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인도] 10화
주 정부 우리 부서에서 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는 Human Development Leadership Project (HDLP), 인간 개발 리더십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의 주안점은 메갈라야주의 사회 및 경제 발전이 주정부의 관료들, 고위 관료와 정치인들이 하향식으로 이끄는 발전이 아니라, 각 시청 및 구청에 있는 공무원과 지역 사회 구성원들이 리더십을 가지고 끌어 나가는 발전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과 같이 주로 경제 및 사회 발전 계획은 정부가 주도해서 세우고, 기업이나 지역 사회가 이에 발맞추어서 발전하는 방식으로 오랜 기간 진행됐다. 정부의 하향식 발전은 잘 활용이 되었을 때는 따른 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루고, 효율적인 성장을 도울 수도 있지만, 잘못되면 부정부패나 시민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거나 삶의 짊을 높이는 성장이 아니라 (양적으로) 보기에만 좋은 성장으로 되기 쉽다. 그러므로 8화에서 설명한 PDIA 접근법에서도 로컬 리더십, 즉 그 사회 속에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드는 성장을 권장한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서 HDLP 훈련 프로그램과 HDLP을 관장하는 주정부의 조직인 Human Development Council (인간 개발 위원회) 회의가 6월 12일과 13일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물론, 회의만 한 것은 아니고, District Nutrition Leadership Workshop, 즉 구역별 공무원들에게 영양 문제 해결을 위한 리더십 워크숍도 같이 진행되었다. 인간 개발 위원회에는 메갈라야주 총리를 비롯하여 유관 부처의 장관이 모두 참여하는 행사인 만큼, 팀원들도 회의 준비를 하는 동안 고생이 많았다. 국장님께서 가시는 행사인 만큼, 인턴들도 모두 사무실이 아니라 회의장으로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때 나는 막 인턴 2주 차를 시작했던 때였고, 다른 인턴들은 출근 첫 주였는데, 기대가 되면서도 과연 신입 인턴이 어떠한 내용을 배울 수 있을까, 우리가 얼마나 참여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목요일 출근 준비를 했다.
사실 회의 내용을 제외하고 또 다른 기대하던 점은 회의가 열리는 장소였다. 큰 회의고, 중요한 인사와 관계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회의라서 실롱에 몇 없는 고급 호텔인 코트 야드 바이 메리어트 (Courtyard by Marriot), 즉 메리어트 호텔에서 회의가 개최되었다. 실롱에 와서 에어컨을 보지를 못했었는데, 메리어트에는 에어컨도 있고, 호텔이다 보니 제공되는 점심의 질도 높지 않을까 기대했다. 물론, 현지 직원들은 메리어트 음식이 그렇게 맛있는 편이 아니라고, 큰 기대를 하지는 말라고 일러줬다.
평소에 출근하는 사무실에 비해서 호텔은 나와 몇몇 인턴들이 사는 라잇움크라에서 좀 거리가 있기에, 부서에서 우리를 픽업할 기사님을 아침 일찍 보내주셨다. 그래도 교통 체증이 있어서 결국은 오전 9시 반 시작인 회의 9시에 도착했다. 호텔에 들어가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아, 여기는 확실히 시원하구나. 그리고 호텔답게 무료 신문도 있어서 로컬 신문을 한 부 들고 회의장 안으로 들어갔다. 회의장에는 무수하게 많은 책상과 의자가 있었는데, 메갈라야주에 속한 12개 구역 (District)의 인간 개발팀과 구역 정부 소속의 공무원분들이 충분히 앉을 수 있게 준비한 것 같았다.
회의의 주인공은 각 구역의 공무원분들과 고위 관료분들이 시기에, 회의 준비와 진행을 돕는 우리 부서와 인턴들은 회의장 제일 뒤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서 회의에 참여했다. 이번 회의는 인간 개발 위원회의 진행 성과를 논의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각 구역의 공무원이 인간 개발, 특히 영양 문제 해결을 위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간단한 인사말이 끝나고, 바로 영양 문제에 대한 특강이 시작되었다. 학부를 졸업하고 세계 식량 계획 (World Food Programme)에서 인턴을 하면서 아이들의 영양 문제에 관해서 잠깐 공부한 적이 있기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특강을 들었다.
앞서 이야기를 한 것과 같이, 메갈라야주는 젊은 아이들, 학생들, 청년들을 주의 미래 경제성장 원동력으로 보고, 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주에서 신경 쓰는 문제 중 아이어머니가 아기를 가진 후부터 천일 동안 아기가 충분한 영양소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첫 천일이 아이의 성장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이유는 이때 어린아이들이 영양소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면, 이후에도 성장이 더뎌지고, 장기적으로 그들이 성장하였을 때도 그들의 역량을 저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량의 저하는 어릴 때 영양소를 공급받지 못한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가난한 삶을 살게 만들고, 그 자식들까지도 영양소 부족과 가난을 대물림받게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주 정부 차원에서 아기들의 영양소 공급을 신경을 써서 이들이 장기적으로 경제에 이바지할 뿐만 아니라, 악순환을 끝낼 수 있는 주체로 성장시키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해결책이다.
이러한 내용이 담긴 국제 식량 정책 연구소 (International Food Policy Research Institute)의 특강이 끝나고, 우리 개발 국장님께서도 현재 메갈라야주의 영양 문제에 대한 특강을 이어가셨다. 아이들의 영양소 공급 및 성장 문제를 수치화할 때 자주 사용되는 지표 중 하나가 스턴팅 지수 (Stunting Rate), 즉 발육부진을 겪는 아이들의 수이다. 그러므로 국장님께서도 메갈라야주의 스턴팅 지수가 인도 내 다른 주에 비해서 높고, 오히려 아프리카 부룬디의 수치와 맞먹는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실제로, 스턴팅 지수가 높다는 것은 많은 아이들이 심각한 영양 결핍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출산하는 아이의 수가 많더라도 정상적인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에 장기적으로 개개인의 건강 등 더 큰 사회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메갈라야 주정부에서도 해결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거나 계획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주내 각 지역에 영양 회복 센터를 통해서 영양 결핍을 겪는 아이들에게 지원하거나, 우리나라 지역 아동 센터 개념의 앙간와디 (Anganwadi) 센터의 직원들을 통해서 아이들의 영양에 관한 지식을 부모님들에게 전파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문화 및 사회적인 장벽이 있어서 이러한 해결책들이 모두에게 혜택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일부 지역에서는 영양 회복 센터가 너무 멀리 있거나, 깨끗한 물과 현대식 화장실과 같은 사회 기반 시설 자체가 부족한 경우도 있어서 문제 해결 속도가 더디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그러므로 국장님께서는 HDLP를 통해 구역 공무원들의 문제 해결 역량을 높여서 구역에서 주까지 모든 정부에서 빠르고 정확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셨다.
그 이후에도 영양에 대한 특강이 조금 더 이어졌는데, 뒤에서 지켜보니 열심히 강의를 듣는 공무원분들이 많고, 앞에서 특강 하는 연사가 멘티 미터 (Mentimeter)와 같은 실시간 설문을 진행할 때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특강이 계속 이어졌기에 나도 그렇고 조금 지친 순간들이 있기는 했지만, 메갈라야주의 문제점을 가감 없이 이야기하는 것도 인상 깊은 점이었다. 이렇게 문제를 피하거나 포장하려고 하기보다는 명확하게 짚어야 해결책을 찾는 것도 쉬워진다. 이러한 점은 우리도 정책을 만들 때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특강이 마무리되자, (기대하던) 점심시간이었다. 호텔 점심이라서 조금은 기대를 안고 입장했는데, 그냥 그랬다. 인턴을 시작하고 카시족의 음식만 점심으로 먹다가 인도 본토 사람들이 자주 먹는 카레가 나온 점은 특이점이었는데, 전반적으로 와 5성급 호텔에서 먹는 엄청난 맛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아마 기대를 내가 너무 크게 하고 간 것 같다. 그래서 뷔페 형식이었음에도 한 접시만 먹고 정리했다.
점심시간 이후의 회의는 각 구역의 공무원분들이 활동하는 시간이었다. 각 구역의 영양 상황에 대한 문제점을 제공된 데이터를 기반해서 찾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드는 활동이었는데, 다들 열의를 갖고 참여하셨다. 물론, 우리는 인턴이고 각 구역의 현황에 대해서 잘 모르기에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활동하는 공무원들을 보는 국장님은 미소가 가득하시다. 매우 회의가 진행되고,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는 모습이 만족스러우셨던 것 같다.
활동이 마무리된 이후에는 각 구역에서 대표자가 자신들이 찾은 문제점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시간이었는데, 생각보다 각 프레젠테이션이 오래 걸렸다. 주로 구역 대표자분들께서는 더 많은 시민이 아이들 영양 문제에 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캠페인, 더 많은 영양 회복 센터를 짓기 위한 지원 등 자신들이 현장에서 느낀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하셨다. 발표를 듣다 보니, 꼭 형식이 내가 한국에서 했던 정책 아카데미나 정책 관련 활동들과 비슷해서, 한국에서 내가 생각보다 제대로 배웠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커뮤니케이션 팀에서 일해서 그럴지는 몰라도,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고취하는 것과 관련된 지식을 전파하는 것에 대해서 거의 모든 구역 대표자분들이 이야기하셨는데, 역시 현장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지만, 그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나에게 HDLP 관련 커뮤니케이션 업무도 배정되었었기에, 대표자분들의 발표는 어떠한 방법으로 소통하였을 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바꿀까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방법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 했다. 아쉽게도, 내 다른 업무가 과다하게 늘어나면서, 이 연구는 아쉽게도 진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회의 1일 차가 마무리되었지만, 아직 모든 구역의 대표자가 발표를 마치지는 못했다. 각 대표자분이 발표를 생각보다 길게 하셨고, 일정도 전반적으로 지연된 부분들이 있어서 2일 차에도 계속 발표를 진행했다.
2일 차 발표가 시작되기 전에 인도공과대학교 뭄바이 (IIT Bombay)의 연구원이 아이뿐만 아니라 아이어머니들이 겪는 영양 문제에 대해서 발표를 진행하셨다. 그 이후에는 다시 바로 각 지역 대표자분의 발표가 이어졌는데, 전날과 비슷한 이야기도 많았다. 그래도 현장에서 몸소 겪으신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해주셔서, 현장 상황이 어떠한지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기관에서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 주정부는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를 전반적으로 다 다루는 발표여서, 확실히 이론적인 이야기보다는 당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무 중심의 회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계 식량 계획에 있을 때는 본부에서 근무해서, 실무자들과 직접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지 않았고 종종 혼합 금융 모델 (Blended Finance Model)과 같은 이론적인 정책 논의나 세미나가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구역 공무원분들은 시민들을 최전선에서 직접 상대하기 때문에 실무가 더 강조되는 듯했다.
발표가 너무 길어져서 중간에 인턴들은 조금 일찍 나와서 점심 식사를 시작했다. 점심 직후에 주 총리께서 참석하실 계획이어서, 더더욱이 식사 시간이 쫓길 것이라고 예상되어서 직원분들이 먼저 식당으로 보내주셨다. 2일 차 점심은 전날과 다르게 정말 만족스럽게 먹었다. 특히, 파니르 카레 (Paneer Curry)와 생선 강정 볶음 요리가 우리 입맛에도 너무 잘 맞는, 내가 기억하는 맛들 과 일치하는 맛이라서 이날은 거의 세 접시를 먹었다. 오랜만에 완전히 배가 부를 정도로 먹은 것 같다. 밥을 먹으면서 다른 인턴들과 국가별 학교 교육 방식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일부 인턴들은 주말에 등산을 가고자 해서 그에 대한 계획도 세웠다. 정말 순식간에 우리의 점심시간이 지나갔고, 거의 다 먹어갈 때쯤 다른 공무원분들이 우르르 나오셨다.
점심시간 이후에는 공무원들 역량 강화 워크숍은 마무리되고, 메갈라야주 인간 개발 위원회 회의가 진행되었다. 일부 구역 대표자분들 중 가장 발표를 잘한 구역의 대표자분들이 주 총리님 앞에서 다시 발표하셨고, 이후에는 주 최고행정관 (행정부지사) 등 다른 분들의 답변 및 연설이 이어졌다. 특히 행정부지사님께서는 메갈라야에서 하는 모든 일들을 더 잘 알릴 수 있는 홍보대사가 더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셔서, 나도 미국이나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러한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주 총리님 연설이 있었는데, 그분이 연설하시는 것을 처음 보는 자리였기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들었는데, 주 총리님께서는 각 부서가 목표를 확실히 정하고 목적의식을 갖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과 현장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정책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셨다. 물론 나에게 직접 하신 말씀은 아니었지만, 현장과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 메갈라야로 온 나에게 응원을 해주시는 것처럼 들렸다. 마지막까지 여름을 어디서 보낼지 고민했지만, 결국 살롱으로 온 것이 제대로 된 선택을 한 것이라고.
주 총리님의 연설이 마무리되고 주정부 사회 복지국장님이 마무리 연설을 하셨는데, 매우 종교적 색채가 강한 특이한 연설이었다. 연설을 들으면서 인턴끼리, 직원들하고 서로 자주 쳐다봤다. 그래도 큰 문제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첫 직장으로 세계 식량 계획을 갈 때도 생각했던 내용이지만, 어떠한 개발 문제라도 우선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줘야 다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세계 식량 계획에서 근무하면서도 뼈저리게 느꼈지만, 이틀 동안 들어간 이번 회의에서도 다시 한번 그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환경 문제 등 다른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도 중요하고, 모든 목표가 동등하게 중요함을 알고 있지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처지에서는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그 정도의 안정감이 삶에 생겨야 다른 문제를 돌아보고 삶과 세상을 바꾸어 나갈 여유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번 인턴십은 식량이나 영양이 주요 업무가 아니지만, 최소한 다른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는 문제, 교육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 중점을 두고서 일하고자 한다. 회의를 다 듣고 나니 지치는 마음도 있었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어떻게라도 들을 기회는 항상 감사하게 느낀다. 들어갈 때는 고급 호텔에서 이틀은 어떨까 생각하면서 회의장에 들어갔던 것 같은데, 내가 여기서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