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대상을 똑바로 쳐다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자기 방어기제를 만들어냅니다.
방어기제는 나쁜 게 아닙니다. 스스로를 살아남게 하기 위한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또 가장 최후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방어기제를 특히나 '질투'가 발생할 때 많이 돌아봅니다.
나보다 잘 나가는 사람들, 나보다 (짧은 시간 안에) 돈을 더 많이 번 사람들 또는 더 쉽게 번 사람들, 나는 하지 못하는 걸 단숨에 해내는 사람들 등.
'질투'가 발생할 때 감정은 요동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자기 방어기제의 카드를 꺼내 듭니다.
중요한 건 이때를 잽싸게 알아채야 한다는 겁니다.
나는 어떤 방어기제 카드를 꺼내는지, 그게 어떤 의미인지를 말이죠.
대개 우리는 '질투'라는 감정이 떠오르면 부정적이 됩니다.
세상은 온통 기울어진 운동장이고, 신은 나에게만 관심이 없으며, 나만 홀로 남겨졌다는 어두운 생각들과 외로움이 엄습합니다. 가지고 있는 것에도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고 스스로 주변을 시궁창으로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것을 말 그대로 '질투는 나의 힘'으로 바꾸고 맙니다.
남에게는 있고 나에게는 없는 결핍을 오히려 뛰어오르는 에너지로 사용하는 겁니다. 웅크려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자세를 무언가를 차오르게 하기 위한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둘의 차이는 뭘까요?
왜 누구는 질투로 나락의 길을 걷고, 또 누군가는 질투로 성장이라는 날개를 달게 되는 걸까요?
정신과 의사 조지 발리언트는 방어기제를 4단계로 구분하여 제시했습니다.
1단계: 병적 방어기제
2단계: 미성숙 방어기제
3단계: 신경증적 방어기제
4단계: 성숙 방어기제
앞서 말한 질투로 무너지는 사람과 오히려 날개를 다는 사람의 차이는 이 '발리언트 범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질투 앞에 1~3단계로 머물면 부정적인 방어기제를 사용하게 됩니다. '부정', '망상적 투사', '왜곡', '공격적 행동화', 잘못된 합리화'등이 그것입니다. 타조와 같이 머리만 숨기고 모든 걸 부정하거나, 이솝우화의 여우가 먹지 못한 포도를 신포도로 힐난한 것과 같이 현실을 왜곡하거나. 심지어는 질투의 대상에 해를 가하는 '공격적 행동화'까지.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유머', '승화', '억제', '이타심', '기대' 등의 방어 기제를 사용합니다.
특히, '승화'는 질투로 유발된 요동하는 감정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우리를 조향 해줍니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질투의 대상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합니다.
오로지, 분노와 불공평에 대한 감정에 매몰되고 맙니다. 모든 화살의 촉을 나에게 겨누고 맙니다.
반면, 성숙한 사람은 질투의 대상을 바로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오히려 '배움'의 기회를 찾습니다. 내게는 없는 것, 저 사람이 잘한 것. 알고 보니 쉽게 얻은 게 아니라, 그 이면에는 내가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나 기대 이상의 노력과 실천이 있었다는 것 등. 질투의 대상을 똑바로 쳐다보는 연습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금 내가 그 어떤 대상에 '질투'를 느꼈다면.
요동하는 감정에 치우치기보단, 질투의 대상에 더 다가가세요. 똑바로 보세요. 자세히 보세요. 그리고 배우세요. 내게 없는 것, 나보다 잘 한 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겁니다.
피상적으로 크게만 그려왔던 그 대상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 기대보다 나에게 주어지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크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질투가 나의 힘'이 아니라, '질투를 제대로 바라보는 나'가 나의 힘임을 우리는 자주 떠올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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