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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부로 출근을 하자.

[우리가 모르는 인도] 7화

by 모험가 콜린

드디어 정부로의 첫 출근. 하지만 나는 정부로 출근하는 방법을 아직 모른다. 메갈라야주 정부 청사에는 여러 건물이 속해 있고, 나는 그중 Additional Secretariat, 즉 별관으로 출근한다. 내가 머무는 라잇움크라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인 크게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구글 지도를 봐서는 도대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인지를 알 수 없었다. 결국 첫 출근에 늦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아침 일찍 택시 기사님께 연락드려서 9시 40분에 택시가 집 앞으로 올 수 있도록 예약을 해 두었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200 루피면 약 3200원에 불과하기에 안전하게 출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사실 둘째 날까지도 택시를 불러서 출근했는데, 직원들에게 나의 출근 방법을 이야기하니, 다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200루피라는 거금을 들여서 차로 10분도 안 걸리는 곳으로 출근하는 것은 너무 아깝다는 이야기와 함께. 물론 적지 않은 돈을 쓰는 것이기는 했지만, 다른 방법을 모르고,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쉬운 선택지가 택시였던 것 같다. 셋째 날에는 실롱 출신의 인도 현지 인턴이 고맙게도 픽업을 해줘서 편하게 출근했고, 넷째 날부터 나의 실험이 시작되었다. 내가 출근하는 주정부 청사가 IGP라는 버스 및 택시 정류장과 가까우므로, 합승 택시를 이용할 때, 자세한 주소나 정부 청사 빌딩 이름이 아니라 IGP라고만 외치면 된다고 한 직원이 조언을 해주었다. 그래서 이 조언을 들은 그다음 주 월요일에 처음으로 합승 택시를 통해서 IGP로 출근했고, 지금도 별관 출근을 할 때는 여전히 택시 기사님들께 IGP라고 소리친다. 이렇게 합승 택시로 출근하니, 200루피가 들던 출근길이 30루피, 20루피로 줄어들었다.


여기서 돈을 더 아끼는 방법은 걸어서 출근하는 것이다. 내가 속한 팀 회의를 할 때, 직원들이 Jacob’s Ladder (제이컵의 사다리)라는 곳을 통해서 걸어가면 라잇움크라에서 빠르게 정부 청사로 출근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서 그날 바로 퇴근길에 제이컵의 사다리가 있는 쪽으로 걸어서 퇴근했다. 첫 난관은 정부 청사 별관을 나오자마자 한참 동안 인도가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차가 많이 지나다니는 차도 바깥쪽으로 잘 피해서 걸어가야 한다. 내가 걷는 방향과 반대로 차가 움직여서 차를 피하기 쉽다는 것이 어느 정도 위안이 되지만, 근본적으로 빠르게 달리는 차 옆을 걷는 일은 쉽지 않다. 처음에는 차와 앞만 보고 걸어야 할 정도로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걸었는데, 몇 주 동안 차도를 걷다 보니 이곳 사람들도 이런 상황에 익숙해서 사람을 잘 피해 다니고, ‘어차피 나를 치면 저 사람들이 더 손해다.’라는 생각으로 걷다 보니 조금은 더 편하게 차와 함께 걷는 것이 익숙해진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차도 옆으로 주차가 빽빽이 되어있을 때면, 차도 더 안쪽으로 걸어야 하므로 다시 신경을 곤두세우고 걷는다. 만약 처음 실롱에 가서 차도로 걸어야 한다면, 당연히 현지인들을 앞에 두고 걸어가는 것이 좋다.

IMG_1772.jpeg 주정부 청사 별관 건물 앞 도로. 이쪽에는 인도가 조금씩 있어서 그나마 괜찮다. 그리고 경찰이 도로에 있을 때는 신호 정리를 해주기도 한다.

두 번째 난관은 길을 건너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도대체 왜 이런 기초적인 행동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하는지가 궁금할 것이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걸을 때는 생각하지도 않던 부분이었는데, 인도에 와서는 다시 길을 건너는 것부터 배워야 했다. 처음 길을 건널 때는 건널목도 도시에 없고, 차들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아서 도대체 언제 어디서 건너야 하는지부터 막막했다. (현지 직원들 말로는 건널목이 있다 하더라도, 큰 의미가 없다고.) 그래서 현지인들 뒤꽁무니를 쫓아서 건너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건너는 사람이 없을 때면 휴대전화 화면을 보면서 혹시 길 건너는 사람 없나 기다리기도 했다.


현지인들이 길을 걸을 때 그들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다 보니, 방법을 어느 정도 깨달았다. 도로 위에서 차와 차 사이의 간격이 생기면 차가 끼어들기를 하듯이, 사람도 비슷한 타이밍에 끼어들기를 해야 한다. 충분한 간격이 있으면, 우선 도로로 건너기 시작한다. 그 이후에는 차도 깜빡이를 켜듯이, 차가 오는 쪽의 팔을 옆으로 벌려서 손으로 차를 막는 시늉을 하면서 양해를 구하고, 그 행위를 지속하면서 앞으로 걷는다. 물론, 모든 차가 그 행위에 한다고 다 멈춰주지는 않아서, 2차선 도로에서는 한 차선을 건너고 중간에 잠시 서서 다시 반대편 차선에서 타이밍을 새로 찾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차가 어느 방향에도 없을 때 건너는 것이 제일이다. 그렇지만 차와 오토바이가 많은 실롱에서 생활하다 보면, 그런 상황은 아침 이른 시간이나 저녁 늦은 시간이 아니면 찾기 어렵다.


마지막 난관은 제이컵의 사다리 그 자체였다. 처음에는 사다리라고 해서, ‘아 계단 비슷한 것을 사다리라고 하는구나.’라고 생각을 해서, 빠르게 두 지역을 이어주는 계단, 육교, 아니면 다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이컵 사다리의 정체는 가파른 언덕이었다. 아주 가파른 언덕. 예전에 어머니가 시골에서는 산을 타고 등교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해 주신 적이 있는데, 이 언덕을 걸을 때마다 내가 지금 그런 생활을 하는 것인가 생각이 자주 든다. 처음으로 이 길로 퇴근하고 나서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과연 나는 이 길로 출퇴근을 할 수 있을까 심히 걱정했다. 아, 물론 한동안 매일 제이컵의 사다리를 통해서 출근하다 보니 금방 익숙해지기는 했다.

IMG_2367.jpeg 제이컵의 사다리 중 가장 가파른 부분. 이곳을 걸을 때면 등산 하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든다. 현지인이 St Anthony's 쪽으로 걸어가라 하면 이곳을 의미한다.

다행히도 현지 인턴 친구가 제이컵의 사다리를 안 걸어도 되는 또 다른 길을 안내해 줬다. 이 새로운 길도 비슷하게 언덕이 존재하는데, 굽이굽이 도로가 나 있어서 조금은 더 완만하게 걸을 수 있게 되어있다. 사실 제이컵의 사다리 언덕을 걷다 보면 등산하는 것처럼 경사가 가팔라서, 차가 미끄러지듯이 내려오는 느낌이 드는데, 이 편한 길은 차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든 길 같았다. 이 편한 길로 걸으면 시간은 5분에서 10분 정도 추가되는데, 훨씬 편하게 걸어올 수 있다. 내가 출근하는 또 다른 건물인 일명 자이카 빌딩 (JICA Building)으로 갈 때는 오히려 이 완만한 언덕길이 바로 건물로 가는 길과 연결되어 있어서 조금 더 빠르게 출근하기도 한다. (자이카 빌딩은 일본국제협력기구 (JICA)에서 건물 이름을 따왔다. 정확한 이유는 직원들도 모르지만, 절대 일본국제협력기구의 건물은 아니고 주정부 소유의 건물인데, 건물 안에 있는 부서 중에서 일본국제협력기구의 지원을 받는 부서가 있어서 이름이 자이카 빌딩이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한다.)

IMG_2388.jpeg 완만한 언덕길. 차가 적은 것이 장점이다. 사람이 적은 것은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현지인이 LC 쪽으로 걸어가라 하면 이곳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편한 길의 단점은 인도가 없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제이컵의 사다리에는 나름대로 인도가 있는 구간이 길어서 상대적으로 차로부터는 안전하게 걷고, 학생부터 상인까지 유동 인구가 정말 많다. 하지만 편한 길은 차도만 나 있어서 차와 함께 걸어야 하는데, 중간중간에 코너가 있어서 차가 갑자기 나오면 조금 위험하다. 덩달아 유동 인구도 현저히 적어서 상사가 어두워졌을 때 편한 길로 걷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실제로 걸어보면, 사람이 너무 없어서 밤에 사고가 나거나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도움을 청할 곳이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걷는 길에 상가도 거의 없기에, 더욱이 길이 어둡다.


그래서 주로 출근할 때는 편한 길로 걷고, 퇴근할 때는 제이컵의 사다리를 통해서 걸어온다. 다른 인턴과 함께 퇴근하는 날이나 퇴근 시간에도 날이 밝으면, 퇴근 시에도 편한 길로 걷고는 한다. 이제는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단련을 해서 그런지 어떠한 길로 걸어도 크게 힘들지 않다. 오히려 제이컵의 사다리가 운동이 되는 것 같아서 일부러 그쪽 길로 걸어오기도 한다.

IMG_2366.jpeg 이 사진을 찍은 위치에서 왼쪽으로 걸으면 완만한 언덕길, 오른쪽의 가파른 길로 걸으면 제이컵의 사다리가 나온다. 완만한 언덕길의 초입에는 주차된 차가 많은 날들이 있다.

출퇴근을 걸어서 해서 제일 좋은 점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지 학생들이 장난을 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길을 걷다가 힘들어서 노점에서 간식을 줄 서서 사 먹는 사람들. 머리와 팔에 짐을 이고 걷는 상인이나 배달부들까지. 사람들의 행동 방식, 길을 걸으면서 보는 광고판까지 모두 나에게는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밑거름이다. 결국은 “국제 개발”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내가 하는 일은 사람에게서 시작되고,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 그래서 항상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고자 한다. 지나가면서 보는 다른 정부 기관의 광고조차도, “왜 저러한 선택을 했을까? 왜 현지 직원들은 저 문구를 선택했을까?”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묻고, 답을 모르는 것은 현지 직원들에게 물어본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쌓게 되는 지식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는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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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교에 붙어있는 정부의 학교 관련 프로그램 포스터 (좌) 길을 걷다 본 벽에 붙어있는 오디션 포스터 (우)

실제로 이러한 관찰에서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현지 학생들의 시간표이다. 지난 6화에서 이야기한 에어텔로 향하는 길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폴리스 바자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 같은데, 도대체 왜 길에 있나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첫 출근을 하자마자 현지 직원에게 바로 물어봤다.


“어제 길을 걸으면서 보니까, 학생들이 대낮에 길거리에 있던데 걔네는 왜 학교 밖에 있어?”


현지 직원의 답변은 간단했다. “그때 학교가 끝나서…?” 그렇다. 실롱의 학교는 무려 오전 7시 반에 시작한단다. 그래서 학교가 많은 우리 집 주변을 보면, 이른 아침부터 등교하는 학생들이 참 많다. 그렇게 일찍 학교를 시작하기에, 수업도 오후 12시에서 3시 사이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 마무리가 된다고. 현지 직원의 또 한 가지 가설은 대학생들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응? 대학생과 교복은 연결이 되지 않았는데, 이곳 대학 중에서는 대학생들에게도 교복을 입으라고 하는 곳들도 꽤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실롱에서 교복 입은 학생을 본다면, 나이를 쉽게 알 수 없다. 그들은 대학생일 수도, 중학생일 수도 있다.


이러한 학생들에 관한 이야기는 내가 학생들을 전날에 관찰하고 먼저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직원들이 나에게 들려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생각해 보면, 왜 갑자기 나에게 학생들의 등교 시간이나 교복에 관한 이야기를 일하다가 해주겠는가. 이러한 학생들의 생활에 대한 정보를 시작으로, 학생들이 집에 가서 가사 및 일을 도와야 하는 상황들과 실롱 학생 중에서 자퇴하는 학생 비율이 생각보다 높다는 이야기와 같이 학생들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다. 물론, 이런 정보는 내가 정부에서 추진하는 교육 프로그램의 취지를 빠르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결국은 작은 관찰에서 시작된다. 오늘 하는 관찰이 내일 어떠한 이야기를, 정보를 나에게 줄지 모르기에 항상 출퇴근할 때면 생각도 참 많이 하지만, 길에 붙어있는 포스터까지도 꼼꼼하게 보면서 걷는다. 이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관찰하면서 걷다 보면, 그리고 나의 다리가 한계점에 다다를 즈음이면, 내가 일하는 분홍색의 주정부 별관 건물이 나온다.

IMG_1770.jpeg 내가 일하는 분홍색 메갈라야주 정부 별관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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