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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Oct 07. 2023

(자본주의 사회) 얻어걸린 자를 이길 수 없다.

태어나 보니 잔고에 100억


얼마 전 5대 시중은행 중 가장 많은 예금과 적금 잔액을 가지고 있는 미성년자의 잔액이 공개되었어.

5곳의 미성년자 예/적금 계좌 280만 개에는 5조 원이 넘는 금액이 맡겨져 있었는데, 그중 가장 많은 잔액은 100억이었단다. 지난 3년 간 미성년자의 보유 예/적금 계좌수는 줄었지만 잔액은 늘었어. 사회적으로 미성년자의 자금 형성에 문제가 없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1000만 원 미만의 계좌수는 지속적으로 줄고 있고, 1000만 원 ~ 5억 미만의 계좌수가 꾸준히 늘고 있어. 1000만 원 ~ 5억 미만 계좌수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 2020년 기준 6만 5526좌 1조 4260억에서 2023년 7월 말 기준 8만 7138좌 1조 9374억으로 계좌수는 32.98%, 잔액은 35.86% 증가했어.


태어나보니 내 통장에 100억이라. 기분이 어떨까?

누군가는 큰 질투와 시샘에 휩싸여 욕을 할 거야. 불공평한 세상을 원망도 할 거고. 그렇다면 아빠의 솔직한 심정은 무엇일까? 너희에게 지금 당장 100억이라는 돈을 통장에 꽂아 주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함과 아쉬움을 느껴. 그러니까, 할 수만 있다면 너희에게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려주고 싶다는 이야기지. 불공평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가식은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울분 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내가 수 백억의 자산을 물려주고, 집 몇 십채를 물려줄 능력이 있다면 그렇게 할 거야.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말은 덜 하게 되겠지.


아빠는 이렇게 생각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공평하다는 말과 생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이야.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즐기는 자는 얻어걸린 자를 이길 수 없다.


태어날 때부터 100억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는 대체 그 돈을 쟁취하기 위해 무얼 한 걸까?

그 아이는 천재도 아니고, 노력하지도 않았어. 무언가를 즐길 새도 없이 돈을 얻게 되었지. 태어나보니 부모가 슈퍼리치였을 뿐. 부모를 잘 골라서 태어난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선, 이 또한 하나의 (운이 아닌) 능력이라고까지 말하는 게 우스갯소리만으론 들리지 않는 게 현실이야.


우연히 복권 당첨자의 소감을 본 적이 있어.

이 소감을 보고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던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지. 불평불만 하기보단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기로. 바라본 그곳에서 기회를 찾기로 말이야.

명언 중의 명언


인류 역사 500만 년을 하루 24시간으로 환산했을 때, 자본주의가 출현한 시간은 23시 59분 56초야.

24시간 중, 절반은 자본주의 없이 살아왔고 또 절반은 자본주의를 마주하며 살고 있는 것이지. 그러나 아빠는 이전 12시간은 자본주의를 구축해 왔던 시간이라고 생각해. 앞서 사람은 경제적인 동물이라고 이야기했었지? 250만여 년을 가장 효과적인 경제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물물교환부터 공산주의 그리고 사회주의까지 다양한 시스템과 시행착오를 겪은 후 맞이하게 된 게 자본주의니까 말이야.


자본주의 발달과 더불어, 인류는 살아보지 않은 하루하루를 매일 맞이하고 있어.

누구에게나 새로운 것이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거야. 태어나보니 100억을 가지게 된 아이의 이야기도 그중 하나이고.


열심히 살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는데, 빚이 늘어나는 현실.

경제가 좋지 않고 경기는 쉬지 않고 침체되고 있다는 협박성(?) 뉴스.

물가는 내려가는 일이 없고, 가계부채는 호전되기는커녕 늘어만 가는 만성적 법칙.


자본주의가 가져다준 풍족함으로 숨을 쉬고 있는데, 동시에 자본주의로 인해 숨 막히는 시대가 되어버린 거야. 전 세계 1%가 99%의 부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 없는 사람은 더 없어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꾸만 더 가제게 되는 기울어진 세계.


얻어걸린 자를 이길 방법은 과연 없는 걸까?


그럼에도 찾아야 하는 희망.
얻어걸린 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태어나면서부터 100억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 물려받은 건물로 평생 먹고살 걱정이 없는 사람들. 근로 소득보다 자본주의 소득이 월등히 높은 자본주의 시스템. 출발선부터 다른 삶의 시작이 평생을 좌우하는, 생각만 해도 탄식부터 흘러나오는 이러한 세상에서 말이지.


결론은, 얻어걸린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야.


물론, 너희 통장에 100억씩을 넣어 주지 못한 아빠가 말하는 그 방법은 결이 좀 달라.

가족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까지는 솔직히 아빠가 알려 주진 못하겠고,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너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말이야.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단다. 그러니까, 자본주의를 잘 이해하는 것이 그리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자본주의를 잘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야. '얻어걸리다'란 표현엔 우리 주위에 수많은 '기회'가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어. 앞서 복권 당첨 후기를 남겼던 사람도, 복권을 샀기에 얻어걸릴 수 있었어. 복권을 사지도 않았다면, '꽝'조차 마주할 기회조차 없었겠지. 이처럼, 우리는 많은 시도를 해야 하고, 또한 그보다 많은 실천을 해야 한단다. 그러다 보면, 삶은 무엇에라도 얻어걸릴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돼.


그렇다면, 얻어걸린 자가 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건?


첫째, 자본주의를 철저히 공부해라.


노벨 생리학/ 의학상 수상자 콘라트 로렌츠는 동물이 태어나서 처음 본 움직이는 대상을 부모로 여기는 현상을 '각인'이라 명명했어.

오리는 태어나서 10분 안에 보이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어미로 졸졸 쫓아다니는 걸로 유명하지. 우리는 태어나보니, 이미 자본주의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고 어느새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걸 졸졸 쫓아다니고 있는 꼴이 되었어. 자본주의에 각인된 우리는 그걸 아주 당연하게 여기지만, 그리 깊게 공부하지 않아. 왜냐하면, 당연한 거니까. 당연한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우리는 그 대상에게 놀아나게 돼.


국부론으로 유명한 애덤 스미스는,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그들의 고려(이기심)때문이다'라고 말했어. '보이지 않는 손'이란 유명한 말을 들어 보았지? 각자의 이기심과 개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사회 전체의 번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그의 의견을 잘 대변해 주는 표현이야. 물론, 애덤 스미스는 주체할 수 없는 개인감정의 탈주를 막기 위해 도덕 감정론을 근간으로 제시하기도 했어.


그러니까, 너희들이 아침에 눈을 떠 밤에 잠들 때까지.

주변의 모든 걸 다시 해롭게 보길 바란다. 물건을 파는 사람, 사는 사람. 사람이 모이는 곳과 돈이 모이는 곳. 그 둘의 상관관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돈에 대한 각각의 반응들. 욕구와 욕망은 어떻게 돈이 되고, 가치가 되어 경제로까지 이어지는지. 왜 소비와 빚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덕이 되고 있고, 은행은 끊임없이 돈을 찍어낼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하여 물가는 올라만 가는지. 내가 오늘 산 물건 중,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그 물건에 첨가된 내 감정의 정도는 얼마인지 등.


없는 사람은 더 허덕이고, 가진 사람은 왜 더 가지게 되는지.

불평 불만 할 때가 아니다. 그 안의 논리와 방법을 알아내고 찾아내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100억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도 있지만, 빚으로 시작해 부를 일군 사람들도 분명 있으며 이러한 사람들은 자본주의 안에서 기회를 발견하고 그것을 실천한 사람들이다.


둘째, 경험해라. 단, 깨달음을 동반한 경험을 해라.


경험이란 말처럼 좋은 말은 없을 거야.

좋았던 것은 추억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경험이라는 말도 있지. 경험은 삶을 더 지혜롭고 풍요롭게 해주는 인생의 치트키와도 같아. 지금 아는 걸 그때 알았다라면... 이란 후회는 경험의 부재에서 나오는 것이고, 반대로 미래의 경험을 지금에 끌어다 쓸 수 있다면 그건 타임머신을 발견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내줄 거야.


미래의 경험을 지금에 끌어다 쓸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깨달음'이란다. 아무리 많은 경험을 해도, 깨달음이 없으면 그 경험은 무용지물이야. 경험의 위대함은 시간을 거스를 수 있다는 것에 있어. 과거의 경험에서 깨달음을 얻게 되면, 지금 뿐만 아니라 미래의 선택을 하는데에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되지.


아빠의 경험으로, 그로 인한 깨달음으로 이야기를 해준다면.


첫째, (앞서 말한 대로) 자본주의를 먼저 이해해라.

둘째, 재테크는 하루라도 일찍 시작해라.

셋째, 주식도 하루라도 일찍 시작해라. (단 한 주를 사놓고 있더라도.)


너희는 이미 예/적금 통장을 가지고 있고.

더불어, 주식 계좌도 엄마 아빠가 만들어 준 걸 알고 있을 거야. 경험해야 한단다. 시작해야 한단다. 하루라도 빨리, 돈에 관해선 자본주의 시스템을 하나 둘 알아가야 해. 돈이 돈을 버는 구조를 이해해야 해. 그 금액이 적더라도, 때론 손실을 보더라도 말이야.


그저 오감만족에 머무르는, 돈을 주면 다 할 수 있는, 소비적이고 소모적인... 깨달음 없는 경험은 지양하되.

너희가 직접 돈에 관리해 보고, 그에 대한 소득과 손실에 대한 경험을 직접 해봐야 한다.


셋째, 글을 써라. 너 자신을 알라.


기분이 나빠 무언가에 돈을 써 본 적이 있을 거야.

소비는 감정에 기반한단다. 임상심리학자인 올리비아 멜란은, '어떤 사람들은 자존감이 낮아지면 그것을 소비로 채우려고 합니다.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를 부풀리게 되는 거죠. 내적인 감정이 좋지 않으니 반대급부로 겉보기를 좋게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광고는 우리의 감정을 건드린단다.

소비의 트리거(Trigger)가 '감정'이라는 것을 이미 간파한 기업의 꼼수이지. 아빠도 마케팅과 영업 전문가이기 때문이 이를 잘 알아. 아빠도 이 꼼수를 사용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자본주의 사회는 이렇게 돌아간단다. 소비를 하게 만들고, 지갑을 열려면 감정을 자극해야 하고. 물론,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소비도 있지만 문제는 기분에 따라 필요 없는 물건조차 사게 되는 극단적인 소비와 소모라는 것이야.


알고리즘에 이끌리다 보면, 마치 그것이 내 기분을 아는 것처럼 자극적인 영상을 보여주거나 또는 어떠한 소비로 안내를 하곤 하는데. 결제창에 이르러서는 질문을 꼭 해봐야 해. 내가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내가 바란 것은 무엇일까. 이 물건이, 이 서비스가 내게 가져다줄 것은 진정한 효용과 위로일까.


수많은 명품 옷과 액세서리를 휘감고 있으면 내가 명품이 될까?

멋있는 농구화를 신으면, 날아올라 덩크슛을 할 수 있을까?

차고 있는 시계가 수 천만 원을 호가한다면, 누군가의 진심 어린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돈에 대한 한탄을 하더라도, 포르셰에 앉아하는 게 더 낫겠지.

아빠도 경차보다는, 포르셰에 앉아 '돈이 다 무슨 소용이야...'를 외치고 싶단다.


그러나, 경차에서든 포르셰에서든.

중요한 건,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야. 소비물로 자신을 치장하는 것, 물건의 브랜드가 나를 대변해 준다는 자본주의 사상은 지갑을 열려는 기업의 꼼수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자아라는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채, 갖가지 브랜드에 오가는 존재는 자본주의가 바라는 영혼 없이 지갑을 여는 아주 착한 소비자에 불과해.


자본주의에 속해있을수록, 우리는 자아를 잘 규정하고 돌봐야 한단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란다. 글쓰기만큼 자아를 잘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은, 이제껏 없었기에 자신 있게 밀해 줄 수 있어. 글을 쓰고, 자아를 돌본 후 확실히 아빠의 소비와 돈에 대한 감각 그리고 태도는 많이 바뀌었단다.




자본주의를 제대로 공부하고.

그것을 경험하고 깨닫고.

또한 글을 씀으로써 자신을 챙기는 것.


이 세 가지를 잊지 말고 꾸준히 지속해라.

그러면, 우리도 얻어걸린 자가 될 수 있단다.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잡아챌 수 있게 된단다. 이 세 가지는,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 같구나. 모든 편지에 답장이 오는 건 아니다. 그러나, 편지를 보내지 않으면 답장을 받을 일도 없다.


뿌려 놓은 것들이 기회가 되어 나에게 돌아온다면, 더 많은 것을 뿌려 놓아야 하겠지.

어쩌면, 내가 뿌린 것보다 더. 그리고 내가 보낸 편지보다 더. 그것들보다 더 많은 기회가 돌아온다면, 우리는 얻어걸린 자가 될 수 있게 되는 거야.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불평은 접어 두고.

바꿀 수 있는 것들,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자.


노력도 하고, 즐기기도 하다 보면.

얻어걸리는 기회들이 하나 둘 더 많아질 것이다.


노력하는 자.

즐기는 자.

얻어걸린 자를 이길 필요는 없다.


그저 나는 오늘 노력하고, 즐겼는지.

얻어걸리기 위해 무엇을 뿌려 놓을 것인지에만 몰두해라.


남과의 싸움에 집착하여 자아를 잃는 것만큼 미련한 일은 없지만.

자아를 찾아가며 싸움 없이 승리하는 것만큼 지혜로운 일은 없으니까.


P.S


얻어걸린 자 보다는 준비된 자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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