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인도] 8화.
내가 메갈라야 주정부에서 일하는 부서는 별관 1층에 있다. 그래서 별관으로 출근하는 날에는 계단을 오를 것도 없이 쭉 걷다 보면 부서 사무실이 나온다. 우리 부서는 정부 역량 강화 프로젝트 (State Capability Enhancement Project, SCEP)라고 불리는 부서로, 주정부의 역량을 강화해서 메갈라야주의 경제 및 사회 발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더 시스템적으로 목적의식을 가지고 해결하는 부서이다. 쉽게 말해서, 어느 지역이나 경제 및 사회 발전을 목표로 하지만, 우리 부서는 그러한 목표를 이루는 방법이 더 효율적일 수 있게 준비하는 부서이다.
우리 부서를 담당하는 주정부 수석 차관이기도 하신 삼팟 쿠마 (Sampath Kumar) 개발 국장님이 나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셨는데, 우리 학교 교수님들께서 만드신 Problem-Driven Iterative Approach (PDIA), 한국어로는 ‘문제 기반 반복 접근법’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SCEP라는 부서를 2018년에 만드셨다고 한다. PDIA는 우리 학교에서 국제 개발 관련된 수업을 듣다 보면 자주 나오는 개념이다. 국제 개발 분야를 비롯한 정치 및 정책 분야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 중의 하나는 한 가지의 좋은 해결책이 발견되면 그것을 다른 지역이나 상황에도 비슷하게 적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국가나 지역의 사례에서 배움을 찾고 그것을 자기 지역의 문제에 적용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같은 국가 안에서도 지역별로 인구구조나 산업구조를 비롯한 특성과 상황이 다르고, 국가별로는 큰 차이가 더 벌어지기 때문에 외부의 좋은 해결책은 참고하기에는 좋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PDIA 접근법은 새로운 해결책을 도입할 때, 여러 번의 실험과 시도가 필요하며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파일럿 사업), 이 과정에서 피드백을 찾고 반영해서 더 현지에 맞는 방법을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현지에 대한 강조가 강하다 보니, 종종 PDIA를 공부하다 보면 개발도상국의 구성원이 아닌 나의 역할이 무엇 일 까는 고민하게 된다. 2025년 초에 런던정치경제대학교의 국제개발 블로그에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 내용 역시도 국제개발에서의 “전문가"의 역할이었다. 대학원에서 국제 개발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 나와 같이 해외의 대학이나 유수의 대학에서 공부한 국제 개발 전문가들이 국제 개발의 현장에서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내가 듣는 수업의 세계 은행 출신이신 마이클 울콕 (Michael Woolcock) 교수님의 글을 비롯한 첫 학기에 들은 수업의 내용을 다시 읽어본 후의 내가 내린 결론은 외부의 전문가들은 마치 구원의 손길을 내밀듯 완벽한 해결책을 만들어서 제공하는 사람 (Savior Doctor Model)이 아니라, 개발 현장의 구성원들이 함께 현지에 맞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사람 (Route Y Model)이어야 한다. 따라서 PDIA 접근법 역시 현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현지에서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와 같이 선진국에서 국제 개발에, 다른 국가를 돕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까? 그 해결책을 찾는 과정을 돕는 일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 중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공유하고, 현지에서 필요로 하는 인적 및 물적 자원을 연결해 주는 그 모든 과정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 물론 블로그 글에서도 간단히 공유하였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경험이 현지 사회에서의 정책적 우선순위나 관심사와 맞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제아무리 환경 문제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환경 문제가 정말 중요한 이슈임에도, 현지 사회에서는 정책적으로 교육이나 식량 문제와 같은 다른 이슈들이 우선순위에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국제개발에서 일을 하다 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이 완벽하게 맞지 않는 현장도 꽤 있으리라 예상한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한 국제 개발 전문가라면 단순히 세상을 돌며 사람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고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고, 우리의 가치가 “더” 맞다며 밀어붙일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지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가장 도움이 필요한 문제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쌓는 것을 목표로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해결책을 찾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럴 때조차도 현장의 구성원들과 소통하면서 현장에 맞는 해결책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다시 실롱으로 돌아와서, 정부 역량 강화 프로젝트 부서에서는 정부와 주 구성원들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어린아이들의 영양과 성장을 돕는 Early Childhood Development Mission, 청소년들의 역량 및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하는 MPOWER (Meghalaya Program for Adolescent Wellbeing, Empowerment and Resilience), 산림 파괴를 막고자 하는 Payment for Ecosystem Services 등 메갈라야 주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데 필요한 사회 곳곳의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이 목표이다. 나는 이 부서 내에서 주로 부서 총괄 커뮤니케이션 (Communication) 팀과 MPOWER 팀 소속으로 인턴을 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팀은 부서 내 모든 팀과 개발 국장님의 커뮤니케이션을 모두 담당하는 팀이고, MPOWER 팀은 현재 주 내의 학교와 교사의 역량을 강화하고 청소년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 정부가 만들어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팀이다.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점은 메갈라야주 정부 내의 약 74%의 인구가 35세 이하인 매우 젊은 주라는 것이다. 인구의 약 49%가 19세 이하라서 아이들의 주 (Children State)로 메갈라야주를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다른 자원이나 산업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메갈라야에서는, 우리나라가 70~80년대에 개발을 했던 건과 같이 높은 수준의 인적 자원을 양성하는 것이 경제 및 사회 성장의 원동력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MPOWER 팀은 주의 청소년들이 새로운 꿈을 찾아서 사회에 더 많이 이바지할 수 있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신체적 및 정신적으로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종합적인 지원을 해주는 프로젝트이다.
아직 일을 하는 중이기 때문에 모든 내용을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인턴으로서 크게는 두 개 주제의, 작게는 6개에서 7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일부 프로젝트는 이미 주정부에서 진행하고 있던 커뮤니케이션 프로젝트에 대해서 새로운 관점이나 기획 방향을 제시하는 일을 하고, 일부 프로젝트는 내가 이곳으로 와서 새롭게 전략 및 기획 단계부터 주도적으로 진행해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있다. 전략 기획서도 두 가지를 쓰고 있고, 운영 계획서도 역시 써보는 등 정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일들이다.
운이 좋게도 내가 온 첫 주부터 개발 국장님께서 지금 우리 부서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미 MPOWER 나 ECD를 비롯한 팀들에서 성과를 만들어 나가고 있음에도 아직 그러한 부분들이 제대로 홍보되지 않아서 더 많은 주민이 혜택을 보기 위해서는 그 프로그램들이 더 적극적으로 주민들의 곁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해본 나로서는 아주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이러한 국장님의 좋은 의지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다 해볼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팀장님과 팀원들 덕분에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일을 하는 또 다른 부서인 MPOWER 팀 역시 감사하게도 많은 권한을 나에게 주고, 필요한 자료도 다 챙겨주셔서 정말 재미있게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일한다. 특히 MPOWER 팀과 하는 일 중에서는 주의 청소년들과 직접 일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어서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이보다 좋은 기회가 없다.
우리 부서는 주 교육부나 보건부와 같이 전통적인 부서가 아니라 새롭게 생긴 부서이기 때문에 부서의 운영 방식도, 사람들도 모두 젊다. 대다수의 구성원이 20대에서 40대이다. 그래서인지 부서에서 일을 하다 보면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정부 기관의 모습이 아니라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과 같은 느낌도 든다. 이러한 구조가 오히려 나에게는 너무 잘 맞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가 빠르게 수용되고, 인턴임에도 스스로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새로운 일들을 내가 직접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환경이라서 내가 열심히만 한다면 많은 경험을 쌓고 나올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전히 정부 소속으로 일을 하므로 조금은 느린 의결 과정도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있지만, 첫 한 달이 나에게는 너무 순식간에 지나갔을 정도로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
인도 기업에서 인턴을 하거나 인도의 우리나라 기업 사업장에서 인턴을 하는 경우는 있어도 인도 지방 정부 소속으로 인턴을 하는 사람은 지금까지도 없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거의 없으리라 생각한다. 주 정부마다 그리고 주 정부 내에서도 부처나 부서별로 분위기는 다 다르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가 모든 인도 정부나 지방 정부에서 이야기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의 이야기가 인도 지방 정부에서의, 해외 지방 정부에서는 이렇게 운영되는구나 하고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국장님께서는 항상 더 많은 세계의 인재들이 메갈라야주에 와서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하시니, 여러분에게도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