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엔 없지만, 직장생활에는 있는 것
전쟁터엔 없지만,
직장생활에는 있는 것
직장을 다니면서 언제, 어떻게 그 많은 글을 쓰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충분히 이해되는 질문이다. 글을 쓰지 않던 때를 돌아보면, 퇴근 후 내가 할 수 있던 건 누워서 스마트폰 보는 것 외에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자니 시간은 늦었고, 운동을 하자니 귀찮고, 독서를 하자니 피곤하다는 온갖 변명만 난무했다. 글을 쓴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한 마디로,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그저 나는 본능에 충실하게 먹고, 보고, 누워 있는데 익숙했었다. 온종일 힘들게 일했으니 쉬어야 한다는 자기 합리화도 한몫했다. 직장인에겐 글 쓸 시간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글쓰기로 마음먹은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다짐은 다짐이고, 실천은 실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결심과 다짐을 크게 했더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지 않으면 영화, 운동, 독서와 마찬가지로 글쓰기도 한낱 스쳐 지나가는 바람일 수밖에 없다.
흔히들 직장생활을 전쟁터에 비유한다.
소리 없는 총성이 가득하고,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모를 그 삭막함이 나를 감싸기 때문이다. 나는 그 비유에 흔쾌히 동의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라는 명제의 진실을 신봉한다. 살아남아야 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직장과 전쟁터는 그렇게 닮았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엔
매우 큰 차이점이 존재한다.
바로 퇴근과 주말이다.
전쟁터엔 퇴근과 주말이 있을 수 없다. 적군은 그것들을 가리지 않기에 아주 잠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반면, 직장엔 분명 퇴근과 주말이 있다. 업종과 직책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날짜와 요일이 다를 뿐 그에 상응하는 시간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나는 ‘혼자 있는 시간’에 주목한다.
글은 혼자 쓰는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도,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글쓰기는 같이 할 수 없다. 같이 해서도 안 된다. 나의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그 이야기를 누가 대신하거나, 그 이야기에 개입해선 안 되니까. 글을 쓰기 위해선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해야만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은 결국
퇴근과 주말에 있다
어느 날 우연히 퇴근 시간이야말로 정말 고유하게 나 혼자 있는 시간이란 걸 깨달았다.
회사에서는 동료들과 집에서는 가족들과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니 퇴근 시간은 놀랍게도 나 혼자 오롯이 있을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퇴근 시간엔 전철이나 버스를 놓칠까 발걸음을 재촉한다.
집에 가서는 결국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면서 왜 그리 빨리 집으로 향하려 했던 걸까. 다리에 힘을 빼고 속도를 늦췄다. 그러자,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퇴근길에 보이는 한강과 나무 그리고 꽃. 나와 같이 분주한 사람들과 상기된 얼굴들. 그 모든 풍경이 나에겐 어떤 영감이 됐다. 영감은 곧 글의 소재가 된다.
주말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가족과 시간을 충실히 보내고도 내가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언제일까. 생각해보니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난, 가족들은 아직 자고 있는 아침 시간 또는 가족들이 모두 잠든 후의 그 어떤 시간이 떠올랐다. 그것도 아니라면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도 좋다.
쓸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나를 돌아본다.
나를 위해 글을 쓰자고 결심했으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려 간절히 노력했는지를 말이다.
글쓰기는 결국 시간이 날 때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내서 하는 것이고 그 시간은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직장인 글쓰기,
퇴근과 주말 활용법
혼자 있는 시간의 중요성과 그 시간은 결국 퇴근과 주말에 있다는 걸 알고 나니, 다음 질문은 ‘이제는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였다.
퇴근 시간은 글쓰기를 위한 준비 운동의 과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운동을 하려 하면 근육에 무리가 가기도 하고, 시작하기가 싫어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기도 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쓰기를 하자고 마음먹는 순간 그 자리에서 바로 무언가를 술술 써 내려가는 일은 거의 없다. 준비 운동이 필요한 이유다.
서서히 몸과 마음을 풀어주어야 운동이든 글쓰기든 시작될 수 있다.
퇴근 시간, 오롯이 혼자 거니는 그 과정에서 나는 머리로 글감을 정리하곤 한다(나는 이것을 ‘Brain Writing’이라고 부른다). 내가 오늘 집에 가서 글쓰기를 한다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갈까? 도입부를 어떻게 잡을까? 사례나 명언은 어떤 걸 사용할까? 주제와 제목을 떠올려 머리로 글쓰기 준비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오늘 직장에서 있었던 일도 좋고, 퇴근길에 마주한 단상들 그리고 지난날의 나와 앞으로의 나에게 일어날 일들에 대한 이야기도 좋다.
물론, 사라지기 전에 그것들은 메모로 붙잡아 둬야 한다.
거창한 앱을 쓸 필요는 없다. 스마트폰에 있는 기본 메모 앱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 놓은 영감과 글감은 집에 도착한 뒤나 주말에 차근차근 풀어나가면 된다. 퇴근 시간을 준비 운동으로, 퇴근 후나 주말 시간을 본 운동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직장인인 내가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시간 활용과 소재 발굴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이면서도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다.
바로 그 자리에서 소재를 생각해내고, 억지로 하얀 여백을 채우려 할 필요가 없다. 그럴수록 글쓰기는 이어지지 않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많은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직장인 직장인이 글쓰기 시간을 만들고 활용하는 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직장은 전쟁터와 같지만, 어찌 됐건 퇴근과 주말이 있다는 것.
둘째, 글쓰기를 위해선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 낼 것.
셋째, 혼자 있는 시간은 퇴근과 주말에 있다는 것.
넷째, 퇴근 시간을 글쓰기 준비 운동으로, 퇴근 후나 주말 시간을 글쓰기 본 운동으로 활용할 것.
다섯째, 본업과 글쓰기 시간은 엄격하게 구분할 것.
직장인에겐 글 쓸 시간이 없어 보이지만, 결국 글쓰기를 위해서 우리는 다음 셋 중 하나를 해야만 한다.
있는 시간을 찾아내거나, 없던 시간을 만들어내거나, 아니면 둘 다 병행하거나.
퇴근길과 주말이 글쓰기를 마음먹은 직장인에게 더없이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으로 재정의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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