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인도] 6화
길고 긴 잠과의 사투 끝에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서 일어났다. 실롱에서의 첫 아침은 생각보다 평화롭고 조용했다. 관광객으로 여행을 다닐 때는 여행자용 심카드도 있고, 몸만 건강하다면 큰 문제없이 돌아다니지만, 새로운 곳에서 삶을 시작할 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외국인으로서 현지인과 비슷한 삶을 살려면, 그에 맞는 정보를 구해야 하고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실롱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점은 전화번호가 참 중요하다는 것이다. 택시 앱에서도, 배달 앱에서도, 은행 앱에서도 모두 인도 현지 전화번호를 요구한다. 물론, 나는 두 달만 머무르지만, 그 두 달 동안에도 인도 번호가 없다면 삶에 제약이 많이 생긴다. 그래서 나의 최우선 과제는 현지 심카드를 구하는 것이었다.
물론 뉴델리 공항과 이동 중에 사용하기 위해서 여행자용 심카드를 이미 개통해 두기는 했었다. 여행자용 심카드는 데이터만 이용할 수 있어서 전화번호가 없었다. 또한, 이 심 카드는 인도 재벌 중 하나인 릴라이언스 그룹의 통신사 지오 (Jio)의 통신망을 사용하였는데, 실롱과 메갈라야의 비도심 지역에서 지오의 데이터 수신이 좋지 않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도 무조건 인도에 도착하면 에어텔 (Airtel) 심카드를 꼭 사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렇다면 심 카드는 어디에서 구하는가. 집 바로 옆에 Airtel 5G라는 간판이 있어서 주인아저씨께 심카드를 파냐고 물어보니, 자기는 심카드가 없단다. 인도 다른 도시 여행 후기에는 길거리에서 심카드를 파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는데, 집 주변에서는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구글 지도를 찾아보니 에어텔 공식 대리점이 이 도시의 상업 지구 느낌인 폴리스 바자 (POLICE BAZZAR)에 유일하게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신나는 마음에 옷을 갈아입었는데, 그 순간 머릿속에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근데 폴리스 바자까지 어떻게 가지?”
평소 같으면 정말 간단한 문제인데, 이곳의 대중교통은 조금 특이하다. 메갈라야 주 정부가 운영하는 버스가 존재하지만, 버스 시간표도 없고, 현지 직원들은 “시간이 정말 많으면 타고, 타더라도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정확히 몰라”라고 버스를 평가하였다. 또 다른 교통수단은 오토바이 택시 (Moto Bike)이다. 오토바이 택시는 다행히 현지 앱인 라피도 (Rapido)와 우버 (Uber) 앱을 통해서 예약할 수 있다. 첫 외출이 아닌 다른 날에 라피도 앱을 통해서 오토바이 택시를 타게 되었는데, 라피도 기사 말로는 실롱에서는 헬멧 착용이 의무여서 생각보다 안전하다고. 실제로도 내 예상보다 더 안전하고, 소통만 잘 된다면 원하는 위치에서 내릴 수 있어서 타고 다닐 만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가격도 후술 할 합승 택시에 비해서 크게 차이가 없고, 장거리도 이동 가능해서 실롱에서 가장 편한 교통수단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현지 길을 아예 모르고 오토바이 자체를 한국에서 타본 적이 없어서 첫 외출에 내가 탈 만한 교통수단은 아니었다. 마지막 선택지는 택시. 그런데 실롱에서는 우버가 안된다. 다른 택시 앱도 모두 안 된다. 인터넷에는 택시 기사 노조의 반대로 인해서 택시 앱이 안 된다고 하는데, 또 혹자는 언덕이 많은 실롱 지형의 특성상 거리만으로 계산되는 우버 앱의 계산이 기사님들의 기름값 계산과 맞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그럼, 길거리에서 택시를 잡으면 되지 않겠는가? 그것도 쉽지 않다. 실롱의 택시는 셰어드 택시 (Shared Taxi)라는 이름으로 합승 문화가 깊게 자리를 잡고 있어서 대부분의 택시는 합승이 아니면 잘 멈추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손을 흔들거나 도로에 가깝게 서 있으면, 택시 기사님이 창문을 내리고 어디로 가냐고 질문한다. 그때 내가 가고자 하는 곳과 방향이 같으면 합승을 시켜주고, 아니면 창문을 올리고 떠난다. 가격은 30루피 (약 480원) 정도로 저렴한 대신, 조금 껴서 가야 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택시가 우리나라 티코 같은 경차인데, 이곳에서는 조수석에 한 명 그리고 뒷좌석에 4명이 앉는 것을 합승의 기본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한 번은 세 명으로 이미 꽉 차서 뒷좌석에 사람을 태우지 못하자 택시 기사님이 15루피의 추가 요금을 받기도 하였다 (총 45루피 / 약 700원). 길을 가다가 택시를 보면, 다른 손님의 무릎 위에 앉아 있는 경우도 생각보다 자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동 방향을 중요시하므로, 아무 곳에서나 택시를 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일치하는 도로 쪽에서 택시를 잡아야 거절의 확률이 적어진다.
합승에 익숙해지고 내가 가는 방향만 잘 알면 탑승하기도 쉽다. 무엇보다 가격이 너무 저렴해서 비가 오는 날이면 택시를 합승해서 출근한다. 하지만 실롱에서의 첫 외출 때는 합승을 하는 법을 몰라서 택시가 지나가는 것만 지켜봤다. 그래서 결국 에어비앤비 집주인에게 문자를 해서 택시를 부를 법을 물어보았고, 집주인은 자신이 아는 택시 기사의 전화번호를 주었다. 내가 사는 곳은 라잇움크라 (Laitumkhrah) 지역인데 폴리스 바자까지 200~300루피 (약 3200 ~ 4700원) 정도를 생각하라고 일러줬다. 기사님은 영어를 잘 못하셨는데, 그래도 어찌어찌 소통해서 연락 후 40분 정도 뒤에 도착하셨다.
폴리스 바자까지는 한 10분에서 15분 정도 걸린 것 같다. 기사님 말로는 오전 10시를 넘기면 이곳의 차량정체가 풀려서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다고. 실제로 살아보니 이곳은 오전 8시에서 9시까지 차량정체가 엄청 심하다. 학생들의 등교 시간이 오전 7시 반이라서 (좀 충격이었다) 특히 차량 정체가 심하다고 한다.
이곳 택시 시스템의 또 다른 특이점은 정확한 장소에 내려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폴리스 바자에 있는 에어텔로 가지만, 에어텔에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폴리스 바자 택시 승강장 (포인트)에 내려줄 가능성이 높다. 도시 내에 폴리스 바자, 라슈미 (Lachumiere), IGP, GPO, 돈 보스코 (Don Bosco), 라이무 포인트 (Laitumkhrah Point) 등과 같은 택시 집결소들이 있어서 이 포인트들을 잇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라이무는 라잇움크라를 외지인들이 부르는 이름이었는데, 이제는 현지인들도 쓰는 지명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 역시도 에어텔 대리점이 아니라 폴리스 바자 포인트에서 내려주었다. 그리고 집주인이 일러준 대로 250루피 (약 4000원)이 나왔는데, 합승이 아니라 단독으로 택시를 탈 경우에는 이 정도 가격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여전히 비싸기는 했다. 나중에 더 많은 현지 직원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내가 이 기사님한테 바가지를 계속 쓰고 있었다고 한다. 같은 거리일 때 100루피에서 150루피가 평균이고, 200루피까지 고려하는 게 맞다고 현지 직원들이 다시 알려줬다.
바가지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방법도 참 어이가 없었다. 현지 직원들이 내가 집이 아닌 식당에 가게 되어서 내 택시를 잡아주기 위해서 기사님과 통화를 했는데, 현지인들한테도 차를 통째로 빌리는 것이라며 500루피를 부르자 현지 직원들이 일동 어이없어했다. 그러더니 통화를 급 마무리 짓고는 다시는 이 아저씨 차를 타지 말라고 일러줬다. 그날 결국은 직원들과 같이 식당에 갔는데, 차를 통째로 빌렸음에도 200루피만 나왔다. 혹시 실롱을 여행하게 될 여행객들을 위해서 주요 택시 포인트 사이의 가격을 적어두자면
라잇움크라 / 돈 보스코 - 폴리스 바자/IGP/GPO/라슈미 (통째로 빌렸을 때) : 100 - 200 루피
라잇움크라 / 돈 보스코 - 폴리스 바자/IGP/GPO/라슈미 (합승으로 탔을 때) : 20 - 30 루피
저 합승 택시의 가격도 사연이 있는데, 나는 30루피 (약 480원)라고 처음에 한 현지 직원에게서 배웠기에 항상 30루피를 내왔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현지 직원 한 명이 20루피 (약 320원)이면 된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 직원이 알려준 팁은 우선 20 루피를 내보고, 택시 기사가 부족하다는 사인을 주면 10루피를 더 줘서 30루피를 주는 것이었다. 혹시나 기사님과 싸움이 나지 않을까 미심쩍은 마음을 안고, 그다음 날 아침에 라잇움크라에서 IGP까지 가는 택시를 탔는데, 웬걸 기사님께 도착해서 20루피만 내니 그냥 그것만 받고 가신다. 참. 허무했다. 또 당한 건가. 요즘은 현지인들에게 30루피를 받는 기사님들도 많다고 하니, 현지 직원의 팁 대로 20루피를 내보고 더 달라고 하면 협상을 더 하기보다는 30루피를 맞춰주는 것을 추천한다. 한화 약 160원 (10루피) 가지고 싸우기에는 우리의 감정과 시간이 더 소중하다.
에어텔 대리점에 가기 전에, 어느 블로그 글에서 인도 심카드를 신청할 때 여권 사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읽었다. 그래서 나도 폴리스 바자에서 내려서 길을 걷다가 Xerox Photo (제록스 포토)라고 적혀있는 간판을 보았고, 바로 들어갔다. 제록스는 프린터 브랜드라서 사진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궁금했는데, 조금 더 생활을 해보니 이곳 실롱에서는 사진관에서 주로 프린트나 팩스 등의 업무도 같이 하는 곳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전문 사진관이라기보다 다양한 사무 업무를 처리해 주는 우리나라의 예전 문구점 같은 느낌이 강하다.
여권 사진을 찍는 방식도 정말 간단했다. 주인아저씨가 흰색 커튼을 펼친 장소에 내가 서있으면 10초 이내로 사진을 마무리한다. 그러고는 바로 뽑아주신다. 당연히 보정은 아예 기대할 수도 없다. 그래도 5장에 60루피 (약 95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사진을 구한 것에 만족한다. 받고 나서 사진을 보니 내가 조금 무섭게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는 했다.
여권 사진을 구하고, 에어텔을 향해서 걷다가 보니 미니소 (Miniso)가 뜬금없이 있었다. 중국에서 자주 보던 매장이 실롱 한복판에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내심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서 구경도 하고, 향수나 슬리퍼같이 당장 필요한 물건도 조금 샀다. 구경하면서 중국 업체들의 빠른 개발도상국 진출과 확장세에 관한 기사가 떠오를 정도로, 인도 내에서도 외딴 지역으로 생각되는 실롱까지 진출한 중국 미니소에 정말 놀랐다.
드디어 도착한 에어텔 대리점. 앉아서 조금 기다리니 직원이 나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심카드를 만들고 싶다고 하자, 아다르 카드(Aadhaar Card)를 보여달라고 한다. 아다르 카드는 인도 주민등록증인데 나에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없다고 하자 그제야 직원은 “어 너 외국인이었어?”라고 물었다. 나중에 더 이야기하겠지만, 내가 인도 동북부에 사는 황인이라고만 생각했다고 한다.
한국인임을 밝히자, 나를 옆에 있는 HP 제품이 가득한 컴퓨터 가게로 데리고 가서 심카드 등록을 시작했다. 여권과 비자가 있으면 큰 문제없이 등록을 해준다. 여권 사진은 필요 없었다. 직원 말로는 요즘은 다 전산화되어서 사진도 현장에서 찍어서 올리면 통과된다고 한다. 여권과 비자도 사본 필요 없이, 현장에서 카메라로 찍어서 바로 올렸다.
서류가 정리가 되는 동안, 에어텔 직원이 한국에 관해서 관심이 엄청 많아서 이야기를 조금 나누었다. 한국 화장품 브랜드를 추천해 달라고 해서 현지 화장품 사이트에서 이니스프리 제품을 보여주기도 하고 (이니스프리가 한국 것인지 몰랐다), 한국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에어텔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외국인을 봤지만, 심카드를 만들러 온 한국인은 내가 처음이라고 한다.
대화를 나누면서 놀랐던 부분은 현지인들이 받는 임금이었다. 내가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이 한 달에 200만 원 정도 된다고 하자, 직원은 깜짝 놀라며 실롱 사람들은 주로 한 달에 25만 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물론, 물가가 저렴하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더 큰 차이에 깜짝 놀랐다. 물론, 정부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4배 정도 더 받아서 100만 원 정도 받지만, 일반 사람들은 25만 원도 잘 받는 것이라고 알려줬다. 그래서 자기가 한국 화장품을 사랑하지만, 구매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며, 다음에 또 실롱에 오면 한국 화장품 좀 사달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인도에서는 수입 제품이라서 가격이 한국에서보다 더 비싸다.)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임금 차이를 여러 번 공부하였지만, 이렇게 직접 체감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물가와 환경의 차이를 고려하면 당연하게 생기는 차이지만, 이러한 경제적인 차이가 실롱 밖 세상과 교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줄이고, 그로 인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삶을 바꾸고 사회에 더 이바지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무조건 임금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고, 국제기구와 정부에서 이곳 사람들이 충분한 노력을 한다면 세상과 교류를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주선하고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간이나 경제적인 제약이 적은 온라인으로 교류할 기회던 다른 도시나 국가로 가서 공부할 기회던, 사람들이 그런 기회를 모르거나 다가갈 수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 기회나 다름없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이 국제 개발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한참 하다 보니, 심카드가 준비되었다. 내가 구매한 요금제는 한 달에 349루피 (약 5500원) 짜리인데, 한국이나 써 본 적 없는 5G 무제한이다. 단, 4G로 전환이 되면 하루에 1.5GB 제약이 생긴다. 그리고 자동으로 갱신되는 것이 아니라, 한 달이 끝날 즈음에 내가 충전을 새롭게 해야 하는 방식이다. 결론적으로 에어텔 직원에는 500루피(약 7900원)를 냈는데, 아마 공임이나 유심값이 추가된 것으로 추측한다. 그렇게 심카드까지 마무리하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택시 승강장에서 250루피로 미리 협상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 뒤에 또 다른 한국인 인턴이 에어텔에 갔더니, 바로 내 이야기를 했단다. 그 인턴이 마침 다시 에어텔에 갈 일이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 해서 나도 에어텔에 따라갔다. 가기 전에 그 직원이 한국 화장품을 사고 싶어 했던 것이 기억나서 그리고 너무 친절하게 나를 맞아준 것이 고마워서 선물용으로 한국에서 가져온 핸드크림을 하나 가져가서 직원에게 선물로 줬다. 미래에 여러분이 실롱에서 에어텔 대리점에 방문하게 되면, 혹시 핸드크림 준 한국인 정부 인턴을 기억하냐고 물어보기를 권한다. 그때까지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기억한다면 그 직원의 기억이 여러분과 그 직원이 더 편안하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그리고 여러분이 더 나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열쇠가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