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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델리는 멈추고, 나는 호텔만 봤다.

[우리가 모르는 인도] 4화

by 모험가 콜린

“I can take you sir.”


그 유명한 손모양 조형물들을 뒤로하고, 입국 심사대 앞. 선임처럼 보이는 남자 심사관을 향해서 걸어가던 나를 젊은 심사관이 붙잡았다. 공항에 오후에 도착했지만, 내가 서 있는 스티커 비자 (Sticker Visa)의 심사 대기줄은 한산했다. 인도를 방문하는 많은 관광객들은 이제 전자비자로 방문하는 만큼, 심사관들도 웬 한국인이 대사관이 여권에 붙여주는 스티커 비자를 가지고 오는지 궁금했을 것 같다.


입국 심사가 시작되었을 때,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뉴델리 국제공항의 입국 심사관들의 영어가 생각보다 짧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던 것이 문득 생각이 났다. 사실 우리가 보는 많은 수의 여행 유튜브에서 재미 포인트이자 많은 여행객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 중 하나는 언어 장벽으로 인한 소통이다. 제아무리 영어를 잘하는 원어민들도 현지인들과 소통에서 되레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나도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으로서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순간들도 있지만, 그래도 영국과 미국에서 학교에 다니면서 영어 실력을 오랜 기간 길러왔다. 하지만 그런 영어는 학교와 일을 할 때 주로 쓰는 영어고, 내가 여행하며 영어가 우리와 마찬가지로 외국어이거나 제2 언어인 사람들과 소통할 때 쓰는 영어는 다른 곳에서 배웠다. 중국 상하이에서 아직 중국어를 잘 하지못할 때 내 짧은 중국어와 영어 사이를 넘나들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이집트를 비롯한 비영어권 국가 현지인들과 짧은 영어로 소통하는 것을 몇 번 연습하면서, 단순히 단어나 문장을 완벽하게 구사하지 않더라도 내가 당황하지 않고 메시지에 중심을 잡고 전달하면 대화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보다 조금은 천천히 이야기하고, 완벽한 문장을 구성하기보다는 제일 중요한 단어들 (장소, 가격, 시간 등)만 강조하는 대화를 통해서 나의 메시지를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한다. 물론, 내가 현지인의 영어 수준을 한 번에 알 수는 없는 만큼, 우선은 모두에게 평소에 내가 쓰는 영어로 천천히 대화하고, 현지인이 대화에 어려움을 느끼면 간단한 영어로 전환한다.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면서 느낀 점은 (사기를 치려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현지인과 웃으며 느긋하게 이야기하면, 영어 수준에 상관없이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며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나의 뉴델리 공항 심사관도 나에게 심사 절차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데, 영어가 조금은 어색한지 답답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기다리거나 당황하기보다는, 밝게 웃으면서 눈치껏 지문을 등록하고, 필요한 행동을 절차에 추측(?)해서 따라갔다. 덕분에 정말 빨리 조금은 걱정했던 입국심사가 끝이 났다.


11시간. 참 무엇을 하기에도 애매한 환승 시간이다. 2019년에 런던으로 갈 때 모스크바에서 24시간 경유하며 모스크바 하루 여행을 한 이후로, 나는 경유지에서 여행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래서 이번 11시간에도 델리 시내에 잠깐 나갔다가 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실 대학원에서 만난 착한 인도인 친구가 이미 미국에서부터 델리에 있는 자기 집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간단히 저녁이라도 한 끼 하자는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결정은 쉽지 않았다. 우선, 인도로 가는 국제선과 인도 내의 국내선 사이의 환승 시에는 체크인했던 수화물을 모두 찾았다가 다시 국내선 비행 편에 체크인해야 한다. 그러니 큰 캐리어가 나와 함께 하기에, 이동이 쉽지 않다. 이동 편을 어찌 해결한다 해도, 더 큰 문제는 하늘의 뜻이었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부터 창문에 빗방울이 보였고, 완전히 착륙해서 날씨 앱을 보니 비 표시가 가득했다. 그래서 여전히 친구를 보러 가야 하나, 혹시 몰라 잡아 놓은 호텔을 갈지 고민하는 사이, 친구가 깔끔한 판결문을 내려주었다.


“델리는 비가 오면 멈춰.” 델리에서 비가 오면 공항을 이어주는 지하철이 멈추거나 도로 정체가 심해질 수 있기에, 도시가 멈춘다는 표현이 참 맞는 말이었다. 나는 델리를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경유지로 온 것이기에 더 안전한 선택을 해야 했다. 그래서 저녁 식사는 다음을 기약하고, 영종도 공항신도시 같은 아에로 시티(Aerocity)에 있는 호텔로 가는 우버를 예약했다.


여담으로, 인도 공항에서는 비행기 탑승 3시간 전에만 공항 입장이 (그것도 예약증이나 표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마다 이야기가 조금씩 다르고, 챗지피티도 나에게는 확신의 답을 주지는 못했는데, 나는 새벽 4시 반에 출발하는 비행 편이었기에, 친구의 초대가 있었지만 혹시 몰라서 호텔도 잡아두었다. 호텔이 아니라면 공항 밖에서 기다리거나 국제선 터미널 도착 층의 앤캄 (Encalm) 라운지를 이용하는 것 외에 시간을 보낼 방법이 없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는 지하철을 짧게 탄 후 조금 걸어서 가도 되고, 우버(Uber)를 타도 된다. 그래도 비가 올 것으로 생각했기에 나는 우버를 잡았는데, 비는 크게 안 왔다. (나는 아쉽게 저녁만 놓친 사람이 되었다). 우버를 잡기는 했는데, 도대체 어디서 우버를 탈 수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평소에 쓰던 우버와 다르게, 지도도 없고 드라이버 이름도 없고 Premier Pin이라는 페이지에 숫자만 덜렁 떠 있었다.

IMG_1694.png 뉴델리 공항에서 우버를 부르자 나타난 우버 프리미어 핀 코드.

공항에 Uber Pick Up 표지판이 있어서 따라가 보니 그냥 공항 터미널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순간 당황해서 그냥 우버를 취소하고, 지하철을 탈까 하는 마음에 지하철역 쪽으로 갔다가, 결국 역 앞의 경찰관에게 우버 타는 곳을 물어봤다. 경찰관은 손가락으로 내가 서있는 곳의 반대편 끝을 가리키며, 쭉 걸어가라고 일러줬다. 참. 어디에도 차가 안 보이는데. 반신반의하면서 걸어가니, 우버 차량이 대기하고 있는 주차장이 나왔다. ‘우버 프리미어’라고, 적힌 줄을 따라가 보니, 한 택시 기사가 나를 태우고는 핀 번호를 자기 핸드폰에 입력했는데, 그러자 핸드폰 화면에 내가 아는 지도와 기사님 정보가 있는 우버 페이지가 나타났다.

IMG_1695.png 핀 코드를 기사님께 드리고 나서 동기화된 우버앱 페이지

한 15분 정도 달렸을까, 이미 호텔 앞이었다. 호텔에서 특이하게 내가 가지고 있는 짐을 한 번 더 스캔해야 했는데, 실롱에 살면서 이는 인도의 꽤 많은 호텔이 스캐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짐이 조금 밀려서 캐리어가 스캔되는 동안 나는 호텔 체크인을 하러 갔다. 이미 예약되어있던 방이라서 큰 문제없이 체크인하고, 짐을 찾아서 방으로 가니 “하. 진짜 힘들었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침 일찍부터 공항 가서, 8시간 비행하고 나서야 맞는 첫 다리 뻗고 누울 기회였기에 빨리 침대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IMG_1698.jpeg 뉴델리에서 하룻밤을 보낸 호텔. 아에로시티에 위치한 호텔 중 가장 저렴했다.

그래도 이름 있는 브랜드의 호텔이라서 방은 깔끔했다. 호텔이 진행하는 환경 프로그램에 따라서 물은 유리병에 잠겨서 담겨있었고, 대다수의 편의용품도 재활용할 수 있거나, 재활용 자재를 활용해서 만들었던 것 같다. 사실 체크인이 오후 6시쯤이었는데, 나는 새벽 3시 비행기를 위해서 오전 12시에는 공항으로 출발해야 했던 만큼, 잠에 들어서 비행기를 놓칠지 걱정이 훨씬 앞섰다. 그래서 인도 현지 뉴스를 틀어놓고, 샤워도 하고 짐 정리도 조금 더 한 뒤, 모로코로 인턴을 하러 간 대학원 절친과 문자로 대화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 친구는 나름 큰 도시인 카사블랑카로 인턴을 가서, 카사블랑카가 얼마나 현대적인 도시인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시간이 흘러서, 다시 공항에 갈 시간이다. 부모님과도 통화를 했었는데, 그 이후 사실 한 시간 정도 눈을 붙였다가 오후 11시쯤에 깼던 것 같다. 물론, 일어나서 핸드폰에 적힌 11을 보고 식겁했다. 다행히 짐은 다 챙겨져 있기에 11시 50분쯤에 우버만 불러서 공항으로 출발했다. 결국 경유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델리에서 구경한 곳은 묵었던 호텔 밖에 없다.

IMG_1704.jpeg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 국내선 터미널 에어 인디아 익스프레스 체크인 카운터. 사람이 많다.

어찌 됐든 내가 항공사를 좋아하는 만큼, 공항에도 관심이 꽤 있다. 뉴델리 공항은 인도 재벌 중 하나인 아다니 (Adani) 그룹이 관리를 하는 공항이라서, 깔끔하게 공항을 운영하는 데 공을 들인 것이 느껴졌다. (물론, 보안 구역 이후에 USB 꽂는 곳들의 상태를 보고, 조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또 다른 놀란 포인트는 오전 12시를 넘긴 시간이었는데도, 에어 인디아 익스프레스 (Air India Express)의 체크인 줄이 생각보다 길었다는 것. 밤에 국내 여행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나 싶었다.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고, 게이트로 갈 수 있었다.

IMG_1706.jpeg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의 막스 앤 스펜서 매장. 영국의 할인점 체인 브랜드라서, 영국 런던 사는 대학 절친한테 바로 찍어서 보내줬다.

게이트 번호를 찾으며 걸어가 보니, 비행기를 바로 탈 수 있는 연결 통로가 아니라 비행기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게이트였다. 에어 인디아 익스프레스는 에어 인디아가 운영하는 저비용 항공사인 만큼, 연결 통로가 없으리라는 것은 예상했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게이트 운영이었다. 내가 이용할 게이트를 포함해 두세 개의 게이트가 하나의 에스컬레이터를 통해서 지상으로 내려가는 방식이었는데, 우선은 에스컬레이터를 막아두고 승객들을 대기시켰다. 점점 탑승 시간이 다가오자, 일부 승객들은 에스컬레이터를 지키는 보안 요원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자신의 순서가 아님에도 무단으로 넘어가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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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탑승했던 에어 인디아 익스프레스 AI 9513편. 에어 인디아 기체의 구도장 기체를 탔다 (좌) 마하트마 간디 탄생 150주년 기념 도장. (우)

다행히도 나는 구와 하티를 안내 요원이 외치자마자 줄을 알맞게 서서 큰 혼란 없이 빠르게 입장을 했다. 표 확인 후 버스를 또 한참 타고나니, 우리가 탈 비행기가 보였다. 역시나 기대한 새로운 기체가 아니라, 오래된 에어 인디아에서 빌려온 기체였다. 또 아쉬움만 남았다. 그래도 마하트마 간디의 150주년을 기념하는 표장은 조금 귀여웠다. 아, 참고로 마하트마 간디 탄생 150주년은 올해가 아니라 2019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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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 스크린이 없어서, 미국 드라마를 조금 보니 기내식이 나왔다. 우리의 떡과 비슷한 식감의 미니 이들리 (Mini Idlis)와 콩으로 만든 메두 바다 (Medu Vada)가 아침 식사로 나왔는데, 익숙하지 않은 맛이어서 이들리만 조금 먹다가 남겼다. 아 물론, 디저트인 초콜릿 바나나 케이크와 망고 주스는 엄청 맛있었다. 항공사를 좋아하는 나이지만, 이쯤부터는 빨리 비행기에서 내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비행기로 3시간을 더 날고 나서야 거의 최종 목적지인 구와 하티(Guwahati)에 도착했다. 근데 내가 일하는 곳은 실롱이 아닌가. 구와 하티가 “거의” 최종 목적지인 데는 이유가 있다. 일을 하기 위해 떠난 나의 여정은 아직도 끝나지 못했다.


오늘 분량이 조금 길어졌습니다. 브런치 북을 연재하게 된 이유가 실롱에서의 경험과 우리가 모르는 인도를 소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인도를 여행하거나 인도로 일을 하러 가시는 더 많은 분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였기에 실롱까지 가는 과정의 이야기가 조금 길어진 것 같습니다.


다음 4화부터는 더 많은 실롱과 우리가 모르는 인도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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