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랑 용인의 어느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보러 갔다가
바로 그날 분양신청을 하고 계약까지 해버렸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큰 충동구매였다.
내 퇴직 후 계획은 그거 하나로 완전히 틀어졌다.
원래 지금 사는 아파트를 리모델링하던가
비슷한 가격대의 주택에 이사해서
최대한 주거비용을 줄이고 대신 현금을 손에 쥐고
한 10년은 잘 먹고 잘 놀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지도를 펼치고 세상 가보고 싶은 곳을 표시하고
갈 순서를 정하고 거기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려고
비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중이었는데….
아내가 이번엔 좀 완강했다.
“새 집에 한 번 살아보자고, 나도 그러고 싶다고”
퇴직을 앞둔 남들은 도시 중심에 있는 비싼 아파트를 정리해서 주변으로 나오며
현금을 마련해서 노년에 쓸 돈을 마련한다는데
우린 반대로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으고 대출까지 해서
대단한 도시는 아니지만 지금 아파트보다 두 배 더 비싼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고?
하우스푸어라더니, 우리가 그 꼴이 되는 거 아닌가?
젊은 나이도 아닌데?
아내를 말리기 힘들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40년에 가까운 결혼생활에서
평생 한 번 새 아파트에 살아보고 싶다는데.
“지금 사는 집 처분하고 당신 퇴직금에, 거기다 나한테 비자금도 조금 있고”
저게 무슨 말인지? 비자금이 있다고?
몇 년 전부터 내가
“우리 재산이 얼마야?”
“당신 돈을 얼마나 갖고 있어?” 하고 물으면
“이 월급에 뭘 모으니?” 이게 답이었다.
전엔 애들 키우고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면서 조금씩 모으더니만
이젠 부모님들께 돈 들어갈 일도 없고 아이들도 다 독립했는데
왜 예전의 아내와 다르게 돈을 모으지 못할까? 궁금했다.
물론 꼬치꼬치 물은 적은 없다.
본인이 찔렸는지
“나이가 드니 여기저기 아프고 해서 돈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
물가도 올라가고, 월급은 안 오르고….”
그러더니 남편 몰래 비자금을 챙겨두었군.
아내의 열망이 얼마나 컸던지 그 돈도 다 내놓겠단다.
그러니 당신 여행 가려고 모아두는 비자금의 반도 내놓으란다.
아직 입주까지는 2년 이상의 시간이 남았고 본인이 좀 벌어보겠단다.
나도 동의한 게 나중에 현금이 부족하면
그 집을 주택연금으로 활용해서 쓰면 되니까,
적어도 자식들한테 내 재산은 물려주지 않아도 되니까
하우스푸어가 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연금으로 충분히 사용하고 남은 건 자식한테 주면 되니까
물론 부동산에 투자해서 돈 벌 생각으로 한 건 아니다.
그런 모험을 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
순전히 아내의 바램이니까 들어주고 싶은 거고
또 그걸로 망할 거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