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을 통해 나를 바라보다 (2)

소중한 경험을 색으로 표현하다.

by 최우성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의 생활은 여느 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집에서 1시간 거리의 학교에 가기 위해 남들보다 일찍 일어났다. 비몽사몽인 채로 먹기 싫은 아침밥을 꾸겨 넣어 입으로 들어가는 건지 코로 들어가는 건지도 모른 채로 허겁지겁 식사를 마치고, 씻고 난 뒤 집 밖을 나서면 배차간격이 긴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까지 전력 질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늘 이 시간에 버스 앞자리는 내 자리이다. 왠지 모르지만, 기사님 뒷자리가 편했다. 종점역이었던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MP3로 좋아하는 노래들을 듣다 보면 어느새 학교에 도착했다. 교실에 들어가면 늘 나보다 일찍 등교하는 친구가 있었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모의고사 문제집을 풀었다. 아침마다 마주하는 문제들은 그야말로 형벌에 가까웠다. 가끔 문제보다는 잠을 선택하곤 했다. 난 몇 번이고 사형에 처했을 것이다. 그만큼 풀기 싫었다. 이 지독한 시간에 벗어날 때쯤 친구들이 하나둘씩 등교하기 시작한다.


친구들과 만나면 서로의 이야기를 앞다투어 꺼내기 시작한다. "학원에 가기 싫다는 친구", "밤새 즐겨 한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친구", "전날 애인과 싸워 혼자 열변을 토로하는 친구", 등 그들의 이야기들을 듣는 것이 재밌었다. 때로는 말 못 하는 고민을 털어내더라도 묵묵히 들어주는 친구들이 고맙고 좋았다. 물론 공부하는 것은 아주 싫고, 괴로웠지만 학교생활은 나름 괜찮았다. 이렇게 수업을 마치고 밤 10시쯤 친구들과 함께 하교할 때 먹었던 콜라의 맛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집에 돌아오면 웃고 떠들었던 일상은 모두 꿈인 것처럼 가족들 앞에서는 대화도 단절한 채 생활했다. 그리고 애써 숨겼던 대학 진학에 대한 불안과 걱정 그리고 끊임없는 미래의 고민은 방안 크기만큼이나 머릿속에 가득 찼다. 나는 집보다는 학교가 더 좋았다.


그런데 이 답답함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해 준 뜻밖의 존재가 나타났다. 내가 겪었던 경험 중에서 아름다운 이야기 중 하나이다.




아침에 새벽 6시쯤 새소리에 깨어났다. 방안을 두리번거렸지만, 어디에도 새는 없었다. 그런데 창문에서 무언가에 부딪히는 소리가 여러 번 들렸다. 직접 보니 새의 그림자가 이리저리 비행하고 있었다. 크기로 미루어보아 "참샛과"였다. 참새는 사람을 경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갑자기 찾아와 신기했다. 당연히 단순히 우연일 뿐이라며 가볍게 여겼다.


하지만 이후에도 다른 가족들 방도 아니고, 하필 내 방으로만 찾아왔다. 그것도 내가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서 말이다. 한동안 엄마의 목소리에 깨어나지 않아도 됐었다. 창문을 열고 확인하고 싶었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당황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방 안에 있는 게 싫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아침마다 새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는 소소한 시간이 되었으니 말이다.


친구들은 창문에 똥이나 지렸을 것이다, 밥 달라고 문 열어달라는 것 아니냐는 둥 이상한 소리를 했지만, 창문은 깨끗했고, 문을 열어달라는 제스처를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늘 나와 마주칠 때마다 자리에서 떠났다. 무슨 목적으로 이곳까지 찾아와 나에게 닿았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고된 삶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장시간 비행한 흔적이 그림자만 봐도 보였을 정도니까.


이제는 새의 소리에 일어나고 안전하게 잘 떠나는지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신기한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가령 모의고사를 망치고 적막한 어두운 방 안에 홀로 독서 등만 켠 채 우울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던 그 순간 새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평소에는 평일에만 찾아왔었는데 이날은 주말이었음에도 온 것이다. 1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이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새는 나를 위해 찾아온 것이라는 것을.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이미 우리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일지도 모른다. 덕분에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어느 날 새는 평소보다 길게 비행하며 더 많은 소리를 냈다. 일분일초라도 더 오래 힘차게 날갯짓하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직감할 수 있었다. 이 시간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이것은 작별 인사를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아마 더 넓은 세상으로 돌아가려는 것 같다. 나는 창문 너머의 새에게 미소로 답해주었다. 그러고는 유유히 떠난 뒤로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주제 표현 시간 때 20년 전의 이 아름다운 경험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았다. 네가 푸른 언어를 선물해 주었듯이 그림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누군가가 보기에 보잘것없는 색 덩어리에 불과할지라도 어딘가 있을 너에게 길을 잃지 않게 해 주길 더 나아가 이 그림 한 점이 너의 후손들을 지켜줄 힘이 되어주길 바라면서.


나는 반드시 닿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네가 어디에 있든. 우리는 연결되어 있으니까.



이 그림을 같이 듣는 학생들과도 나누고 싶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