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 대로 가득히
매일 행복하자구,, 우리,,. - 20211212
일기가 하루의 기록에서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로 바뀌어 갈 때 즈음, 나는 나 스스로와의 거리감을 많이 지울 수 있었다. 남에게 건네기 낯간지러운 말들을 나에게 하고, 삼켰던 말들을 글을 통해 뱉었다. 나의 하루는 타인이 포함된 상호작용보다 본인과 함께한 일들이 더 많았기에 적히는 글도 같은 양상을 보였다.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와 같은 말들은 감정을 담고 행동을 설명하려 한다. 이들은 비교적 명확한 전후관계가 존재하지만, 행복은 그렇지 않다. 행복하길 바란다는 말은 특별한 상황으로부터 발생하지 않고, 특정 시기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나에게 와서 행복하자는 작은 다짐이자 용기, 응원이 되어 줄 뿐이다.
그래서 자주 쓰였다.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 가장 먼저 드는 해결책이다. 언제 봐도 기분이 좋고, 지금의 내가 하는 변명이 나중의 나에게는 분명한 문장이 되어준다. 이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일기의 마지막 한 줄을 채우려 버릇하다 습관이 된 이 말은 내 삶의 빈 공간에 틈틈이 들어와 메워줬다. 이제는 기록의 시작이 행복이 되기도 하는데, 그래서인지 하루의 출발을 행복으로 정의하는 날도 적지 않다.
행복하자는 말은 무겁지 않다. 무섭지도, 무르지도 않다. 그래서 스스럼없이 자주 사용한다. 반면 가지고 있는 뜻은 아주 사랑스럽다. 단순이 사전적 의미가 좋다기보다, 행복하자는 말이 갖는 느낌이 좋다. 행복을 만들어 갈 수도 있고, 빌어줄 수도 있다. 많은 행복을 바랄 수도, 오랜 행복을 원할수도 있다. 받는 이와 보내는 이에 따라 다양한 색을 보이는 단어는 나에게 와서 나만의 단어가 되는 듯하여 더 애착이 생긴다.
내게 행복은 크지 않다.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적다기보다, 사소한 것에도 행복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행복 앞에 매일을 붙일 수 있었다. 나는 충분히 매일 행복해하는 게 가능한 사람이다. 매일, 매번, 매 순간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하루 한 번은 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수많은 것들, 즉 내 행복의 근원에서 한 가닥을 잡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었다. 매일 행복할 수 있다면, 그렇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나만 쓰고 나만 보는 일기, 어쩌다 보니 말을 건네게 되었고, 나는 우리가 되었다. 적는 때는 과거의 나이고, 읽을 때는 현재의 나이니 어찌 보면 둘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싶다. 나와 나는 서로 다른 날에 시작된 독백으로 대화를 진행한다. 서로에게 바라는 점을 말하고 원하는 소원을 적는다. 그 많은 말 중, 오늘은 행복하자는 말을 꼽았다. 지금 하는 우리라는 말은 나와 나뿐만이 아니게 되었지만, 그래서, 그렇기에, 우리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