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인도] 3화
나에 대한 TMI 하나를 소개하자면, 나는 항공사를 정말 좋아한다. 덕후처럼 쉴 때 항공사들에 대해서 읽고, Simply Aviation과 같은 항공사 리뷰 영상을 본다. 항공사를 정말 좋아하는 만큼, 매번 여행할 때마다 새로운 항공사를 시도해 보려고 한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소소하게 기대한 포인트 중 하나는 바로 에어 인디아를 타보는 것이었다. 사실 검색을 조금 해보면, 에어 인디아에 대한 안 좋은 후기가 꽤 많다. 고장 난 엔터테인먼트 화면부터, 더러운 좌석, 향신료 가득한 기내식, 사라진 수화물까지 에어 인디아 탑승객들에게 겁을 주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한동안 국영항공사로 운영되면서 다소 방만한 운영이 이어져왔다고 한다.
그래도 대학원에서 만난 인도인 친구들은 나에게 “너 에어 인디아 타면 좋을 거야. 더 안 좋은 곳도 많아.”라며 나름의 응원을 해주었다. 특히, 에어 인디아가 타타그룹에 인수된 이후 (그전까지는 국영항공사였다) 대대적으로 서비스 질 개선을 해왔기에 조금은 희망을 품고 에어 인디아 비행 편을 기다렸다. 리뷰 영상들에서 본 새로운 에어 인디아 기체들은 깔끔하고 모던한 도장이 칠해져 있고, 깔끔한 기내 역시 보유하고 있었다. 타타그룹에 인수된 후 제작된 기내 안전 비디오가 인도 각 지역의 전통 춤을 잘 보여주는 수준 높은 영상이라서 기내에서 그 영상을 보는 것도 내가 기대하던 포인트 중 하나였다. (궁금하다면 유튜브에서 시청할 수 있다. 진짜 잘 만든 영상이다.) 몇 번을 돌려봤는지 모른다. 그리고 타타그룹이 인수한 이후에 런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인도 출신 작곡가들이 같이 만든 브랜드 뮤직도 있는데, 인도 고유의 느낌을 잘 살리면서도 모던한 느낌이 충만해서 들어볼 만하다. 타타그룹은 에어 인디아를 KLM이나 에미레이트 항공 (Emirates)와 같은 세계적인 항공사로 키우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이쯤 되면 내가 얼마나 항공사 덕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에어 인디아는 이코노미석 탑승객에게 23kg 체크인 수화물 하나만 허용해 줘서 짐을 싸는데 조금 애먹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올 때 탄 일본 항공은 23kg 체크인 수화물 두 개를 제공해서 조금 넉넉하게 옷을 챙겨가지고 왔는데, 에어 인디아는 한 개만 허용해 줘서 많은 짐들을 정리해야 했다. 특히, 이번에는 미국으로 돌아갈 짐까지 같이 가져가야 해서, 챙길 것이 많은데 수화물 무게 때문에 아쉽게 두고 온 물건들이 많다. 그래도 일단 가는 게 중요하니까, 다음에 또 한국에 들어올 때는 꼭 빈 캐리어를 하나 가지고 와서 남겨둔 짐들을 다 챙겨가리라는 다짐을 하고 짐을 정리했다.
에어 인디아 비행기가 오후 12시 15분 출발이라서 오전 9시쯤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 체크인 카운터에 이미 줄이 있어서 1차로 놀라고, 줄을 서 있으니까 한참 더 길어지는 줄에 두 번 놀랐다. 그래도 큰 문제없이 수화물을 보내고, 델리까지의 항공권 하나, 구와 하티까지 항공권 하나 총 두 장을 받았다. 평소에는 온라인 체크인을 하는 편인데, 문제가 있어서 계속 안되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하고 알아보니, 내가 티켓을 예약한 웹사이트에서 나의 생일을 잘못 기입한 것이 문제였다. 다행히도 체크인 카운터에서 직원들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서 한 시름 놓았다.
인천공항에서 한국 떠나기 전 식사는 무엇을 먹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항상 인천공항에서 새로운 곳으로 떠날 때마다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마지막 식사이기도 하고, 지금 떠나면 또 언제 먹을 수 있을지 가늠하기 쉽지 않은 한국에서의 식사이기에, 더더욱 신중하게 고르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푸드코트에 사람이 꽉 차서 결국 KFC 가서 먹었다… 인도에도 KFC는 정말 많은데…. 그래도 한국을 다시 떠나려고 하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서 한국에 있는 가족들, 친구들 생각하면서 먹었던 것 같다. 보기에는 의연하게 떠나는 것 같지만, 항상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안고 한국을 떠난다.
한참 동안 기다리다 탑승을 시작했는데, 이마저도 한 20분 정도 지연이 된 시간이었다. 창밖을 보니, 외국의 항공사 후기에 나왔던 새 비행기가 아니라 누가 봐도 인수 이전부터 사용되었던 기체가 도착해 있다. 이미 조금은 마음을 내려놓고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탑승하니, 아뿔싸, 기내 화면이 아예 작동을 안 한다. 8시간 정도 비행을 하는데 에어쇼 (지도)조차 되지 않는 기내 화면을 보고 조금은 실망했다. 옆자리가 채워지기 전에 다른 좌석 화면도 확인했는데, 다 안 된다. 몇몇 자리 승객들만 운 좋게 작동하는 듯했다.
기내 와이파이도 되는데, 내 자리에는 기내 와이파이 안내서가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을 못 쓰고 있다가, 다른 승객이 승무원에게 질문하는 내용을 엿듣고, 나도 따라서 와이파이를 연결했다. 물론, 인터넷이 되는 것은 아니고 기내 엔터테인먼트를 휴대전화나 태블릿으로 볼 수만 있다. 여기서 흥미로웠던 건 케이팝 뮤직비디오 모음집이 있었다는 것! 피프티피프티, 아이브까지는 알겠는데, 뒤로 갈수록 나는 잘 모르는 가수분들의 뮤직비디오가 나와서 어떠한 기준으로 뮤직비디오를 선정했을까가 궁금해지는 영상이었다. (물론, 내가 새로운 가수 분들에게 무지한 걸 수도 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한국 문화가 계속 알려지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비행기에서 가장 기대하는 부분 중 하나인 기내식은 괜찮았다. 식사가 시작되기 전에 옥수수로 만든 간식이 음료수와 먼저 제공되었고, 주요리는 치킨 카레 요리와 콩 볶음(?)이 제공되었다. 다른 에어 인디아 후기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실제로도 나에게는 “치킨?”이라고만 물어보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베지 (Veggie) 오 Non-Veggie (논 베지)”라고 물어봤다. 아마 한국인들은 대부분 치킨 카레를 선택해서 그런 것 같다. 같이 나온 샐러드에는 파인애플과 감자 식감의 무언가가 들어있었는데, 그냥 먹을 만했다. 하이라이트는 치즈 케이크였는데, 꾸덕꾸덕하니 진짜 맛있게 먹었다. 전반적으로 일부 사람들이 이야기한 것보다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향신료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식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기내식을 먹고 화장실에 갔더니 입가심이 비치되어 있었다. 보기에는 컵이 있어서 담아서 써야 하는 것 같은데, 어디에도 컵이 없어서 별수 없이 나왔다. (설마 입에 바로 뿌리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잠도 자고, 태블릿에 미리 받아놓은 미국 드라마 Good Place도 보고, 영화 인턴을 다 봐도 시간이 안 갔다. 그래서 한국에서 친구가 선물해 준 책의 오디오북 (20시간짜리)를 듣고 있으니, 두 번째 기내식이 나왔다.
두 번째 기내식은 조금 더 간단하게 치킨이 들어있는 랩이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승무원은 나에게 “치킨?”이라고만 묻고 기내식을 제공했다. 옆자리의 두 분은 모두 채식을 선택하였는데, 만약 기회가 또 생기면 채식 옵션도 먹어봐야겠다. 치킨 랩은 카레 / 마살라 향이 강하게 나는 랩이었는데, 그래도 나름대로 영국에서 인도 음식 단련을 한 것이 도움이 됐는지 그런지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아마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비행해서 크게 맛을 느낄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마지막까지 고민한 포인트는 저 기내식의 아이시스 생수병을 기내에서 먹을지 가지고 내릴까였다. 한국하고 미국에서 인도 가면 물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뉴델리에 내려서 먹을 수 있는 한국 생수를 챙겨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뉴델리가 경유지였기 때문에, 혹시나 물갈이를 뉴델리에서 하게 되지 않겠냐는 걱정도 컸다. 그렇지만 결국은 비행기 안에서 다 마시고 내렸다. 짐을 추가하는 느낌 때문도 있었지만, 괜히 한국 생수를 가지고 내리며 한국 생각만 더 날 것 같아서 모든 걸 정리하고 내리자 생각했다. 약간은 쓸데없이 비장했던 것 같다.
그렇게 길고 긴 8시간의 여정을 마치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뉴델리의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손 모양 조형물들이 나를 반겨주지만, 나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글의 작성을 마무리한 이후, 6월 12일 인도 구자라트 아마다바드 사르다르 발라브바이 파텔 국제공항에서 에어 인디아 171편이 이륙 후 B.J 의과대학 기숙사 식당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참혹한 사고로 큰 피해를 입게 된 비행 편에 탑승해 있던 승객, 승무원, 및 조종사, B.J 의과대학 기숙사의 학생 및 가족 그리고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의 가족 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아직까지 제가 근무하는 실롱 및 메갈라야 지역에서의 피해자는 아직까지 파악된 점이 없지만, 인근 마니푸르 주 출신의 한 승무원이 사고로 피해를 입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께 위로의 마음을 전하며, 다시는 이러한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