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말 오후였습니다.
아이들이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심심하고 지루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던 겁니다.
일하느라 아이들과 많이 놀아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동시에, 주말이라 너무나도 무겁고 무거운 몸뚱이.
아이들에게 이것저것을 해보라며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자 저보다 아이들에게는 더 전문가인 아내가 저를 말렸습니다. 오히려 심심하게 가만 놔두면 알아서 저들끼리 할 일을 찾아낸다고 말이죠.
과연, 아이들은 잠시 후에 책을 집어 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손으로 뚝딱뚝딱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부끄럽게도 제가 제안했던 건, 당장 지루함을 달래줄 인스턴트 처방이었습니다.
TV를 보라거나, 휴대폰 동영상을 보라거나, 게임을 하라는 것 말이죠.
지루함의 시간을 아주 잠시만 참아내자 뭔가 더 의미 있고 창의력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 스스로를 돌아봤습니다.
남아도는 음식으로 배고플 겨를이 없는 시대.
마찬가지로, 넘쳐나는 정보와 무분별한 콘텐츠로 심심할 겨를이 없는 세상.
아이들에게 제안했던 것처럼, 어쩌면 저는 제 자신에게 그렇게 당장 지루함과 심심함을 떨쳐버릴 무언가를 인스턴트식으로 마구 욱여넣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지루하고 심심한 건, 이 바쁜 시대에 죄악이란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지루하고 심심함은 곧 '권태'라는 우주로운 기운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것을 살면서 많이 봐왔기에.
그러나, 그 기운을 느낄 때 저는 권태를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이것저것 바로 심심함과 지루함을 달랠 무언가를 찾지 않았습니다. 대신, 저 자신을 돌아봤습니다. 스스로와 대화했습니다. 이 권태로움은 어디에서, 왜 오는가.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러자 마치, 정신이 긴 동면에서 깨어난 것처럼 밝아졌습니다.
아마도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동면에서 깨어는 그즈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무언가를 소비하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생산해 내는 삶이 시작된 겁니다.
권태는 우주로운 기운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의 일상을 압도합니다.
그러나, 그 기운이 마냥 두렵거나 또 마냥 부정적인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쉽게 해결하려고 할 때, 우리는 스스로 함정에 빠지고 맙니다. 그 누구도 파 놓지 않았는데, 홀라당 빠지게 되는.
지루함과 심심함.
그로부터 시작된 권태감.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연인 사이에도 권태가 온다면, 직장인에게 권태를 뒤집어쓴 슬럼프가 온다면. '너'를 탓하지 말고 '나'를 돌아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당장 어설프게 풀어서 될 일이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오는 반짝반짝 빛나는 창의의 기쁨과 인내의 즐거움은 우주의 기운 그 이상이 될 것입니다.
'나를 뺀 우주'와 '나'의 무게 중, 더 무거운 것은 '나'이니까요.
[종합 정보]
[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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