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맞춰 놓은 알람 시간보다 30분을 늦게 일어났습니다.
낯선 아침의 공기는 지각을 했다는 명료한 증거였습니다. 평소엔 느끼지 못했던 조금은 더 강한 햇살, 그 햇살에 여유롭게 떠 다니는 부유물들, 들리지 않던 어느 트럭 장수의 마이크 소리.
세상이 무너진 듯, 나라를 빼앗긴 자의 얼굴로 긴급히 양치와 세수를 하고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걱정의 크기는 나 자신을 압도했습니다. 압도당한 자아가 바라본 세상은 너무나 차갑고, 스스로가 원망스러웠습니다. 한 번의 지각으로 이제까지 쌓아 온 평판이 무너지면 어쩌나, 직장에서 근태는 근무태도를 말하고 이는 정말 기본 중의 기본인데...
사무실로 향하는 여정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나와 같이 늦게 잠에서 깬 사람이 많은지 택시는 불러도 대답이 없고, 결국 5분을 더 지체하고 나서야 지하철로 향했습니다. 전광판엔 전철이 두 정거장 전에 있다는 객관적이고도 차가운 정보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 두 정거장의 길이가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나를 향한 모든 것에서 그 순간만큼은 '자비'란 이 세상에 없는 단어였습니다.
1분, 아니 1초가 지나면 지날수록 걱정은 쌓이고 또 커졌습니다.
이러면 어쩌나, 저러면 어쩌나... 어차피 늦은 거 마음을 편히 가져보자고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어느 정도 괜찮아지는 듯했으나, 걱정은 여전했습니다.
드디어 사무실에 도착한 그 순간.
걱정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걱정했던 만큼은 늦지 않았고, 걱정했던 것만큼 나의 늦음을 알아차린 사람도 없었습니다. 30분 늦게 일어나고, 택시를 잡으려다 지하철을 타는데 지체한 모든 시간을 합한 것보다 빨리 도착한 것입니다.
한숨을 돌리며 생각해 봤습니다.
이런 초인(?)적인 힘은 어디에서 온 걸까?
스스로의 결론은 바로 '걱정'에서였습니다.
걱정의 크기만큼 매 순간을 빠르고 민첩하게 나 자신을 움직인 것입니다. 평소라면 그럴 일이 없었다 치더라도, 또 한편으론 평소엔 발휘하지 못했던 모습들이기도 했죠.
그렇다면 저는 왜 이처럼 걱정을 하며 사무실로 돌진한 걸까요?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안정적인 반복을 하다가 그것에 예외가 생겼고, 그 예외는 그나마 확실한 날들의 패턴을 어지럽힌 겁니다. 상사는 나에게 어떤 반응을 할지, 나는 과연 몇 시에 도착할지, 내 평판은 어떻게 이루어질지. 모든 게 확실하지 않고, 분명하지 않으니 불안하고, 불안하니 걱정이 앞섰던 겁니다.
그 아침.
저는 깨달았습니다. 때로는 걱정을 많이 해도 좋다는 걸. 그 걱정이 나를 일으켜 자비 없는 세상에 힘을 내어 대항하게 해 준다는 걸. 더불어, 내가 걱정했던 것만큼 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걸.
대개 좋지 않은 일들, 감당하기 버거운 일은 걱정이나 예상을 하지 못한 데에서 충격이 더 크게 옵니다.
'걱정'이란 나 스스로를 염려하는 마음이며, 이것이 모여 미리 스스로를 지키는 마음을 우리는 '불안'이라고 명명합니다. 그러니 걱정과 불안은 온전히 나를 향한 마음이며, 그것의 크기를 키우더라도 괜찮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모든 건, 한쪽으로 심하게 쏠릴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큰 걱정을 하고 그것보다 덜 한 일이 발생하는 것, 예상하지 못한 일을 갑작스레 맞이했을 땐 걱정과 불안의 정도를 좀 더 높여야겠다는 것. 이러한 삶의 지혜를 하나하나 쌓아가며 그 균형을 맞춘다면 어느새 우리는 걱정과 불안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때로는 걱정을 많이 해도 좋습니다.
염려하지 않다가 두들겨 맞는 일들이 오히려 더 많이 아픈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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