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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26. 2017

'마음'은 어디에 존재할까?

Part 1. 심리학이란 무엇일까? #1

직장에서 가끔 대학 때 전공이 뭐였냐는 질문을 받는 경우가 있다.


"심리학입니다."


재밌는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앗, 그럼 내 마음을 읽는 것 아니에요?", "말조심해야겠네." 등의 반응을 보이며 열에 반절 이상은 손으로 심장 부근을 가리곤 한다.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영문과라고 영어 완벽하게 말하는 것 아니고, 정치학과 나왔다고 정치 잘하는 게 아니잖아요. 걱정 마세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그리곤 서로 웃는다. 대부분의 반응이 한결같으니 내 입에선 이런 맞대답이 자동적으로 튀어나올 정도다.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며 영업과 마케팅을 주 업무로 한다. 주위엔 상경계열 전공자가 많다. 물론 비상경계열 전공자도 다수지만, 그중에서도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을 만나기는 더 어렵다. 내가 심리학을 전공으로 택한 건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저 '나'를 알고 싶었더랬다. 심리학을 전공하여 누군가의 마음을 훔쳐보거나 치료하거나, 저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되겠다는 것을 빌미로 돈을 벌고자 한 것이 아니다. 아마도 어렸을 적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라는 큰 존재의 부재로 인해, '정체성'에 대한 무수한 의문을 제기한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된 것 같다.


'심리학'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보이는 사람들의 반응은 더 있다. "어, 나도 심리학 관심 많았었는데", "심리학개론 재밌게 들었었어요." 등이다. 이처럼 심리학은 누구나 알고 있고 친숙한 단어다. 좀 더 생각해보면 누구나 자신의 존재나 타인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궁금해한다. 그러니 우리는 알게 모르게 심리학을 이미 생활화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심리학을 전공으로 삼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의 존재를 알아가고 규정하기 위해 심리학을 선택했던 내게 펼쳐진 심리학은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더불어, 내가 바란 심리학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충분했다. 보통 '심리학' 하면 프로이트와 융의 무의식에 관한 것을 기대하지만, 이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는 이야기가 되었고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리 깊이 다뤄지지 않는다. 실증주의 학문으로 돌아선 심리학은 마음과 행동의 상관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통계를 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실체로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숫자가 싫어 문과를 택했는데, 사람의 마음을 공부하러 간 그곳에서 숫자를 마주하게 되니 심리 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더불어 지각(知覺) 심리 수업에서는 인간의 눈과 감각을 이해하기 위해 의과대에서나 하는 신체부위나 신경에 대한 명칭을 달달 외워야 했다. 당시 수업을 진행하시던 강사님이 공부는 의대만큼 하는데, 돈은 못 번다며 던진 뼈 있는 농담에 고개를 자연스럽게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심리학에 대한 기대는 일단 크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생활에 좀 더 쉽게 스며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어떤 연예인이 '이성을 꼬시는 행동'에 대해 '작업'이란 말을 썼다. 이 말은 삽시간에 퍼져 '작업'이란 단어는 또 다른 뜻을 가지게 되었고, 널리 통용되었다. 어쩌면 이것이 '이성을 꼬시는 행동'을 보다 실체화하게 된 계기가 아닐까 한다. 굳이 미사여구를 붙이고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작업'했다고 하면 그저 쉽게 이해될 정도로.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느샌가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상처'는 보통 몸이나 물리적인 겉표면에 부상이나 손상을 입은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이 '상처'란 말을 '마음'에 사용해도 큰 무리나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다 명확히 '실체화'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미 심리학이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증거다.


더 흥미로운 것은 우리는 고대 철학자들이 갑론을박하던 어려운 문제를 한 방에 해결했다는 것이다.


"너 참 영혼 없이 말한다"

"영혼이 탈탈 털렸다"

"마음에도 없는 말 하지 말아"

"몸 따로, 마음 따로"


때론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자연스레 몸과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생활 속에 섞어 쓰면서, 몸과 마음이 개념적으로 분리되었다는 '이원론(Dualism)'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둘이 정말 따로 떨어진 존재인 것을 우리가 알고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인지는 아직 누구도 결론 내릴 수 없다. 분명한 건 우리는 '마음'이란 실체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은 어디에 존재하고 있을까?


고대 그리스 시대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는 마음은 뇌에 있다고 했다. 반면에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음은 심장에 있다고 했다. 그는 '마음'은 심장에, 뇌는 점액을 배출하는 곳으로 체온을 조절하는 냉각기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풀이했다. '감정'은 마음에 가깝고, '이성'은 머리에 가깝다는 의미로도 보인다.

근대 철학에 큰 기여를 한 데카르트는 '실체 이원론'을 주창했다. '실체'란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 다른 어떤 것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말하는데, 데카르트는 '인간은 정신이라는 실체와 육체라는 실체가 함께 공존하는 독특한 존재'라 규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혼이 떠난다고 몸의 기능이 중지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중지하기 때문에 몸이 죽고, 그 결과 마음이 육체에서 떠난다고 보았다.


예전에 어느 드라마에서,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마음이 아프다며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지는 빨간약을 가슴에 바르는 모습으로 전 국민을 눈물바다에 빠뜨린 적이 있다. 이것만 보면 우리는 결국 '마음'은 심장 쪽에 위치해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받는 모든 자극은 오감을 통해 뇌로 전달되고, 그 뇌에서 신경 세포의 화학적/ 전기적 반응을 통해 감정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을 보면 '마음'이 머리에 있는 것인지, 심장에 있는 것인지 쉬이 결론 내릴 수가 없다.


직장인을 위한 심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전에 다소 원론적이면서도 쉽지 않은 질문을 던져 보았다. 심리학의 기본이 되는 '마음'에 대한 것. 그것에 대해 우리는 인지를 하고 실체를 파악해야 한다. 바쁜 일상과 꾸역꾸역 반복되는 지친 생활 속에서 우리는 입으로는 영혼을 운운하며 '이원론'을 농담 삼아 외쳐대지만, 정작 그것을 따로 두고 보아 각자의 마음을 관찰하거나 위로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심리학을 좀 더 알아야 하는 이유이자, 직장인으로서 수많은 자극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그것으로 받은 상처를 어떻게 보듬을 것이냐 하는 자기 생존의 목적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을 공부하고, 심리학의 눈으로 '직장'을 바라보기 전에 심리학의 기본에 대해 몇 가지 짚어보고 넘어가고자 한다. 그 옛날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젊었을 때의 열정을 떠올리며 차근차근 같이 알아나가 보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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