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사람이길 노력했더니, 괜찮은 사람이 왔다. 1/4
희망편_chapter 3. 괜찮은 사람이길 노력했더니, 괜찮은 사람이 왔다. 1/4
면접 볼 때부터 이상했다.
라디오는 시끄러운데, 조용한 사무실.
면접은 내내 뭘 말해도 반응 없는 세무사,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아래로만 내리깐 실장 여자와 봤다.
합격하게 되면, 사무실 인원은 나 포함 다섯이라고 했다.
세무사, 실장, 선배 1, 선배 2 그리고 나.
연봉은 적었지만,
처음이라 그렇다며 많이 배우고 업체들 많이 맡게 되면 더 오를 거라 했다.
그들이 말하는 현실은 시궁창인데,
미래는 기깔난 에버랜드였다.
그래도 첫 합격,
첫 사회생활이라는 부푼 꿈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애써 무시했다.
그렇게,
내 사회생활은 시작됐다.
출근 첫날.
9시 반까지 오라는 출근시간조차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서,
나는 8시 반부터
복도 모퉁이에 서 있었다.
등신대처럼.
한 시간쯤 지나서야
문이 열렸다.
내게 돌아온 건,
차가운 목례와 함께
마대걸레와 수세미였다.
뭐, 막내니까 할 수 있다 생각해도,
조금은 화가 났다.
그런데, 내가 하기 전에도 선배 하나가 묵묵히 해왔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은 나아졌다.
나만 유별나면 안 되니까.
그런데, 하는 일이 청소, 커피 타기, 우체국 다녀오기, 토너 갈기, 복합기 채워 넣기, 종이 파쇄기 돌리기였다.
이 정도면 몇 시간 알바를 고용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나 생각했지만,
매일 아껴 쓰라고 잔소리하는 실장을 보면,
효율은 개나 줘버린 것 같았다.
우체국은 하루에 두 번도 가는 일이 잦았고,
일을 배우기는커녕 영수증 풀칠만 해대서,
물풀 컨트롤 하는 능력 정도만 생겼다.
그래도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묵묵히,
회사 시스템 안에서 굴러가는 나사가 되어ㅡ
기름칠 없이도 알아서 잘 굴렀다.
그러던 내가,
어느 날부턴가 나 자신을 꾸미기 시작했다.
평생 몰랐던 감정을 느끼면서,
앞머리도 잘라보고, 속눈썹도 붙여봤다.
그런데 이게 그리도 큰 일인 줄은 몰랐다.
내가 뭘 하나씩 할 때마다,
회사에서 사람들의 말은 한마디씩 늘었다.
"앞머리 잘랐네? 얼굴 좀 부어 보이는데?
어제 라면 먹고 잤어?"
"속눈썹 붙였네? 하긴.. 요즘 먼지가 많긴 하지?"
어울린다, 안 어울린다가 아니었다.
처음엔, "아, 그래요..?" 하고 넘어갔다.
나도 화장은 처음이라,
색조도, 화장법도 자주 실패했고
그러면서 점점 나아졌다.
그리고, 알았다.
이 사람들,
내가 이상하게 하고 오면 조용하고,
제대로 어울리게 하고 오면,
그때야 말로 말이 많아진다는 걸.
가만 보니, 선배 두 명과 실장은 화장을 안 했다.
심지어 선배 한 명과 실장은 눈썹도 안 다듬었다.
왜 안 하냐고 여쭤보니,
화장에 시간낭비 하기 싫다는 공통된 답변들.
그러고 나서 입은 옷들을 훑어봤다.
요즘 쿨톤이니 웜톤이니,
자신에게 맞는 색상들 찾느라 난린데,
이 사람들은 그냥 무채색의 옷들만 입을 뿐이었다.
내가 또 유별난 걸까?
아니야. 요즘 이게 대센데??
돈 주고도 퍼스널 컬러 알아본다는데?
이상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수다를 떠는데
불쑥 내가 물었다.
"실장님. 실장님은 새빨간 립스틱 말고,
좀 와인빛 나는 고오급진 빨간색 립스틱 어울리시죠?"
나도 모르게 나온 말투에 회사생활 경험 스탯이 좀 쌓였구나, 내심 흐뭇해했다.
고오급진. 여기에 역시 반응했다.
"어머. 어떻게 알았어?
내가 살림하고 일하느라 이러고 다녀서 그렇지,
아가씨 때는 립스틱 하나만 발라도
남자가 줄을 섰지!
근데 어떻게 안 거야?"
"요즘 퍼스널컬러라고요,
자신에게 어울리는 화장이랑 옷 컬러를 찾는 게 유행이에요.
저도 알아보는 중인데,
실장님은 겨울 쿨톤 같아서요.
추워지면 약간 톤 다운된 붉은 재킷 입으시면,
튀는데도 엄청 어울리실 것 같아요"
이 말과 함께
"지금 지난겨울 시즌 옷 50 퍼 이상 할인하잖아요 브랜드들.
괜찮은 브랜드 사이트 알려드릴까요?"
하니, 6개의 눈이 모두 동그래져서 나만 쳐다본다.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리고 또 한 가지 알았다.
이들은 컴퓨터로 바쁘게 일하는 시간 보다,
클릭질로 시간을 더 보낸다는 것을.
선배 둘과 나, 실장, 넷이서 각자의 모니터에서 같은 옷을 보고 떠들었다.
그리고 선배 둘도 내게 퍼스널 컬러를 물어보고,
같이 쇼핑에 합세했다.
그리고 대망의 택배 도착날,
선배 둘과 실장은 한 껏 들떠 새 옷을 꺼내
입어봤다.
내가 입 아프게 말할 것도 없이,
그 셋은 서로 잘 어울린다고 손뼉까지 치고 난리가 났다.
그때,
내가 처음으로 앞머리를 자르고, 속눈썹을 붙일 때가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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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편’ 유료 연재 안내드립니다.
프롤로그부터 지금까지 ‘희망편’을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많은 고민 끝에, 챕터 3의 2편부터는 유료로 전환하여 연재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현실편’, ‘절망편’까지의 여정을 함께해주신 독자님이라면
이제 막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희망편’의 이야기에도 공감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정제된 글로 더 좋은 이야기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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