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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28. 2017

심리학의 과거는 길지만 그 역사는 짧다!

Part 1. 심리학이란 무엇일까? #2

Part 1. 심리학이란 무엇일까? #2

"그래, 자네 뭘 공부한다고 했지?"


"네, 심리학입니다."


"허허, 그래 철학하는구먼 철학. 요즘 그걸로 밥은 벌어먹고 살 수 있겠나?"


벌써 약 20년이 넘은 어느 날이었다. 대학에 갓 입학하여 집안 모임에 참석했을 때, 나이가 지긋하신 촌수도 가늠이 안 되는 먼 친척 중 한 분이 내게 했던 말씀이다. 그분의 말씀 중, 두 가지가 인상 깊었다. 첫째, 나는 계속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건만 그분의 입에선 '심리학'의 '심'자도 나오지 않았다. 그분의 입에서 나온 건 '철학'이었다. 나중엔 포기하고 '철학'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밥이나 벌어먹을 수 있겠냐는 말이었다. 당시, 심리학을 택한 이유가 '자아 정체성'을 찾기 위한 순수한(?) 목적이었으므로 어르신의 말씀이었지만 그리 성가실 수가 없었다. 그때는 그랬다. 나 자신을 잘 알아야 뭐를 벌어먹고 살아도 살 것 아닌가라는 반문이 목까지 차올랐었다.


"심리학의 과거는 길지만 그 역사는 짧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분의 말이 그리 틀리지도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은 '심리학'을 '철학'으로 규정하고, '철학'을 발판으로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겠냐는 현실적 질문을 하신 거였을지 모른다. 아니, 분명 그렇다. 아직도 나이가 지긋하신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심리학'을 '철학'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심리학은 정말 철학에서부터 나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철학이든 심리학이든, 어찌 되었건 인간의 존재와 마음에 대한 고찰이므로, 존재의 목적으로 보자면 굳이 그 둘을 나눌 필요도 없고 인간이 태어나 스스로를 자각했을 때부터 생겨난 자연스러운 질문과 고뇌가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 해도 좋다.


학습과 기억, 망각곡선으로 유명한 독일의 심리학 에빙하우스는 그의 [심리학 개론]이란 저서에서, '심리학의 과거는 길지만 그 역사는 짧다.'라는 말을 했다. 즉,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던 철학의 역사는 길고 길지만, 우리가 현대 시대에 이야기하는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역사는 얼마 되지 않았음을 명쾌하게 정의한 것이다.


우리가 원시인이라고 이야기하는 네안데르탈인이 묻힌 유적지에서, 그들의 유골뿐만 아니라 많은 화분이 발굴되었다. 죽은 사람에게 꽃을 바쳤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가 원시인이라고 생각하는 그 존재도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했거나, 누구를 위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시간이 갈수록 실체화되면서, 교부철학을 집대성한 아우구스티누스는 '과거는 기억, 미래는 기대'라는 생각을 전파했다. 마음속에 각인된 일이나 기억, 감정을 과거라고 규정하고 '앞으로 이렇게 하고/되고 싶다.'는 기대의 마음을 미래라고 가정한 것이다. '심리학적 시간론'이라고 불리는 이 논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을 포용하는 개념이 되었다. 이 사상이 신학자로부터 철학자에게 전해져 심리학적 사상으로 발전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심리학 태동의 유력한 설이다. 즉, 초기의 심리학은 철학과 그 맥을 같이하는 혼연일체였던 것이다. 그러니, 앞서 언급한 먼 친척분의 '철학'과 '심리학'의 혼동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철학자들은 정말로 인간의 마음에 대해 관심이 참 많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론]이라는 책에서 '꿈'을 비롯해 '기억', '수면', '각성' 등 현대 심리학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데카르트는 태어날 때부터 관념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생득 관념'을 주장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그의 말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이에 반해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들은 '생득 관념'에 대해 반격을 가했다. 즉, 관념은 태어날 때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갓난아기의 마음처럼 하얀 도화지에 시간이 지나면서 축적되는 것이라 주장했다.


이렇듯 철학자들 사이에서 마음은 '형태가 없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니 그들의 갑론을박은 누가 맞고 누가 틀리고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물론, '마음'에 대한 이야기는 칼로 두부 자르듯 정의, 분류할 수 있는 것의 성질이 아니기에 그들이 하는 논의와 방향이 올바른 것인지 조차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과학적 탐구'라는 말은 연구결과가 같은 조건에서 재현되거나 누구라도 경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수소와 산소를 일정한 비율로 섞으면 물이 된다'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몇 번을 시도하고, 어느 누가 하더라도 마찬가지 결과를 내는 '객관적인 결과'다. 철학자들은 '마음'에 대해 수 없이 이야기하며 저마다의 주장이 맞다고 이야기했지만, 그것을 꺼내어 보여줄 생각까진 못한 것이다. 아니면, 그러한 것은 '마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마음'이란 것 자체가 보일 수도 없는 것일뿐더러 증명되는 그 순간 '마음'의 본질은 사라져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시도는 계속해서 진행되고 정립되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독일의 심리학자 분트 (Wundt, Wihelm: 1832 ~ 1920)를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는 철학과 생리학을 전공했다. 생리학자가 되고 싶었던 그는 마음을 바꾸어 심리학자가 되기로 했다. 생리학에서 심리학으로 바꾼 그의 결심이 오늘날의 심리학을 태동하게 한 것이다. 그는 마음을 주시한 '내관법(Introspection)'을 사용, 스스로의 마음을 관찰하여 남의 마음을 주시하고자 했다. 더불어, 그는 의식만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를 잡아내어 의식의 작용을 '구조화'하려 노력했다. 막연하게만 이야기하던 마음에 대한 이야기들이 '구조주의(Structural Psychology)'라는 이름을 마침내 갖게 되었다.

철학의 역사는 인류의 기원과 거의 그때를 같이하고, 과학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려 한 것은 19세기 분트에 이르러서이니, 과연 심리학의 과거는 길고 역사는 짧은 것이다.




잠시, 이렇게 심리학의 원류(源流)에 대해 짚어보았다. 직장인의 심리학이라는 제목을 보고는 당장에 도움이 되거나 위안이 되는 해법을 기대한 사람들에겐 많이 지루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래도 막연하게 심리학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거나, 알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 있었다면 나름 의미가 있었을 거라 믿는다. 내가 나를 알아야 하듯이, 우리가 앞으로 활용하고 도움을 받게 될 '심리학'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것도 도리라면 도리겠다. 모든 학문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더 매력 적이고, 더 어려워지고,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그 학구열이 불타오르는 그 순간이 말이다. 그리고 그 배움은 나를 위해 쓰일 것이니 값진 여정이라 생각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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