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어 죽지 않는다.
산책하다 열매를 주워 먹었다.
산딸기도 따 먹었다.
앵두도 버찌도 살구도 따 먹고 주워 먹고 했다.
우리 동네는 습지가 많은 동네였다.
뽕나무까지 있는 산자락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오면서 습지는 거의 묻혔다.
그래도 산 아래 숲 속 공원을 조성해 놔서 나무들이 많다.
땅에 떨어진 살구를 주워 먹다 흙이 입에 들어가 뱉었다.
이삭 줍는 사람들 자세로 먹다가, 이건 무슨 엘비라 마디건도 아니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별반 다를 것도 없다 싶다.
굶주림을 감수하고 애정의 도피 끝에 죽음으로 치닫는 영화의 자극까지는 아니어도.
내 결혼도 다를 바 없었다.
보증금 100에 월 18만 원.
도배장판은 그대로 쓰기로 하고, 아는 언니 살던 집 옥탑방에 세 들어 시작한 결혼이었다.
남의 집 옥상 조립식 가건물 옥탑에서,
신혼의 빨랫줄을 단단히 붙들어맸다.
결혼은 현실이다. 사랑만으로 살 수 없다.
모두 결혼을 반대했었다.
드라마틱한 성공신화는 없었지만, 드라마 같은 신혼이었다.
그때는 비가 새는 방이라도 둘만 있을 수 있다면 좋았다.
지금은 남편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리고 근로능력상실자가 되었다.
다행히 복지국가에 살게 되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다.
석 달 한시적이지만 급한 불은 껐다.
비 그친 아침 산에서 내려오다가 숲체험자락으로 왔다.
봄부터 목련도 보러 오고 오디도 따먹으러 온다.
여기는 맛볼 재미가 많다.
가을이면 밤도 떨어지고 겨울지나 호두까지 볼 수 있다.
유월 어느 아침.
우리는 엘비라 마디건처럼 숲 속에 있었다.
살구나무 아래 앉아 폰으로 글을 쓰는데 살구가 툭 떨어진다.
엘비라 마디건과 다른 건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게 아니라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임대지만 이제는 빨랫줄을 맬 베란다가 있다.
좋은 산책이었다.
죽을 때 좋은 산책이었다는 느낌으로 죽는다면 축복이겠지.
엘비라 마디간처럼 당장 굶어 죽지는 않겠지.
살구나무 아래서 남편과 나는 글을 썼다.
살구가 두둑 떨어지는 유월 어느 아침.
우리는 시간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