그림자는 다른 그림자에 바짝 붙어 있었지만, 그들의 거리는 결코 좁혀지지 않았다.


그가 먼저 닫힌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잡이를 잡는 순간, 희미한 쇠붙이 냄새가 났다.

아주 짧게, 아주 날카롭게. 그는 천천히 손잡이를 돌렸다.

오래된 경첩의 마찰음이 허공에 울렸다.

묵직한 문이 천천히 안쪽으로 밀려 열렸다.

문 너머의 빛은

복도의 희미한 조명과는 달리, 그 빛은 날카로운 백색으로 들어왔다.

그 빛이 복도 바닥에 새로운 선을 그었다.

복도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던 자리에,

빛과 그림자의 새로운 경계선이 생겼고


H는 그 경계 위에 서서, 잠시 망설였다.

그 문 너머는 익숙한 공간이지만, 그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White light cut across the floor, drawing a new boundary of sha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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