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인도] 12화
런던에서 대학을 다닐 때는 학교가 쉬는 때면 종종 런던 근교 도시로 놀러 갔다. 대도시에서의 생활에 지칠 때면 브라이턴과 같이 비교적 여유로운 근교로 가서 생각을 정리하고, 쉬다가 돌아오고는 했다. 보스턴에서 학교 다닐 때는 케임브리지가 비교적 조용한 도시라서, 휴일에는 더 크고 북적북적한 뉴욕으로 가서 도시의 감성을 즐기고 왔다. 메갈라야 실롱에서의 경험은 후자에 가깝다. 실롱이 메갈라야 주의 주도이지만, 비교적 작은 도시이다 보니 대도시에 대한 향수가 밀려왔다.
그러던 와중 다른 인턴들이 벵갈루루나 고아와 같은 인도 내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갈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듣자마자 생각했다. “나도 그럼 다른 도시를 한 번 다녀올까?” 하지만 7월에 남은 주말들을 보니, 시간을 낼 수 있는 날짜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가르칠 수업도 있고, 일을 하다 보면 못 갔다 올 것 같았다. 그래서 이야기가 나온 그 주의 일요일과 월요일에 재택근무를 하면 그나마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서 급하게 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어느 도시를 갈까 고민을 했는데, 큰 기준은 세 가지였다. 우선은 가격. 비행기표가 전반적으로 저렴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멀리 나갔다 오기에는 시간도 부족하고 비행기 값도 꽤 나가서, 돈을 아끼고 싶은 나로서는 표값도 중요했다. 두 번째로는 인도 동북부를 여행하고 싶었다. 기왕 “우리가 모르는 인도”를 연재하고 있으니, 이미 다른 한국인들이 많은 가본 도시가 아니라 안 가봤을 인도 동북부의 다른 도시를 소개하고 싶었다. (점점 인도 동북부에 대한 애정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아카사 항공이 들어가는 도시여야 했다. 항공사 덕후의 면모가 보이는 부분인데, 인도 내에서 최대한 많은 인도 항공사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들어올 때는 에어 인디아와 에이 인디아 익스프레스로 들어왔고, 나갈 때는 스파이스젯과 인디고로 나가니, 아카사 항공만 타보면 인도 내 유명한 항공사는 다 타볼 수 있었다. 그래서 구와 하티 공항에서 아카사 항공이 갈 수 있는 곳을 고민했다.
이 모든 기준을 통과한 도시가 바로 아가르탈라 (Agartala)이다. 아마 실롱과 똑같이 처음 들어봤을 것이다. 도대체 “거기는 또 어디야”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 도시는 인도 동북부 중에서도 남쪽에 위치한 트리푸라 주의 주도이다. 트리푸라는 방글라데시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도시여서 그마만큼 방글라데시 사람들 및 벵골인과의 교류가 큰 지역이라서, 내가 근무하는 메갈라야나 실롱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다. 아가르탈라는 침향을 뜻하는 아가우드 (agarwood)의 ‘아가르 (agar)’와 보관소라는 뜻의 ‘탈라 (tala)’가 합쳐져서 생긴 이름으로 ‘침향 보관소’라는 특이한 지명을 가지고 있다. 아가르탈라의 인구는 약 67만 명으로, 실롱에 비하면 약 5배 정도 더 큰 중소도시라고 볼 수 있겠다.
실롱 공항에서는 아가르탈라로 가는 직항이 없어서 구와 하티 공항을 통해서만 갈 수 있다. (애초에 아카사 항공은 구와 하티 공항에만 들어온다.) 평소 같으면 구와 하티로 가는 택시를 통으로 빌려서 약 2500 루피 (약 4만 원)에서 3000루피 (약 48000원)을 내고 갔을 텐데, 이번 여행의 목표 중 하나가 최소 비용이었기에 메갈라야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230루피 (약 3700원) 버스를 예약했었다. 그런데 웬걸 출발 이틀 전에 버스가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차선책으로 두 번째로 저렴한 합승 택시 앱 위즈 라이드 (Wizz Ride)로 예약을 해봤다. 위즈 라이드에서는 합승을 하면 구와 하티 공항까지 999루피 (약 15000원)이면 갈 수 있다고 해서 바로 예약했다.
오전 6시에 집 주변에 있는 호텔에서 나를 픽업하기로 했는데, 새벽 5시에 일어났을 때, 위즈라이드 본사에서 기사님의 전화번호를 받았냐는 확인 전화를 주었다 – 신뢰도가 여기서 확 상승했다. 원래 합승택시를 탈 때는 현장에서 승객을 모객 하거나 가격 협상을 해야 하는데, 일반 합승 택시보다 가격이 약 200~300루피 정도 더 비싼 대신 그런 부분을 앱에서 다 처리해 주니 이보다 편할 수는 없었다. 실롱을 방문하게 될 모든 분들께 강력추천한다. 시간만 잘 맞는다면 택시나 차를 빌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 짐도 캐리어 두 개까지는 들고 탈 수 있다고 적혀있다.
오전 6시에 거의 딱 맞추어서 기사님이 오셨는데, 이미 한 분은 타고 계셨고, 조금 더 가서 한 명, 한참을 더 가서 또 한 명을 태웠다. 타고 조금 가서 나에게 기사님이 질문을 하셨다. “너 혹시 중국인이야?” 당황했지만, 바로 “아니 한국인이야” 하고 대답했다. 그래도 장족의 발전이다. 최소한 내가 동북아시아 출신 외국인이라고는 생각하셔서. 여전히 탑승하고 계시던 승객 한 분은 내가 인도 동북부 부족 중 하나 출신인 줄 알았다고.
한참을 가서 태운 손님은 우리가 가서 꽤 기다려야 했는데, 기다리다 보니 군용차 한 대가 우리 앞으로 미끄러지며 멈췄다. 뭘까 싶었는데, 거기서 사복을 입은 한 사람이 내려서 우리 차를 타고, 총을 든 군인들이 짐을 싣고 경례를 하는 것 아닌가. 높으신 분이 타신 것 같다. 사진은… 혹시 몰라서 안 찍었다. 사람들을 다 태우고 한참을 달리다가 택시가 서서 어딘가 봤더니 고속도로 휴게소다. 나는 딱히 뭘 먹을 생각도 없고 화장실도 급하지 않아서 내리지 않았다. 한 40분 즈음 지났을 때 기사님과 다른 손님들이 모두 돌아와서 출발했다.
거기서부터 한 시간 반 정도를 더 달리니, 구와 하티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지난번에 도착층에 내릴 때는 오래된 공항이라는 느낌만 받았는데, 출발 게이트로 들어가는 엄청 깔끔하고 현대적인 공항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역시 아다니 그룹이 관리하는 공항답게 자동화된 부분도 많고, 관리 상태도 좋다. 짐을 스캔하고 체크인 카운터로 가니 아카사 항공 카운터는 아직 안 열었단다. 다행히 미리 온라인으로 체크인을 해서 앱으로 보딩 패스를 받았다. 온라인 체크인은 일찍이 가능해서 했는데, 보딩 패스 발권은 출발 6시간 전에만 된다고 적혀있었다. (사실 구와 하티로 돌아오는 항공편은 6시간 이전임에도 보딩 패스가 체크인하자마자 바로 나왔다.) 보딩 패스는 앱에 문제없이 나와서, 부칠 짐도 없겠다 바로 보안 구역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제일 처음 한 일은 다름 아닌 스타벅스 주문이었다. 대도시의 커피 향기. 한국이나 미국에서 쉽게 마시던 스타벅스 커피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 실롱은 아직 해외 브랜드가 많이 들어온 곳이 아니라서, 물론 실롱 음식도 만족하지만, 그래도 대도시에서 산 세월이 길어서 여전히 도시의 맛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스 캐러멜 마끼아또 한 잔과 인도 스타벅스 신상인 크리스피 치킨 포카치아 샌드위치를 아침으로 주문했다. 제품을 받았을 때는 여전히 오전 10시가 조금 안된 시간이라서 공항에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충전기 타워 옆에 있는 자리를 찾다가 공항 끝에서 내 자리를 찾았다.
구와 하티 공항을 이용한 다른 인턴이 공항에 충전할 곳이 없다고 해서 걱정을 했는데, 충전은 무조건 타워에서만 가능하다. 벽에 있는 콘센트에도 꽂아봤는데 충전이 안된다. 혹시 내 휴대전화를 가져가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을 보니 한국에서처럼 꽂아두고 공항을 돌아다녔다. 그래도 나는 타워 주변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수정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쓰고 고치고를 반복하니, 벌써 오후 12시다. 원래 내 비행기가 오후 12시 반 보딩 시작이라서 게이트 주변으로 이동했는데, 게이트에는 아직도 델리행 에어 인디아 익스프레스 승객들이 끝도 없이 서있다. 지연된 것 같았다.
느낌이 우리도 지연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순식간에 줄이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한참 동안 게이트에 있는 화면은 에어 인디아 익스프레스만 보여줘서 우리 비행기는 확실히 연착인가 보다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자세히 공항 내 방송을 들어보니,
“QP1323 편. 보딩 게이트로….. 이동…. 바랍니다.”
음질과 사람들의 대화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는 않았는데, QP로 사인이 시작하는 항공사는 아카사 항공이었기에 대충 아카사 항공 보딩 시작 알림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래서 듣자마자 게이트로 가서 줄을 섰는데, 나만 잘 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우리에게 이 줄이 아카사 항공 줄인 지를 몇 번을 확인했다. 저가 항공사답게 보등 게이트는 고사하고, 버스를 타고 비행기까지 이동했는데, 비행기 앞에 도착해서도 버스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비행기 주변을 한 바퀴 더 돌았다. 이게 뭐지 하면서 창 밖을 보니, 승객들이 아직도 내리고 있다. 진짜 퀵턴 중에 퀵턴인 게, 버스 안에서 기다리며 보니 승객들이 내리자마자, 청소하시는 분들이 들어갔다가 나오고, 쓰레기봉투를 들고 또 일부 직원이 나온다. 그 와중에 한쪽에서는 짐을 내리고 싣기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유럽의 저가 항공사 이후로 오랜만에 비행기 뒷 문으로 비행기를 탑승헀다. 버스에서 내릴 때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사람들에게 이동하라는 안내를 했는데, 대충 뒷 번호 뒷 문 탑승이라는 이야기 같아서 뒷 문으로 갔다. 잘 안 들려도 상식대로만 행동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비행기를 타니, 보잉 737 – 200 항공기라서 우리나라 저가항공에서 예상할 수 있는 사이즈의 기체인데, 앉으면 좌석과 무릎 사이에 공간이 조금 남는다. 좌석은 확실히 좁다 – 물론 내 몸이 조금 큰 것을 감안해야 한다. 좌석 쿠션감은 스피릿 항공이나 유럽 저가 항공보다는 푹신해서 한 시간밖에 안나는 단거리 비행에서 불편하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당연히 기내 엔터테인먼트 화면은 없고, 새로 지어진 아파트 (?) 분양 광고만 붙어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안정 고도에 다다르자마자 기내식을 신청자에게 나눠주었다. 신청할 때 나 혼자만 기내식을 먹는 것 아닌가 걱정했는데, 보니까 주변 사람들도 꽤 많이들 간식을 받았다. (식사를 신청한 건 나뿐이었던 것 같다.) 탑승 전에 기내식 신청이 되어서 기간 한정 특식인 몬순 특별식 (Moonsoon Special Meal)을 시켰다. 몬순 특별식에는 멕시칸 식 양념이 들어간 사모사, 버섯, 브로콜리와 밤으로 만든 팝퍼, 미니 말푸아, 그리고 토마토와 마늘로 만든 처트니 (소스)가 담겨있다. 처트니가 맛있어서 사모사와 팝퍼를 찍어 먹으니 잘 들어간다. 말푸아 위에 있는 민트만 빼면 좋은 기내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 분 정도 식사를 했나, 기내 방송이 랜딩 준비를 하라고 안내를 했다. 비행기가 오후 1시 48분 정도에 이륙했는데, 2시 15분부터 착륙 준비를 시작했다. 비행 편이 짧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짧을 줄은 몰랐다. 거의 김포에서 제주도 가는 정도의 시간이다. 착륙을 할 때 옆 자리에 앉으신 분이 말을 걸어오셨는데, 아쌈주에 있는 한 대학의 부교수님으로 일하시는 분이셨는데, 아가르탈라에는 박사 과정을 공부하러 가신다고 한다. 내가 한국어로 노트를 계속 타이핑하고 있으니, 보고서는 혹시 한국인인지 물어보고 싶었다고 하셨다.
비행기가 땅에 닿고 한 1분 뒤부터 버클 풀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 택싱이 끝나지 않았지만 다들 벨트를 빨리 풀었다. 여기도 참 바쁘다. 게이트에서 나와 공항을 본 순간 생각했다. “진짜 깨끗하다.” 2022년에 리모델링과 업그레이드를 해서 그런지 정말 공항 같았다. 물론, 공항 밖에 나오자마자 “아 여기 여전히 인도지”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 비가 와서 공항에서 연결해 주는 택시를 타고 가야지 했는데, 공항 직원이 일을 안 한다. 오늘만 그런지는 몰라도, 아무도 그 직원에게서 택시를 연결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라피도 (Rapido) 앱으로 오토 릭샤를 부르니, 호출받으신 기사님이 영어를 아예 못하신다. 나한테 메인 로드를 외치시다가 전화를 끊고 나서는 내 요청을 취소하셨다. 두 번째 기사님은 다행히 영어를 조금 하셔서 나한테 화물 터미널 (Cargo Terminal)로 걸어오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아마 공항 경내로 들어오면 추가 비용이 생겨서 그런 것 같다. 카고 터미널은 공항 출구 쪽으로 걷다가 오른쪽으로 꺾은 뒤 계속 300미터 정도 걸어가면 나온다. 그렇게 멀지는 않지만, 초행길이었던 나는 공항 경찰에게 길을 물어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어찌어찌 릭샤 기사님을 찾아서 이동을 하는데, 공항까지 가는 길에는 도심만 있는 것이 아니라서 바깥 풍경이 조금 이상할 수 있다. 그래도 지도상에서 맞게 가고 있으면 그 길이 맞다. 나도 중간에 창 밖을 봤을 때 너무 휑한 공사장만 있길래 납치당한 건가 기겁했다가 다시 큰 도로가 나와서 안심했다. 아 맞다. 오토 릭샤는 앱으로 불러도 현금만 받는다. 현금을 꼭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작은 돈으로. 오토바이 자전거는 온라인 결제가 되는데, 오토 릭샤는 그게 안 된다. 창 밖 풍경을 보다 보니, 언덕이 가득한 실롱과 달리 도시가 평지로 되어있어서 확실히 오토 릭샤가 깔려있다. 차가 오히려 적어 보일 정도로 릭샤만 보인다.
긴 여정 끝에 도착한 호텔, 파크라인 클래식 (Parkline Classic) 호텔이다. 오랜 고민 끝에 인도 현지인들이 쓴 후기를 구글과 고비보 (Gobibo)라는 앱을 교차검증해서 고른 곳이다. 유명 관광지도 다 걸어갈 수 있고, 큰 도로 옆에 있어서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키를 받고 방으로 갔을 때 감탄만 나왔다. 와. 정말 크다. 하루 자는데 3000루피라는 거금을 들여서 예약했는데, 예약한 값을 충분히 한다. 방과 화장실도 깨끗하고, 에어컨과 선풍기도 빵빵해서 해외의 고급호텔과 큰 차이가 없다. 이곳 말고 같은 회사에서 운영하는 파크라인 호텔 (Parkline) 호텔도 있는데, 클래식이 조금 더 평점이 좋고, 파크라인 호텔이 관광지와는 걸어서 조금 더 가깝다.
지내보니 클래식 호텔 옆에 시장가가 있어서 장 보기도 편하고, 브랜드 생수를 사 오기도 편해서 나는 클래식에 정말 만족했다. 물론, 생수를 호텔에서도 500Ml 병으로 두 개 제공한다. 내가 물을 많이 먹는 편이라서 혹시 몰라 장 보러 갔을 때 펩시사의 1L 생수병 두 개를 더 사 왔다. 짐을 풀었더니 이미 오후 4시에 가까웠다. 바로 나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관광지에 갈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