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인도] 5화
오전 7시. 구와 하티 (Guwahati) 국제공항. 몇 시간이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랫동안 비행기를 탔는데, 아직도 실롱에 도착하지 못하였다. 짐을 찾으러 내려가는 길에는 메갈라야주가 아니라 구와 하티시가 속한 아삼 (Assam) 주의 전통 의상이 전시되어 있다. 이쯤 되면 질문이 하나 생긴다. 실롱에는 공항이 없는가? 왜 구와 하티 공항에서 환승을 해야 할까?
실롱에도 국내선 전용인 실롱 공항이 존재한다. 시내에서도 약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공항이다. 하지만, 이 공항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뉴델리에서 실롱으로 가는 비행 편이 매우 적어서, 높은 확률로 콜카타에서 환승을 해야 한다. 어찌어찌 환승을 해결하더라도, 공항 자체가 운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공항 시설이 부족한 곳이 많아서, 비가 오거나 기상 상황이 좋지 않으면 연착, 지연, 심지어는 비행 편 취소까지도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조언을 들었다. 구와 하티 공항은 그래도 “국제” 공항이기 때문에, 비행편도 훨씬 많고 취소나 지연이 생각보다 적다고 한다.
인턴을 시작하고 나서 실롱 공항을 이용한 다른 인턴이 이야기하기를, 기상 상황 때문에 비행 편이 취소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게이트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실롱행 비행 편이 취소됐는지 계속 확인하고 있더란다. 따라서 만약 당신이 실롱에 방문하게 된다면, 나 역시도 구와 하티 공항을 이용하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구와 하티 공항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실롱까지는 추가 여정이 필수라는 것이다. 무려 3시간 정도를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여서 이동해야만 실롱에 도달할 수 있다. 만약 실롱만이 아니라 인도 동북부를 전반적으로 여행하고자 한다면, 구와 하티에서 며칠을 보내고 실롱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주정부에서도 이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하게도 내 비행 도착 시간에 맞추어서 택시를 예약해 주었다는 메시지를 전날 받았었다. 도착하면 택시 기사님께서 전화를 주실 것이라고 하셨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불안함이 엄습하던 와중, 공항의 도착 층 문이 활짝 열린 순간, 나는 택시 기사님처럼 보이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최소한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계시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니었다. 그런 사람은 없었다.
당황한 마음을 붙잡고, 공항을 나와서 조금 더 둘러보았다. 기사님은 없었다. 무엇인가 이상하다 싶어서 기사님 번호로 문자를 해도, 전화를 해도 답이 없다.
'와. 그냥 여기 갇힌 거네. 이걸 어떡해야 하지.'
사실 주정부가 이미 교통편 준비를 해주었기 때문에 구와 하티에서 실롱으로 가는 다른 방법은 특별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오전 7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택시 서비스를 당장 찾아서 가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주정부 담당자에게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연락하는 것 자체가 너무 미안한 일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우선은 실롱을 가야 하므로, 주정부 담당자에게 문자를 남기고 공항 주변에 앉아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사이에 두 도시 간 택시를 운영하는 회사의 홈페이지에서 택시 가격이 얼마나 나올지도 보고, 예약 직전까지 가기도 하였다. 감사하게도, 주정부 담당자도 빠르게 대처를 해주었다.
“콜린, 미안해. 기사님과 날짜 관련해서 소통이 잘못된 것 같아. 다른 기사님을 배정해 주신대.”
아 그제야 이해가 갔다. 분명히 6월 1일 도착임을 몇 번을 설명했는데, 6월 2일 도착으로 기사님은 알고 계셨다고 한다. 다행히도 그 기사님께서 다른 기사님을 연결해 주신다고 하셔서 조금은 안심하고 공항에서 한 20분 정도 더 대기했을까?
“지금 공항 주변이야. 검은색 현대차야.”라는 전화가 새로운 기사님에게서 왔다. 현대차라니…. 전혀 나와 관련이 없지만, 우리나라 차를 타고 여정을 시작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름 좋아졌다. (어떻게든 기분을 좋게 할 이유를 찾은 게 아닐까 하고 지금 와서 생각한다..)
새로운 기사님께서는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인도에서의 첫 느낌은 어떤지 물어보시고는 한국에 관한 질문들을 많이 하셨다. 기사님이 다양한 외국인들을 태워봤지만, 한국인은 처음이라고. 한국에서도 메운 음식을 먹는지, 손흥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항상 이러한 대화를 할 때면, 우리나라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도 많고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특히 기사님은 실롱에서만 나고 자라신 분이셨는데, 우리나라와는 접점이 거의 없음에도 한국 문화에 대해서 많이 알고 계셔서 도로 위에서 할 이야기가 참 많았다.
조금 더 덧붙여서 처음 2015년에 중국에 갔을 때와 달리, 2020년 정도부터는 뉴스에서 자주 이야기하는 한국의 “소프트 파워 (Soft Power)”의 영향력을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 이집트의 포럼에 참석할 때도,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친구를 사귀어도, 로마에서 일을 할 때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고서 나한테 질문하는 경우가 많았고, 생각하지도 못한 국가의 친구들이 우리 노래와 드라마를 즐기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래서 한국인 (Korean)이라서 더 따뜻한 환영을 받게 되는 경우도 많아졌고,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서 내가 최신 한국 드라마나 영화 등을 더 공부해야 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래도 국제 개발 쪽에서 일을 하면서, 우리의 문화가 나를 현지의 사람들과 쉽게 이어 줄 수 있는 고리가 되어주어서 정말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나의 여정으로 돌아와서, 구와 하티에서 실롱으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 구간도 일부 있지만, 시골길과 같은 구간도 중간중간 많이 남아있다. 계속 창밖을 보고 있으면, 숲이나 산이 도로 옆을 끊임없이 채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메갈라야의 뜻을 알면 놀랍지 않은 일이다. 메갈라야는 산스크리트어로 “Abode of the Clouds,” 구름의 땅 혹은 구름의 거처라는 뜻이다. 그만큼 메갈라야주는 산지 지형으로 이루어진 곳도 많고, 내가 일하는 실롱 역시도 Khasi Hills (카시 힐스) 지역에 위치해서 언덕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러한 지형적인 특성, 아름다운 자연환경, 그리고 무난하게 좋은 날씨 때문에 실롱을 동양의 스코틀랜드 (Scotland of the East)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현지 친구들은 그 별명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한 시간 반 정도 달렸을 때, 주정부 담당자가 아침을 꼭 먹으라고 하며, 식당 한 곳의 이름을 전해줬다. 기사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신 듯했는데, 실롱 주변의 리보이 (Ri Bhoi) 지역에 있는 지바 베지 (Jiva Veg)가 그 주인공이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채식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인데, 구와 하티에서 실롱으로 이동하는 현지 및 외국인 여행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라고 한다. (나중에 일을 시작하고 주정부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모두가 다 알고 있었다). 실제로, 당일에 방문했을 때도, 택시 기사님과 식당 주인이 이미 아는 사이였고, 다른 택시 기사들도 아주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식당에서 기사님이 나와 함께 식사하는 것인지 물어볼 새도 없이 화장실을 가셔서 주문할 때 요리를 하나 시킬지 두 개 시킬지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결국은 내가 먹을 그릴 치킨샌드위치와 푸리 바지 (Puri Bhaji)를 시켰다. 결론적으로 기사님은 따로 드시는 것이었다. 이미 식당과 이야기가 되어서, 기사님은 기사님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에서 차 한잔과 간단한 요리를 드시기 시작해서, 나는 그냥 아침을 두 개 시킨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릴 치킨샌드위치는 그럭저럭 먹을만했는데, 중간중간 이국적인 박하 (?) 맛이 나서 조금 당황했다. 오히려 더 즐긴 요리는 놀랍게도 푸리 바지였는데, 튀긴 밀가루 빵을 감자 카레와 함께 먹는 요리였고, 너무 맛있게 먹었다. 푸리 바지가 주로 인도 사람들이 아침으로 먹는 요리라고 하니, 꼭 한 번 먹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식당 자체도 엄청 깔끔해서 첫 식사를 하고 가기 좋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한 시간 반 정도 더 실롱 시내까지 달려야 했는데, 기사님께서 실롱 지역의 언어를 알려주셨다. 힌두교도(Hindu Population)가 주류를 이루는 인도 본토와 다르게 실롱과 메갈라야에는 다양한 소수민족이나 부족이 많이 거주한다. 다양한 자료들에 따르면 인구의 약 85% 이상이 카시족 (Khasi), 가로족 (Garo), 자인티아족 (Jaintias)에 속한다. 실롱에는 카시족이 특히 주를 이루고 있어서, 카시족의 언어인 카시어 (Khasi)를 주로 사용한다. 이 카시어는 인터넷에도 공부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어서 기사님께서도 직접 카시족 사람에게 배우지 않으면 방법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렇기에 이 글에나마 간단한 카시어와 그 한국어 뜻을 남겨 놓는다. 물론, 나도 구전으로 배운 것이기에 정확도를 보장할 수는 없기에, 이런 언어도 있다는 정도의 참고용으로만 활용하기를 바란다. 만약 여행을 할 때 카시어를 활용해야 한다면, 구글 번역기에 카시어가 추가되어 있어서 번역을 도와줄 수 있다. (물론, 현지 직원들은 아직 구글 번역기가 완벽하지 않아서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Khublei (쿠블레이) – 뜻: 감사합니다. (환영합니다, 안녕하세요 처럼 다양하게 쓰는 것 같다)
Hoid (호오이드/호잇) – 뜻: 오케이.
Ha Hoid (하 오이드) – 뜻: 괜찮아.
Bah (바) – 뜻: 남자 (Man), 아저씨 (기사님)
Kong (콩) - 뜻: 여자 (Woman), 아주머니 (이모님)
Nga’dei _______ (응아데이 _______) – 뜻: 내 이름은 _______이다.
Ngam’leit Police Bazzar (응암레잇 폴리스 바자) – 뜻: 나는 폴리스 바자로 간다.
Nga’drei Sorkr (으나트레 솔카) – 뜻: 나는 정부에서 일을 한다.
Sohra (소흐라) – 뜻: 체라푼지 (Cherra Punji)
소흐라는 메갈라야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인데, 체라푼지는 힌디어 지역명이고, 이곳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소흐라 라고만 부른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을 존중하며, 나 역시도 '소흐라'라고 부르고자 한다. 아마 주변에서 혹시라도 실롱에 방문해 본 사람이 있다면, 소흐라에 방문하기 위한 베이스캠프로서 방문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실롱에 도착했을 때는, 소흐라에서 신혼여행을 보내던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 6월 초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어서 한동안 주정부 직원 대다수가 소흐라에서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메갈라야의 이야기를 잘 다루지 않는 Republic TV와 같은 전국 단위 방송국에서도 소흐라에 대한 보도를 대대적으로 하였다. 물론, 이 사건이 정말 특이한 사건이지, 소흐라의 일반적인 모습이나 이미지는 아니다.
기사님의 발음을 나름 쫓아가려고 하는데, 언어를 내가 많이 배워봤어도 카시어는 처음 들어보는 발음이 많아서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완전히 생소한 언어를 접해보는 건 오랜만이라서 즐겁게 배우며 실롱까지의 마지막 한 시간을 주파했다. 내리기 직전에는 나 역시도 기사님께 간단한 한국어 회화를 전수하였다.
그렇게 택시가 내가 앞으로 두 달 동안 머물 때 에어 비엔비에 도착하면서, 길고 길었던 실롱까지의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실롱에서의 첫날에 대한 기억은 아쉽게도 없다. 오후 12시 정도에 에어비앤비에 도착했는데, 집주인의 설명을 듣고 나서는 문을 잠그고 바로 잠에 들었다. 오랜 비행과 여정에 피곤했는지 씻을 생각도 옷 갈아입을 생각도 안 하고 잠이 들었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다음 날 새벽 1시였다.
일어나 보니 주정부 담당자가 저녁에 보낸 문자가 와있었다. “내일 하루는 쉴래 아니면 출근을 바로 할래?”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당연히 하루를 쉰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체력도 말이 아니었고, 다른 준비할 것들도 있어서 하루 정도는 휴식이 필요했다. 이러한 답변만 간단히 남기고, 내일은 나 자신이 더 회복하기를 기원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