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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22. 2020

참을 수 없는 중년의 가벼움

나는 나의 가벼움을 함부로 업신여기지 않기로 한다.

팔랑이는 것들은 가볍다.

바람에 날려 가볍고 부드럽게 계속 나부끼는 것들. 바람이라는 외부의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 것들. 그 모양 또한 바람의 결을 따른다. 그러니까, 흔들리지 않거나 흔들리더라도 저 고유의 결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 둘 모두를 포기한 것의 모양이 바로 '팔랑이는 것들'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중년'은 팔랑임이다.

움직이는 모든 행동과 말 그리고 생각이 그렇다. 그것은 먹고사는 것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먹고살기 위해선 바람의 속도와 결에 그것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고로, 직장에서 나는 팔랑인다.

더 정확히는 월급에 팔랑이는 것이다.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 올라가기 위해. 좀 더 많은 월급을, 좀 더 길게 받기 위해. 나는 오늘도 팔랑인다. 원하는 일을 하고, 하고 있는 일에 감사해하고, 나름의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외려 이러한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나는 거짓 표정을 짓고 맘에 없는 말을 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싫어했던 누군가의 가벼운 행동과 말을 그대로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 한 없이 서글프다. 누구를 향해 어쩌다 저런 괴물이 되었냐라며 손가락질하던 때, 더 많은 손가락이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는 걸 비로소 깨닫는다.


이러한 팔랑임 속에서, 나는 나의 가벼움을 참을 수가 없다.

유치함은 나이가 어린, 가벼움에 걸맞은 말이다. 그런데, 중년의 때에 느끼는 나의 유치함은 말 그대로 수준이 낮고 세련되지 못하다. 


그런데 돌아보면 나이가 들수록, 삶이 팍팍해질수록 더 유치해진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 배웠던 빨간 불엔 멈추라는 당연한 규칙을 지키지 않는 건, 학생들이 아니라 어른들이다. 먹고 삶을 짊어진 어른들에게 어쩌면 유치함은, 그러니까 존재의 가벼움은 일종의 생존을 위한 경쟁력인 것이다.


나는 그것을 삶의 역설이라 한다.

중심을 잡아 흔들리지 않기 위해, 오히려 그 무게를 가벼이 해야 할 때가 있어야 하는 것. 곧은 나무는 부러지지만 흔들리는 갈대는 강풍에도 살아남듯이. 갈대는 나무보다 가볍지만, 기어이 중심을 잡아내는 것이다.


살아가다 맞이하는 나의 가벼움이 썩 유쾌하진 않지만, 그러함으로써 덜 흔들릴 수 있다면.

그리고 내 중심을 잡을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삶의 고단함이 무거우니, 때론 잠시라도 가벼움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하며.

어쩌면 그것이 고도의 생존 기법임을 깨달으며.


나는 나의 가벼움을 함부로 업신여기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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