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고달플 때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언가를 구분하지 못할 때 그 고단함은 훅하고 올라옵니다.
'구분'한다는 건 일정한 기준에 따라 전체를 몇 개로 나누어서 가른다는 뜻입니다.
좀 더 나아간다면 어쩌면 그것은 '선택'의 다른 말이기도 할 겁니다. 그중에서 취할 것과 그러하지 않을 것을 가르는 과정이자 결과가 '구분'이라는 말이니까요.
그러니까, 구분할 줄 안다는 건 내가 아는 기준으로 무언가를 나누고 적재적소에 그것을 선택하여 활용한다는 말로 풀이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엔 최고라 일컬어지는 사람과, 최악이라고 평가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둘은 모두 한국인이지만 해외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같은 조건을 가진 그 두 사람이 양 극단으로 평가가 갈리는 이유는 뭘까요?
자,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최고라 일컬어지는 사람은 서양의 사고방식과 동양의 사고방식을 둘 다 가지고 있는데, 서양 사람에겐 서양사람으로 동양사람에겐 동양사람으로서 상대를 구분하여 대합니다. 때로는 합리성을, 때로는 인간성을. 때로는 개인주의를, 때로는 집단주의를 오가며 적절하게 상황에 맞는 태도를 구사하는 겁니다.
최악의 사람은 반대입니다.
서양 사람에게 동양인임을 내세우고, 동양 사람에게 서양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사회와 정서에 역행하는 언행으로 이곳저곳에서 구설수에 오르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자신이 가진 페르소나와 성격, 성장배경과 성품 등. 자신을 잘 들여다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라 생각합니다. '구분'은 '일정한 기준'에 따라 무언가를 나누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즉, 스스로의 기준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큽니다. 기준이 있으려면 자신을 잘 알아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기준을 세울 수 있고, 기준을 세울 수 있어야 구분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또 하나.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의 유무입니다. 내가 상대방을 배려하며 그 코드에 맞추려 노력하는 것과, 상대방은 모르겠고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행동하고 말하는 것의 차이가 최고와 최악의 사람을 구분해 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를 바탕으로 볼 때, 저는 '드러내는 것'과 '드러나는 것'을 잘 구분하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급했던 예처럼 최고의 사람은 '드러낼 때'와 '드러날 때'를 잘 구분합니다. 최악은 역시나 그 반대겠죠. 드러내야 할 때 가만히 있고, 드러나야 할 때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 드러내지 못하여 아무도 모르고, 드러내지 않아도 모두가 알거나 시간이 지나면 더 반짝반짝 빛나며 드러날 텐데 굳이 자신을 소란하게 드러내는 것처럼 말이죠.
이 또한 나 자신을 잘 알고 모르고가 정말 중요하고, 남을 배려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서 그 결과가 극명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말하고 싶은 것. 표현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것. 그것을 드러내야 할 때와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알고 구분하는 것. 더불어, 구분하기 위해선 나를 잘 돌아봐야 하고 그래서 내가 가진 기준으로 그때를 가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삶은 참 재밌으면서도 야속합니다.
아무리 드러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다가, 가만히 있어도 드러날 때가 있는가 하면. 드러내지 않아서 묻히는 안타까운 일들도 많이 벌어집니다. 그러니까, '구분'이란 건 참 쉽지 않다는 방증일 겁니다.
우리는 매 순간의 구분과 선택을 완벽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만의 '기준'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기준에 따라 구분하고 선택했다면 그때부턴 그저 나를 믿는 겁니다. 무서운 건, 기준도 없고 스스로를 잘 모르는 무지입니다.
잘 구분하며 살아야겠습니다.
드러내야 할 때와 드러나야 할 때를.
나 자신을 뼛속까지 돌아보고, 나만의 기준을 세워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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