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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문은 열리지 않았다 II

향은 조명에 스며들어, 보이지 앟는 관계의 선을 그렸다

The Back Door Did Not Open II: Fragrance entwined with light, drawing an invisible boundary of intimacy.


..문이 열렸다.

무수한 속삭임과 웃음소리가 H의 피부를 감쌌다.

형광등 아래, 종이의 바스락거림과 마이크의 피드백이 겹겹이 진동하며 공기 속에 미세한 전류를 흘렸다.

H는 두 세계의 극명한 대비 속에서, 자신이 여전히 이질적이고 고립된 존재임을 감각적으로 느꼈다.

그의 그림자는 사람들의 시선과 빛에 섞여 옅어졌지만,

그는 여전히 짧은 거리 안에 서 있었다.


White light cut across the floor, drawing a fragile boundary of shadow


H의 시선이 그와 스칠 때, 학회장의 모든 목소리가 서서히 사라지는 듯했다.


그 순간, 빛과 소리, 그리고 공기가 두 사람의 그림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숨을 고르며 자리에 앉았다.

그가 손을 뻗어 H의 손에 발표 자료를 건넸다.


종이가 바스락이며 흔들릴 때, 그녀의 옷깃이 그의 손목을 스쳤다.

그 미세한 접촉은 그들의 복잡한 감정만큼 깊게 가라앉았다.

백색 빛은 종이에 비춰져, 살갗과 셔츠, 머리카락을 따라 흘러내렸다.

조명이 닿은 자리마다 두 사람이 걸친 향수의 잔향은 섞여들었다.

눅눅한 공기와 낡은 종이 냄새가 뒤섞인 붐비는 방. 그의 향수는 낡은 책장의 금욕적 가죽, 쌉쌀한 자두의 농도와 함께 퍼져나갔다. 그것은 공기 속으로 스며들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밀한 기억을 소환했다. 그 향이 사적인 공간을 침범하자, H의 손목에서 피어오르던 냉랭한 머스크 향이 응답했다.


그것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 빛과 소리로 가득 찬 방 안에서도 이질적인 고립감을 풍기며 감각의 경계선을 그었다.

In the quiet room, the roses carried both warmth and melancholy


숨. 가까움. 아직 닿지 않은 거리. 그 잠시의 멈춤은 거의 질식처럼 다가왔다.


공간이 수축하는 순간, 두 향수의 미세한 입자들은 공기 중에서 엉겨 붙었다.

차갑게 마른 인센스와 따뜻한 자두의 관능적인 단내가 한데 섞여 희미한 전류처럼 피부를 스쳤다.

그 이질적인 조합은 어딘가 서늘하면서도 나른한, 금지된 쾌감처럼 느껴졌다.

그 찰나의 순간, 공식적인 가면 아래 숨겨진 두 개의 세계가 포개지며 외부의 모든 소음을 지워버리는 듯한 압도적인 침묵을 만들어냈다.


A momentary touch, a residue of memory that would not fade


그는 학회장의 수많은 청중 중 하나였고,

언제나 닿을 듯 거리를 두고

그녀의 그림자를 따라다니던 동료였다.




그는 H의 과거를 모두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일부는 알고 있었고, 그 단편적 지식이 그를 H 곁에 붙잡아 두는 끈이었다.

그는 H에게 의도적으로 질문하지 않았고, 다만 그 자리에 머물렀다.

그러나 학회장 안에서 발표 자료를 건네는 그 짧은 순간,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은밀한 합의가 맺어졌다.

그러나 그 짧은 접촉의 잔향은,

학회장의 빛과 소음 속에서도 그녀의 숨결에 스며들어 쉽게 흩어지지 않았다.

그의 망설임은 그녀의 망설임과 맞닿아 있었다.

조심스럽고 조용하게, 그는 무대라는 빛을 열어주는 매개자가 되었다.

구원자도, 관찰자도 아닌, 다만 그녀의 뒤를 받쳐주는 그림자.

그러나 그 그림자는, H가 다시 목소리를 회복하는 데 필연적인 배경이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87r7bhc7Yw

" powerful Valse Boston" performed by Einav Yarden and the Spirit Of Europe chamber of orchestra

기야 칸첼리 - 《보스턴 왈츠》

이 곡은 이 글에 완벽하게 어울린다. 《보스턴 왈츠》는 활기찬 춤곡이 아니라 마치 기억 속에서 재생되는 듯한 몽환적이고 아련한 분위기를 지닌다. "투명한 유령"처럼, 존재하지만 잡을 수 없는 아련하고도 서늘한 감각. 현악기의 길고 나른한 선율은 두 사람의 얽힌 숨결과 이질감을 떠올리게 한다. 마치 춤을 추다 멈춰 선 듯, 은밀한 합의가 이루어진 순간의 무겁고도 아름다운 정지를 음악으로 옮겨놓은 듯하다.

곡 전체를 흐르는 깊은 멜랑콜릭함은, 학회장의 빛과 소음 속에서 고립감을 느끼는 H의 감정과 일치한다.

감정의 격랑을 드러내지 않고 고요하게 흐르지만, 그 안에 숨겨진 서늘한 고독이 두 사람의 관계를 마치 멀리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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