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밥은 누워서 먹는다
코로나 때만 해도 남편이 치매는 아니었다.
출근했다 온 남편이 열이 난다며 검사하러 병원에 갔다.
나는 그 즉시 집을 나갔다.
코로나 공포. 극한 상황에서 내 본모습이 드러났다.
언니한테 전화했다. 언니네는 살던 아파트는 그대로 두고 옆 단지로 이사 갔다.
언니네 계획은 원래 살던 아파트는 형부가 쓰고 새 아파트는 언니가 쓰기로 했었다.
하지만 막상 이사한 집이 마음에 들었던 형부는 계속 눌러앉아 살게 되었다.
아파트가 비어 있으니 거기서 혼자 좀 있으면 안 되겠냐고 물었던 것이다.
언니는 형부한테 물어봐야 한다며 일단 빈 아파트로 오라고 했다.
언니는 나한테 의리도 없다고 했다.
어떻게 남편 간호할 생각은 안 하고 혼자 살겠다고 도망을 칠 수 있냐고 비난했다.
그러는 와중에 형부가 언니한테 전화했다. 허락이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엉뚱하게 언니도 쫓겨났다.
형부가 말하기를, 처제랑 접촉했으니까 집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빈 집에 둘이 있게 되었다.
의리 없는 나는 남편을 피해 도망 왔고,
의리 없는 남편을 둔 언니도 졸지에 나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코로나는 형부가 걸렸다. 언니와 나는 용케도 지금까지 안 걸리고 있는 중이다.
언니와 빈 아파트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언니는 나를 욕실이 있는 안방에 감금했다.
절대 나오지 말라고 했다. 방문 앞에 죽을 갖다 놓고 전화해서 먹으라고 했다. 사흘을 그렇게 갇혀 있었다.
이틀 동안 병원 가서 검사했지만 코로나는 안 걸렸다. 그래도 언니는 보름동안 알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너무 답답해서 언니집을 나왔다. 그리고 오빠집으로 갔다. 오빠는 조카와 둘이 살았다.
조카와 오빠는 내가 오든 가든 상관 안 했지만 불편한 건 마찬가지였다.
새벽마다 조카가 키우는 고양이 두 마리가 자는 나를 감시했다. 나흘을 거기서 보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남편과 통화했다. 남편도 출근대신 집에서 격리 중인데 증상은 별로 없다고 했다.
약을 줘서 먹고 있기는 하지만 감기보다 약하다고 했다. 내가 집으로 가겠다고 했더니 그래도 일주일은 있다가 오라고 했다. 날마다 락스로 청소를 하고 있다고 했다. 안 그래도 깔끔한 사람이 얼마나 더 닦아내는 걸까 싶었다.
일주일 지나고 남편이 출근했다. 남편이 출근한 틈에 집에 왔다. 집은 깔끔했다. 냉장고에 남편이 나를 위해 주문해 둔 밀키트 음식들이 있었다. 집에 오니 살 것 같았다.
아들 밥은 앉아서 먹고 딸 밥은 서서 먹고 남편 밥은 누워서 먹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미리부터 겁을 먹고 나가지 말 것을 그랬다.
다들 다른 방 쓰면서 격리하고 산다던데, 나만 '오바 육바'했다.
미리 겁을 먹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비극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 미스트의 영화 버전에서 그 충격적인 결말을 보고 그렇게 충격을 받았으면서도. 정작 나는 미리 지레짐작을 그렇게 공포스럽게 했다니.
남편은 제일 편한 존재다. 세상에 이렇게 편안하고 만만한 존재가 있을까. 엄마보다 더.
절에 가서 절밥을 먹으면 절대 남기면 안 된다. 특히 불자인 언니를 따라가면 언니 눈치 보느라 한 숟갈 먹을까 말까 할 정도로 밥을 뜬다. 혹시라도 남기면 언니가 혼을 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과 여행길에 선암사 가서 먹은 절밥은 최고였다. 내가 남겨도 남편이 다 먹어 준다. 그런 든든함이 있었다.
지금 나한테 의지하는 남편도 그때의 나처럼 나를 의지할까?
삼겹살 먹을 때 비계를 떼면 조카는 대번, 그럼 비계는 누가 먹으라고! 한다.
"이 씨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아, 뭐!" 이런 식이다.
하지만 남편은 너무 편하다. 내가 고기만 먹든 비계를 떼 내든 뭘 해도 상관없다. 먹다가 남기든.
남편은 마치 할머니처럼 나 먼저 먹이고 나 먼저 맛있는 거 먹게 하고. 늘 그랬다.
그런 남편이었구나. 쓰다 보니 줄줄이 생각이 나네.
치매 걸린 내 남편아.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 했잖아.
난 얘기하고 넌 웃어주고 했잖아
내가 먼저 죽고 자기는 내 장례 치르고 바로 따라오기로 했잖아.
의리없이 이게 뭐냐!
나더러 어쩌라고. 왜 자꾸 애기가 되려고 하냐! 이 바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