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살까.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뭘까. 삶의 의미를 묻고 또 묻는다. 그러다 의미는 의미 없음을 깨닫는다. 무거운 돌덩이를 저 언덕 위로 굴려 올렸는데, 다시금 돌이 아래로 굴러 그것을 또 밀어 올려야 하는 형국이다. 의미 찾기가 힘든 건, 이러한 형국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면, 존재는 무기력해진다. 생각 없이, 의지 없이, 영혼 없이 하루를 꾸역꾸역 살아낸다. 그러다 죽음을 떠올린다. 어차피 의미 없는 삶, 죽어야 할까? 딱히 죽어야 할 이유도 떠오르지 않는다. '왜 살까'란 질문은 '왜 죽어야 할까'란 질문과 상반되는 듯 하지만 핵심은 같다. 삶과 죽음엔 놀랍게도 아무런 경계가 없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형기가 다른 사형수일 뿐이다. 하루를 살아내는 만큼, 하루를 죽어 가는 존재가 바로 우리다. 언젠간 모두 다 죽는다. 삶의 완성은 죽음일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렇다.
그렇다면 나는 무기력하게 그저 죽음을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는가?
군대에 있을 때였다. 대의를 위해 자유를 반납한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은 외모에 걸맞지 않게 모두가 철학자가 되고 시인이 되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보낼 때, 갖은 색의 펜을 써가며 자신의 마음을 담았다. 자유가 없자 생겨난 변화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도, 아이러니하게 저마다의 의미를 찾는다.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운동을 하거나 평소엔 믿지도 않던 종교를 기웃거린다. 언젠간 죽는다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오늘도 우리의 숨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이다. 그것 참...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이것을 부조리라 말한다.
의미를 찾으면 의미는 사라진다. 목표를 달성하면 더 높은 목표가 나를 기다릴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면 설렘과 안정을 모두 얻을 줄 알았는데, 사랑하는 사람과의 갈등이 더 어려운 법이다. 오히려 상처는 가까운 사람들로부터다. 무탈한 삶은 사람을 죽도록 허탈하게 만들고, 희로애락이 가득한 우리네 삶은 그 요동이 너무나도 커서 아무 일 없길 바란다. '무탈(無頉)'과 '유사(有事)'의 삶 어디에서도 만족을 찾지 못하도록, 절대자는 못된 몽니를 부렸다. 만족할 수 없는 삶, 균형이 맞지 않는 시소를 주고는 중심을 맞추기 위해 안달하는 가련한 존재를 우습게 바라보는 그의 비웃음이 나는 참 싫다.
절대자의 몽니, 그것이 곧 부조리인 것이다.
이러한 삶을 나는 받아들이기로 한다.
내가 절대자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어떠한 의미로서는 '반항'. 그가 파 놓은 함정에 빠져들지 않는 것.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란 생각으로 그가 주는 고난과 역경을 그저 수용하고 포용한다. 자유를 갈망하다 자유를 잃었던 삶에서 벗어나, 죽음이라는 운명을 피할 수 없는 사형수로서. 유한한 삶의 필연을 받아들이며 오늘도 나는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묵묵히 마주한다. 자유가 없다고 생각하면, 신기하게도 자유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어차피 죽어야 할 존대라고 생각하면, 오늘을 살아내야 할 명분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쓴다.
받아들이기 위해 쓴다. 쓰기 전에는 받아들이기는커녕, 내게 오는 세상과 사투를 벌이곤 했다. 모든 건 내 삶에 방해가 되는 것들이며, 가만 놔두지 않는 모든 것을 나는 적으로 규정했다. 일(一) 대 다(多)의 싸움은 그 결과가 정해져 있다. 굽히지 않는다고 하여 내 뜻과 의지를 알아줄 사람도 없다. 그래봤자, 모든 게 내 손해였고 상처 입는 건 늘 나였다. 그러나 쓰기 시작하니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어쩌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존재가 '나'라는 '자아'일 텐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줄 알게 됨으로써 나는 자기 화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화해는 단연코 글쓰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삶은 부조리로 가득하다.
부조리로 가득한 삶에 의미는 없다. 그러나 의미 없는 것을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면,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삶에 대항할 수가 있다. 대항은 싸우는 것이 아니다. 삶의 순리라고 믿었던 것들로부터 한 발 벗어나, 그 순리를 역행해보고. 역행하는 것이 또 다른 순리가 되도록 하는 정반합의 경험을 해보는 것. 어차피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흐르는 물은 치유의 능력이 있으며, 바다와 같이 웅장한 물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도 남는다. 순리는 순리로 귀결되고 되지 않을 것들은 어떻게든 안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 자, 한 자 적어가다 보면.
그래서 되는 것과 그러하지 않은 것이 훤히 보인다. 순리는 순리대로 받아들이고. 순리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원망하기보단 있는 그대로 포용할 수 있는 힘과 여유는 쓰는 자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종합 정보]
[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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