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우울한 삶을 어떻게 건져내는가.
브런치 서랍에 하나씩 글을 담으면서 마음의 방이 하나 더 생겼다.
남편의 알츠하이머병 진단 2년.
오직 치매. 뇌 지도를 그려 보라면 치매만 덩그러니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딴 맘이 생겼다. 글감이 치매생각을 잠깐씩 밀어낼 때가 있다.
더 큰 것이 와야 그것이 덮인다던데. 아직까지 딴마음이 더 큰 건 아니다.
그런데 옆에 바싹 붙는 것 같다.
삯바느질감을 얻어 오는 아낙처럼.
나는 글감을 얻는다.
그 누구도 아닌 내 남편을 통해서.
"너 하나는 내가 어떻게든 먹여 살린다."
남편이 그렇게 말할 때가 있었다.
그러네. 맞네.
이렇게 글감이 되어서라도 여전히.
나를 살리고 있네.
사람들은 한 마디씩 한다.
남편만 챙기지 말고 본인부터 챙기라고.
내가 나를 챙기는 방식은 글쓰기다.
남편 식단을 준비하다가 메모를 한다.
달걀을 삶다 말고, 연어를 찌다 말고, 잠깐씩.
맨발로 산을 걸으며 시를 암송하는 남편을 따라가면서도
번뜩 번뜩 떠오르는 단상을 브런치에 저장한다.
치매 남편이 내 뇌를 점령하고 있어서 아직은 글감이 발붙인 곳에서 나온다.
그런데도 한숨 돌려진다.
김수영 시인도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는 시를 그렇게 썼을까?
"코를 풀다 말고, 시를 쓰다 말고, 탱크가 지나가는 연도의 음악을 들어야"만 하면서
1968년에.
헤밍웨이 씨
온갖 질병과 우울이 당신의 글쓰기 원동력이었나요?
고통을 초월하고 녹여내는 글을 쓴 건가요?
막판에 무릎 꿇은 건가요?
저는 아직 김수영 시인의 시「생활」 조언을 따르고 있어요.
"모든 것을 제압하는 생활 속에 애정처럼 솟아오른 놈"
그놈이 나한테는 글쓰기일까.
시인은 "좌판 위에 쌓인 호콩 마마콩"을 보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지만
나는 아직 거기까지는 못해도
글 쓰면서,
숨비소리를 낸달까요.
"모서리뿐인 형식뿐인 격식뿐인"것만 같을 때도 있지만
"바닥이 없는 집이 되고" 싶지 않아요.
아직 우리 부부는 「의자가 많아서 결린다」기 보다는,
웃으며 「생활」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