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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노스 이스턴힐 대학교 학회의 유일한 한국인 발표자

[우리가 모르는 인도] 11화

by 모험가 콜린

새로운 곳을 방문할 때면, 나의 목표는 가장 현지인들과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을 찾고, 그들과 어울려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찾는 것이다. 일반적인 관광객처럼 새로운 곳을 구경하는 때도 있지만, 실롱에서의 생활과 같이 내가 장기간 한 곳에서 머물 때는 외국인으로서 그들과 ‘다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현지인과 비슷하게 삶을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대다수의 여행객에게 현지인과 어울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클럽과 같은 사교 장소에 방문하거나 파티에 가는 것인데, 성격상 파티에 가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클럽을 가는 것은 더더욱 싫어한다. 오히려 나는 박물관 투어를 현지인들 사이에 섞여서 가거나, 학술 행사에 참여해서 현지 학생들이나 학자들과 함께하는 방법을 택한다.


메갈라야와 동북부 사람들에게 실롱은 메갈라야의 주도라는 것 말고도, 비교적 높은 교육의 질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내가 사는 라잇움크라만 해도 주변에 고등학교와 대학교가 넘쳐나서, 등교 시간인 아침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가득하다. 유명한 대학으로는 실롱 대학 (Shillong College), 가톨릭 돈 보스코 재단이 운영하는 세인트 앤서니 대학 (St Anthony’s College), 그리고 노스 이스턴힐 대학교 (Northeastern Hill University)가 있다. 이 중 노스 이스턴힐 대학교는 메갈라야주의 유일한 국립 대학교이고, 1973년에 세워진 인도 동북부에서 유명한 대학 중 하나이다. 노스 이스턴힐 대학교가 나가랜드 대학교 (Nagaland University)와 미조람 대학교 (Mizoram University)의 설립에 도움을 준 역사가 있어서, 메갈라야 이외의 동북부 주에서도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이 많다. 내가 살고 있는 실롱에 메인 캠퍼스가 있고, 같은 주 내 투라 (Tura)라는 도시에 제2캠퍼스가 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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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내가 방문한 노스 이스턴힐 대학교의 올드 게스트 하우스 전경, (우) 세인트 앤서니 칼리지의 홍보 전광판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은 이곳에서 칼리지 (College)와 유니버시티 (University)의 차이다. 실롱 대학이나 세인트 안토니 대학은 ‘칼리지’로 불리는데, 이들은 주로 유니버시티의 하위 기관으로 생각하면 좋다. 칼리지 자체적으로는 학위 수여가 불가능함으로, 특정 대학 (주로 노스 이스턴힐 대학)의 소속으로 학위를 수여한다. 물론, 칼리지마다 문화가 다르고, 자체 행사도 많이 존재하지만, 학위 수여와 커리큘럼에 대한 부분은 유니버시티의 목소리가 더 크다. 우리나라로 치면, 유니버시티가 종합 대학교, 칼리지가 (다양한 과가 섞여있는) 단과대학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아쉽게도 칼리지에서 진행하는 학회나 학술 행사는 찾기가 어려웠고, 노스 이스턴힐 대학교에서 6월 말에 ‘지속 가능한 마케팅, 가치 전달, 그리고 비즈니스를 위한 지속 기술에 관한 국제학술대회’(International Conference on Sustainable Marketing, Delivery Value, and Sus-Tech for Business)를 개최한다는 것을 대학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찾는 과정에서 실롱에 있는 모든 대학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검색했던 것 같다. 물론, 학술대회의 주제를 처음 읽었을 때는 나와 크게 관련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마침 내가 정부 커뮤니케이션 팀에서 인턴을 하고 있고, 대학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시작한 AI와 댓글 마케팅 (Comment Marketing)에 관한 연구의 초안이 있어서, 이 연구에 대해 발표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신청 방법을 알아봤다.

Screenshot 2025-07-15 at 10.40.49 PM.png 학술대회에 연구 초록을 제출하기 위해서 보낸 이메일

여느 학술대회와 같이 연구 초록 (Abstract)를 먼저 제출하고, 초록이 심사에서 통과가 되면 연구 논문이나 보고서를 제출하고, 그것도 심사에서 통과가 되면 학회에서 발표할 기회가 주어진다. 애초에 학술대회를 알게 된 것이 5월이었고, 그때가 마침 학기 말이었기 때문에, 짐 옮기고, 인도 비자 준비하고, 한국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나니 생각보다 초록 제출 마감일까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다행히 이미 진행하고 있는 연구에 대한 초록이었고, 학술대회 양식에 어느 정도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고쳐서 한국을 떠나기 전에 (즉 1화에서의 인도 인턴 비자가 나오기 전에) 초록을 우선 학술대회 이메일로 제출했다.


학술대회의 긴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지속가능한 발전, 비즈니스, 기술, 및 마케팅에 관한 다양한 주제를 제출할 수 있었기에, 내가 이미 진행하던 AI와 댓글에 관한 연구 역시 댓글 마케팅 (Comment Marketing)과 관련이 있어서 초록을 제출할 수 있었다. 물론, 혹자는 이런 학회가 유명한 해외의 학회도 아닌데 왜 연구 초록을 제출하고 학술대회에 참가하고자 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연구를 앞으로 더 진행하면서 더 많은 관점을 들어보고 싶었다. 이미 대학원에서 포스터 페어(Poster Fair)를 통해서 우리 학교 대학원생과 학부생으로부터 피드백을 받고, 교수님께 추가적인 피드백을 수업에서 받았지만, 다른 나라의 학자들은 내가 진행하는 연구를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했다. 물론, 나의 연구에 도움이 되냐를 떠나서, 인도 동북부 대학생들은 어떠한 연구를 지금 진행하고 있는지 매우 궁금했다.


연구 초록을 제출하고 일주일 정도 지나서, 학술대회 운영진으로부터 연구 초록이 심사를 통과했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동시에 학술대회 등록과 최종 연구 논문을 제출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등록 절차는 학술대회 참가비를 내는 것이었는데, 해외 학생 참가비가 인도인 학생 참가비에 비해서 약 2배 정도 더 비쌌다. 하지만 해외 학생 참가비를 제출하려고 결제 버튼을 누르자, 해외 카드를 받아주지 않아서 인도인 학생 참가비(Indian Student Fee)를 인도 현지 결제 앱으로 내고, 등록을 마쳤다. 다행히 주최 측에서도 큰 문제로 삼지는 않았다. 그다음은 연구 논문 (보고서) 제출이었는데, 일부 영국식 스펠링을 미국식으로 바꾸고 (학술대회 지침이 영국식 영어가 기본이지만, 일부 단어는 미국식 표기법을 활용하라고 일러줬다), 참고 문헌을 적는 양식만 바꾸면 됐다. 대신 연구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한 가지 주최 측에 부탁한 것이 있는데, 학회지나 다른 저널에 출판하지는 않는 것이었다. 애초에 지금 진행하는 연구가 초기 단계이고, 앞으로 더 많은 수정을 거쳐서 다른 저널에 제출할 계획이었던 만큼, 학술대회에서 발표만 진행하고 싶다는 요청을 드렸다.

Screenshot 2025-07-15 at 10.44.56 PM.png 지속 가능한 마케팅, 가치 전달, 그리고 비즈니스를 위한 지속 기술에 관한 국제학술대회 일정표의 일부

사실 보고서까지 제출이 끝난 이후,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나의 요청이 받아들여졌는지, 내가 발표를 할 수 있는 것인지 답이 없어서 운영진 왓츠앱(WhatsApp)으로 연락했더니, 곧 연락이 갈 것이라고 한다. 결국 학술대회 이틀 전인 6월 25일에 최종적인 답이 왔다. 정확히는 학술 대회 일정이 참가자들에게 전달되었고, 일정표를 보고 나서야 내가 발표한다는 것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발표 준비를 위해서 프레젠테이션을 만들고 나니, 생각이 문득 들었다.


“노스 이스턴힐 대학교 어디에서 정확히 학술대회가 열리는 거지?”


홈페이지와 이메일에는 모두 노스 이스턴힐 대학교의 올드 게스트 하우스 (Old Guest House)에서 개최된다는 점이 적혀있는데, 구글 지도에 검색을 하면 올드 게스트 하우스가 나오지를 않는다. 그래서 노스 이스턴힐 대학의 바타차지 교수님 (Professor A. Bhattacharjee)의 전화번호를 받아서 연락을 드렸더니, 신호가 좋지 않은지 계속 끊겼다. 결국 교수님께서 조금 시간이 흐른 후, 올드 게스트 하우스에 가셔서 위치를 핀 해서 왓츠앱으로 보내주셨다. 왓츠앱 상의 지도와 구글 지도를 비교하면서, 구글 지도에서 가장 가까운 건물을 찾아서 저장해 두었다. 가는 방법은 택시를 빌리는 것이 가장 쉬웠지만, 현지 직원들이 대학까지 오토바이 택시로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라고 해서 오토바이 택시를 부르기로 하였다.

Screenshot 2025-07-15 at 10.46.26 PM.png 사진 상에서 빨간 네모가 있는 곳이 NEHU 올드 게스트 하우스이다. 구글 검색 시에는 UGC-HRDC 게스트 하우스를 검색하면 된다.

학술대회 당일, 늦었다. 아침에 분명히 시간을 충분히 잡고 일어났는데, 준비하고, 프레젠테이션을 마무리하고 보니, 개회식이 시작하는 오전 9시에 가까스로 맞출 수 있는 시간밖에 없었다. 그래서 빠르게 정장으로 갈아입고 오토바이 택시를 불렀다. 택시 앱에 찍히는 예상 도착 시간은 오전 8시 58분. 그래도 올드 게스트 하우스 문 앞까지 데려다줄 것을 고려하면, 시간상 괜찮아 보였다. 그래서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이동을 시작했는데, 웬걸 내가 지금까지 타본 오토바이 택시 중에 가장 무서운 경험이었다. 기사님께서는 여타 기사님들처럼 운행하셨는데, 가는 길이 문제였다. 언덕을 계속 오르락내리락해야 하고, 일부 길은 훼손이 되어있거나 포장이 완벽하지 않았고, 또 방지턱은 왜 그렇게 많은지 실롱에서 볼 수 있는 방지턱은 다 본 것 같았다. 그래서 가는 내내 엉덩이가 중간중간 붕 떴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찌어찌 학교 정문에 도착했는데, 대학이 엄청 크다. 관악에 있는 서울대처럼 입구부터 올드 게스트 하우스나 단과 대학 건물들까지 거리가 엄청 멀고, 길도 너무 많이 나 있어서 어디로 갈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기사님께서 경비원분들께 카시어로 물어가면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갔다.


사실 구글 지도나 택시 앱의 지도를 따라가면 되지 않냐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실롱에서 구글 지도는 100% 신뢰할 수 없다. 종종 지도상에는 없는 길들이 있기도 하고, 지도가 알려주는 길이 오히려 돌아서 가는 길인 경우도 많다. 그래서 현지 직원들도 지도만 믿기보다는, 현지 주민들에게 길을 묻는 것이 훨씬 낫다고 이야기한다. 경비원분들이 알려주신 길로 갔더니 웬 숲길이 나온다. 구글 지도에서도 맞는 길이라고 해서 따라가니, 숲길이 더 나온다. 이미 지도상으로는 걸어갈 수 있는 곳까지 다다라서, 기사님께 내려달라고 하니, 기사님께서 “아냐, 여기서 내려주면 네가 길 잃을 것 같아. 게스트 하우스 앞까지 가줄게.”라며 친절하게 길을 찾아서 나를 게스트 하우스 앞에 내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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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게스트 하우스로 가는 길에 보이는 대학 내 숲길, (우) 올드 게스트 하우스 앞에 붙어있는 학술대회 배너

“게스트 하우스”라는 개념이 생소할 수 있는데, 인도에서 지내보니 우리나라의 청와대 영빈관과 여관 그 사이의 개념이다. 주로, 대학이나 정부 소유의 게스트 하우스가 많은데, 이들은 대학이나 정부가 손님을 맞이할 때 손님이 지내는 숙소 역할을 한다. 또한, 정부 혹은 대학의 직원들이 출장을 오갈 때 쓰는 곳도 이 게스트 하우스다. 게스트 하우스에는 회의실도 있고, 콘퍼런스장도 존재한다. 물론, 일부 숙소로서 역할도 크기에, 게스트 하우스는 개인도 연락하면 저렴한 가격에 방을 빌릴 수도 있다. (방의 질은 장담할 수 없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인도 다른 지역에서 오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게스트 하우스 숙소에서 밤을 보냈다.


게스트 하우스 세미나실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학술대회는 시작했고, 인도 콜카타의 IEM 대학교 사티아지트 차크라바르티 (Satyajit Chakrabarti) 교수님께서 온라인으로 축하 연설을 하고 계셨다. 교수님께서 이야기하신 내용 중 가장의 기억에 남은 것은 청년들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결국은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신 부분이다. 교수님의 이 말씀에 격하게 동의한다. 물론, 이미 삶을 더 오래 사신 분들의 경험과 연륜에서 배워야 하는 부분도 많고, 우리가 쉽게 “꼰대”라고 평가 절하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결국은 미래를 살아가야 할 청년의 목소리가 정책 결정 과정에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일부 청년 정책이 세계 각국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청년들이 직접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기는 정말 어렵다. 물론, 기존의 정책 시스템에 더 많은 청년이 초대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청년들이 직접 행동하고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환경을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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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행사가 진행된 게스트 하우스 내부의 세미나 홀, (우) IEM 대학교에 대한 소개 영상과 교수님께서 소개하시는 모습

차크라바르티 교수님이 축하사가 끝난 이후에 참석하신 교수님들에 대한 자세한 소개와, 학술대회를 공동 주최하는 IEM 대학교에 대한 소개 영상을 시청하였다. 행사가 조금 진행된 뒤에는 텍사스공과대학교 (Texas Tech University)의 아툴 파르바티야르 (Atul Parvatiyar) 교수님께서 온라인으로 축하 말씀을 전해주셨는데, 줌에 문제가 있는지 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학술대회 운영진이 방법을 찾다가, 파르바티야르 교수님의 왓츠앱 전화번호를 가지고 계신 교수님께서 전화를 걸고, 스피커 모드로 통화를 바꾼 뒤에, 전화기를 마이크에 가져다 대서 교수님의 목소리가 크게 들릴 수 있도록 하였다. 그 모든 과정을 보면서, “아 나도 저런 일이 생기면, 저렇게 대처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후술 하겠지만 나도 수업하다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렇게 한 이후에도 인터넷이 끊겨서 줌 화면 자체가 한동안 안 나오기도 했었다.

IMG_2877.jpeg 아툴 파르바티야르께서 줌으로 학술개회에 참여하시는 모습. 전화기가 소리를 위해서 사용되기 전에 찍은 사진이다.

파르바티야르 교수님의 연설도 어찌어찌 진행하고 나니, 아침 식사 시간이 되었다. 사실 처음 가본 학술대회고, 교수님이나 박사 과정 학생들만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어떻게 친해질까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바타차지 교수님께서 나에게 아침 식사를 하러 오라고 계속 부르셨다. 그래도 외국인이라서 조금 더 챙겨주신 것 같다. 아침 식사는 게스트 하우스에 있는 식당에서 진행되었는데, 서양식 음식이 제공되어서 조금은 놀랐다. 토스트, 시리얼, 달걀 오믈렛이 나왔는데, 특이한 점은 시리얼을 위한 우유가 차갑지 않고 뜨거웠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나름 맛있게 먹으면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우리가 앉은 테이블이 국제적 테이블 (International Table), 즉 외국인들만 모여 앉은 테이블이었다.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모든 외국인 참가자가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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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내가 담은 아침 식사 한 접시, (우) 게스트 하우스에서 제공된 아침 식사 뷔페

방글라데시에서 온 교수님 두 분을 비롯한, 시에라리온, 말라위, 앙골라, 태국에서 온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대학원생들 모두 인도 대학에서 현재 공부를 하거나 박사 후 과정으로 연구하고 있었다. 인도 동북부의 다른 대학인 마니푸르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고, 한 유학생만 노스 이스턴힐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나라들에서 온 친구들이라서 신기하기도 했고, 자주 만나기 어려운 국가의 사람들인 만큼, 궁금한 점도 많았다. 특히, 시에라리온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국제 개발에 관한 생각을 어렴풋이 가지고 있을 때쯤 꽂혀있던 국가여서 시에라리온 대학원생에게 나의 얕은 지식을 이야기해 주기도 하였다. 나중에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알게 된 내용이지만, 이 친구도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서 더 나은 정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나중에 둘 다 꿈을 이루고 나면, 다른 자리에서 꼭 다시 한번 만나자는 이야기를 하였다.

1a76865b-2766-4012-8ee3-28509024433d.jpeg 오프라인으로 참가한 발표자들과 함께 학술대회가 끝나고 찍은 사진. 외국인 참가자들이 훨씬 더 많다.

아침 식사 이후에는 인도 경영 대학교 실롱캠퍼스 (IIM Shillong)의 산지브 카코티 (Dr. Sanjeeb Kakoty) 교수님이 축하 강연을 해주셨다. 교수님께서는 우리가 이미 지구 위험 한계선 (Planetary Boundaries)에서 위험 구간을 넘어서 더 심각한 구간에 있으며, 세계의 많은 동식물들이 멸종 위기에 처한 위기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하셨다. 동시에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경제적) 정의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한쪽만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셨다. 즉, 정의롭지 않은 지속가능한 발전은 없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교수님의 말씀에 이론상으로는 동의하지만, 이 주장을 정책으로 현실화했을 때 가능할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과연 승자와 패자가 없는, 모두에게 정의로운 지속 가능한 발전 정책을 만들 수 있을까? 지속가능한 발전을 떠나서 그러한 완벽하게 정의로운 정책이 존재할까? 다양한 생각이 들게 하는 강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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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산지브 카코티 교수님께서 강연을 하시는 모습, (우) 아비나쉬 K. 슈리바스타바 교수님의 강연 모습. 모두 온라인으로 동시에 중계가 되고 있다.

참석하신 교수님들 대다수는 학술대회를 기하여 출판된 지속 가능한 마케팅에 대한 저널에 글을 출판하신 교수님들이셨고, 이에 따라서 교수님들께서도 상패를 받으신 뒤에 자신의 연구나 자신이 이번 저널에 실은 글에 대한 발표를 해주셨다. 아닐 아가왈 환경 연수원의 라자르시 바너지 교수님 (Dr. Rajarshi Banerjee)는 인도 시민들이 오물과 같은 액체 폐기물의 처리에 관한 관심이 아직도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셨고, 인도 국제 경영대학의 아비나쉬 K. 슈리바스타바 (Dr. Avinash K Shrivastava)는 인도 동부의 사람들이 쓰레기 처리에 관한 관심과 지식이 더 많은 만큼, 인도 다른 지역이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하셨다.


이후에도 되게 오랫동안 연설이 계속되었는데, 처음 가보는 학회라서 원래 학회에서는 교수님들의 강연과 연설이 이렇게 긴가하고 궁금해졌다. 수많은 연설 속 마음에 가장 남은 한마디는 우리가 논의를 넘어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라면, 단순히 이야기하는 것만을 넘어서 주변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바꿔가며 변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단순히 정책 결정권자들이 바꿔주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교수님들의 연설과 강연이 모두 끝나고 나서는, 저널 출판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태국 출신의 박사과정생이 외국인 참여자 대표로 연설하였다. 이번 학술대회가 자신이 처음으로 참가하는 영어로 진행하는 학술대회라며, 기대가 된다는 내용의 연설이었다. 연설이 끝나고 교수님들을 제외한 대학원생들은 모두 상경대학 건물로 이동해서 연구에 대한 세미나에 참가하는 것이 다음 일정이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상경 대학까지는 한참을 걸어가야 했는데, 날도 더워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단과대학 건물에 도착했다. 대학 건물에 가까워졌을 때가 오전 11시 50분을 넘긴 시점이었는데, 오후 12시부터 우리 부서 화상 회의가 있어서 아쉽게도 세미나에 참석하지는 못하였다. 이미 학부 때 어느 정도 배운 연구 방법론이지만, 인도에서는 어떻게 가르치는지 궁금했는데, 우리 부서 회의가 1시간 반 넘게 지속되어서 결국은 상경대학까지 가서 세미나실 밖에서 회의만 참가했다. (인턴들에게 중요한 회의여서 불참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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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상경대학을 포함해 다양한 단과대학이 모여있는 캠퍼스 건물, (우) 건물 내 카페가 있어서 30 루피를 내고 레몬에이드 한 잔 마셨다.

조금은 아쉬운 마음을 안고, 점심 식사를 위해서 다시 상경 대학에서 게스트 하우스로 걸어서 갔다. 게스트 하우스의 식당에 들어가서 인터넷이 아예 터지지 않는 순간까지 회의는 계속되었다. 이후에도 회의는 더 진행되었다고 하는데, 식당에 5G나 와이파이를 비롯한 인터넷이 아예 터지지를 않아서 회의가 자연스럽게 끊겼다. 점심 식사는 예상외로 카시족이나 실롱 현지 음식이 아니라, 인도 본토 음식인 파니르 카레와 치킨 카레가 준비되어 있었다. 익숙한 맛이지만, 발표 준비에 신경을 쓰고 있어서인지, 많이 먹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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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점심에 담은 한 접시. 그렇게 많이 담지는 않았다. (우) 게스트 하우스 내 식당의 모습. 그래도 샹들리에도 있는 잘 꾸며진 식당이다.

식사 이후에는 바타차지 교수님의 차에 남자 참가자 5명이 끼어서 타고 발표가 진행될 인도 사회과학 연구회 북동부 지역센터 (ICSSR NERC) 건물로 이동하였다. 이번 학술대회는 온오프라인에서 발표가 동시에 진행되는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진행이 되어서, 오프라인에서 발표하는 참가자는 나를 포함해서 11명이었다. 외국인 참가자를 비롯한 인도 국내 참가자들에게도 실롱으로 오는 것이 쉽지는 않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으로 학술대회를 진행하는 것 같다. (실롱에서 개최를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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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한참을 달려서 도착한 ICSSR-NERC 건물의 외관. (우) 건물 내부에 위치한 깔끔히 정리된 도서관, 신식 도서관 같았다.

ICSSR-NERC 건물 내부는 매우 깔끔하게 정돈이 되어있었고, 우리가 발표하는 장소 역시 책상 마이크와 스마트 티브이를 비롯한 현대적으로 정돈이 되어있었다. 유일한 문제점은 와이파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노스 이스턴 힐 대학에 다니는 대학원생도 발표자 중의 한 명이었는데, 그 친구도 와이파이가 없어서 데이터 핫스폿을 켜서 사용했다. 내 휴대전화는 데이터도 터지지 않아서, 친절하게도 그 친구가 핫스폿을 잠시 켜줘서 간신히 발표 자료를 구글 드라이브에 백업했다. 결국은 발표 자료를 USB에 담아서 스마트 티브이에 옮겨서 발표해서 구글 드라이브를 쓸 일은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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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발표가 진행된 세미나실의 전경. 아직 불을 켜기 전이다. (우) 컨퍼런스 준비를 위해 스마트 티브이가 켜져있는 모습. 다들 자료를 USB에 옮기느라 바빴다.

발표 장소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나를 포함한 참가자들 역시 모두 준비가 되자 학술 발표가 시작되었다. 델리에서 오신 박사님께서는 전 세계 열 두 회사가 자신들이 공언한 사회적 책임을 실제로 다하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계셨다. 책임, 이해도, 투명성, 신뢰 등 다양한 기준으로 사회적 책임의 정도를 평가하셨는데, 흥미롭게 들었다. 말라위에서 온 대학원생은 실제 현장에 투입이 가능한 재활용 플라스틱을 만드는 과정에 관한 연구를, 시에라리온에서 온 친구는 AI와 AR 등을 비롯한 다양한 기술을 고객 응대에 접목하는 자신이 고안한 AEE (Adaptive Engagement Ecosystem) 모델을 소개하였다. 사실 AEE 모델에서 이야기하는 기술이 접목된 고객 응대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이미 도입된 개념이지만, 아직 개발도상국에서는 잘 활용이 되지 않거나 한 가지의 기술만 활용되어 복합적으로 기술을 활용했을 때의 시너지가 나지 않고 있기에 여전히 이러한 연구가 진행되는 것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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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인도 델리에서 오신 박사님의 발표 모습 (우) 시에라리온에서 온 마니푸르 대학의 대학원생이 AEE 모델에 대하여 발표하는 모습.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웠다.

시에라리온 대학원생의 발표가 끝난 뒤, 나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나는 “Is the AI the Silver Bullet Against the AI-Generated Comments on Online Spaces? (AI가 온라인 공간의 AI 생성 댓글을 막는 만능 해결책일까?)”라는 주제로 내가 대학원 한 수업에서 시작한 연구에 대해 발표하였다. 연구를 위해서 AI와 인간을 비교하는 실험을 했는데, 이 둘에게 네 개의 다른 주제의 웹사이트를 주고, 각 웹사이트의 기사나 페이지와 관련된 댓글을 5개를 보여준 뒤, AI가 만든 댓글이 무엇일지 찾아보라고 하는 것이 실험의 골자이다. 인간 참여자는 미국의 한 설문조사 전문 웹사이트를 통해서 114명의 무작위로 선정된 미국인이 참여하였다. 아직 연구 초기 단계라서 표본 수도 적고, 명확한 인과 관계를 추론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연구이지만, 그래도 AI가 신문, 아마존, 책 논평 사이트 등 모든 종류의 웹사이트에서 만능처럼 AI가 생성한 댓글을 다 잡아내지는 못하고, 오히려 AI가 인간과 비슷한 수준으로만 필터링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IMG_2973.jpeg 내가 교수님과 다른 참가자들 앞에서 연구에 대해 발표를 하는 모습. 연구의 한계점과 앞으로 진행할 연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교수님들께서는 발표를 들으시고는, 우선 발표를 정말 조리 있게 잘한다는 칭찬을 먼저 해 주셨다. 그러고 나서는, 나의 표본이 진정으로 무작위인지 검증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피드백을 주셨다. 또한, 네 개의 웹사이트 선정한 방식에 대해서도 질문을 주셔서, 내가 선택하게 된 과정을 설명해 드렸다. 이미 연구 논문의 한계점 파트를 작성할 때 느낀 점과 같이, 제대로 된 인과 관계를 찾기 위해서는 더 확실한 무작위 (Ranodmised) 실험을 구성하는 것이 앞으로는 중요할 것 같다. 발표를 들으신 또 다른 교수님께서도 발표 내용이 정말 좋고, 발표도 잘했지만, 지속가능성과 더 연관을 짓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 교수님께서는 내가 지속 가능한 마케팅 저널에 투고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해 주신 이야기 같았다.)

Screenshot 2025-07-15 at 11.23.20 PM.png 학술대회에서 발표를 위해서 사용했던 발표 자료의 첫 표지

학교 교수님께도 피드백을 일정 부분 받았지만, 이렇게 새로운 분들께 추가적인 피드백을 받으니 생각할 것이 더 많아졌고, 내가 부족한 부분이 어떤 곳이지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왜 수많은 학자가 학술대회에 참가하고,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의견을 구하고자 하는지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대학으로 돌아가면, 연구를 더 수정하고 학교 저널에 제출하는 것이 목표인데, 이곳 교수님들께도 더 연락드려서 조언을 따로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박사 과정을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발표에 대한 칭찬도 받고, 기분 좋게 나의 발표 순서를 마무리 지었다.

5281d22b-e726-4540-8211-6896d9526239.jpeg ICSSR-NERC 건물 앞에서 학회에 참석하신 교수님, 참가자, 관계자 분들이 함께 모여서 찍은 단체 사진

이후에도 핀테크와 온라인 안보, 관광 활성화와 현지 문화 보존, 관세와 노동시장 간의 관계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 발표가 진행되었다. 일반 참가자들의 발표가 끝날 때쯤, 라자르시 바너지 교수님도 오셔서 폐기물 처리에 관한 연구 발표를 조금 더 길게 진행해 주셨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참가자끼리 연락처도 교환하고, 단톡방도 만들어서 서로 발표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도 공유하였다. 온오프라인 동시 진행 행사이지만, 오프라인 행사는 금요일 단 하루만 진행이 되고, 나머지 주말 일정은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다른 참가자들 역시 토요일에는 구와 하티나 임팔 등 다른 동북부의 도시로 이동하는 계획이 있어서, 바로 시간을 더 같이 보낼 틈도 없이 헤어져야 했다.

Screenshot 2025-07-15 at 11.26.52 PM.png 학술 대회에 참가하고 받은 학회 발표자 인증서. 정말 감사한 기회였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첫 학술대회라서 긴장을 많이 했던 것도 있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잘 몰랐던 부분도 많았지만, 결국은 잘 마무리되었다. 학술대회 전체를 통틀어서 유일한 한국인 참가자로서,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연구나 발표를 잘한다는 인상을 이곳에 남기고 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또 언제 노스 이스턴힐 대학교로 돌아올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돌아올 때는 더 성장한 연구자로서 돌아오기를 나 스스로에게 기대하며 다시 실롱 시내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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