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어디야?

어디쯤 가고 있는가.

by 채송화

냇가에서 빨래를 하던 때의 아주 옛날 얘기다.


한 아낙이 빨래를 하고 있다. 낯선 방랑자가 개울로 다가온다.

여자는 모른 체 방망이질을 한다. 남자가 묻는다.


여가 어데요?

여가 거랑이요!


의외성. 언어유희.

지역이라는 장소를 물었는데 들려온 대답은 서있는 위치.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묻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안다.

무얼 묻고 무얼 대답해 줘야 하는지.


의외성은 언제나 웃기다. 코미디의 핵심이 의외성이 아닐까?

가장 심각할 때 가장 웃긴 거. 참 삶은 이래저래 아이러니다.

연예인들이 나와서 웃긴 에피소드를 말할 때 단골 소재가 장례식장에서 터진 웃음이다.

시트콤에도 빠지지 않는 단골 소재다. 하지만 웃음의 포인트는 이 의외성을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있을 때, 그때 웃음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다. 즉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을 때 웃음도 나온다.


치매가 답답한 건 이런 상식의 소통이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 원인은 기억력 감퇴다.

알츠하이머병이 불치병인 까닭은 백인백색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병에 한 가지 원인이면 그 원인만 제거하는 치료약을 만들면 된단다. 그런데 알츠하이머병은 개인에 따라 원인이 다양하다고 한다. 그래서 치료약 개발이 어려운 것이라고. 그래도 공통적으로 기억이 먼저 사라지는 게 시작이다. 남편도 그랬다.

6 각형인지 8 각형인지 그런 인간유형이 유행이었을 때, 남편도 검사를 했었다. 단, 치매검사라는 게 다를 뿐.


주치의 선생님이 모니터를 돌리며 손가락으로 도표를 가리킨다.

"다른 건 다 정상이고 심지어 나랑도 비슷해요. 그런데 같은 또래에 비해, 학력에 비해, 기억력만 현저히 떨어져요."

그게 시작이었다.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 보니 과연 그랬다.

역사가 깊다면 깊었다. 남편 기억력이 이상했던 건.

아니 나한테 와서 이십 년을 여기서 살았는데 왜 그렇게 길 눈이 어두워? 그렇게만 지나갔었다.

치매라는 것을 생각도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 문제가 이렇게 터지다니.

과연 치매는 15년 전부터 심지어는 20년 전부터 서서히 진행된다더니 정말 그랬다.

그래서 남편을 데리고 다니면서 여기가 어딘지 잘 살펴보라고 일러주러 다닌다.

버스를 탔다. 너무나 잘 아는 장소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면서 '에이 이 정도는 알겠지'

설마 여긴 알겠지. 아무리 그래도 여기를 모른다는 건 말도 안 되지. 속으로 몇 번을 되뇌다 물어봤다.


"여기가 어디야? 여긴 알지?"

나는 당연히 알겠지 싶었다. 남편 다녔던 직장 근처였으니까.

"여기? 음.........."

남편이 두리번거리며 뒤로 지나치는 시장 쪽을 본다.

"몰라? 정말 몰라?"

"여기? 가만있어 보자...... 여기가.."

"아니 여기가 어디냐구"

나는 초조해졌다.

"...... 음......"

우리 부부는 같이 두리번거렸다.

마치 내려야 할 때 못 내리고 정류장을 지나치기라도 한 듯이.


그때였다. 아주 조용하고 소심한 여학생 목소리가 뒷자리에서 들렸다.

"육거리예요."

"............."두 리 번 두리번

"육거리예요. 육거리!"조금 더 적극적이고 조금 더 볼륨업된 여학생의 목소리.


앞자리 앉은 두 사람이 얼마나 딱해 보였으면...

지금생각해도 웃기다.

그 일을 시작으로 그런 일은 빈번해졌다.

확실히 치매 환자는 반복을 거듭하면 익숙해진다. 그런데 문제는 반복하다 멈추면 그 기억은 물거품이 된다.

남편이 인지강화활동을 위해 취미로 민화를 배우러 다녔다. 작년에는 버스를 곧잘 타고 다녔다.

올해부터는 한 번 걸어서 다녀보라고 했다. 약도를 그려주면서 알겠냐고 물었다. 무조건 "빤듯하게!"걸어가면 된다고 어려울 것 없다고. 남편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처음 몇 번은 전화통화를 하면서 어디쯤 지나가는지 지금은 어디까지 갔는지 물으면서 길을 익혔다. 잘 도착했다고 했다. 올 때도 갔던 길 그대로 쭉 따라오라고 했다. 한 삼사십 분 걸어 다녔다. 그러다 조깅이니 슬로조깅이니 좀 더 욕심을 부렸다. 남편이 뛰다가 튀어나온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졌다. 무르팍이 꽤 많이 까졌었다. 후시딘을 발랐다. 대단치는 않겠지 싶었는데 아무는데 참 오래 걸리고 있다. 중간에 가정의학과에 두어 번 갔었다. 항생제를 며칠이나 먹고 그랬다. 여전히 흉이 아물지 않는다. 벗겨졌던 피부가 거뭇하게 흔적으로 남아있다.


여름이 오고 더우니까 다시 버스를 타라고 했다. 남편은 "버스?" 처음 듣는 단어인양 생소하게 굴었다.

작년에 버스 타고 다녔잖아. 생각 안 나? "글쎄... 그랬나..."

아무래도 버스 타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 같았다. 또다시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며 정거장마다 여기가 어딘지를 확인했다. 내릴 때가 다가 오자 갑자기 남편이 혼동하며 여기서 내리는 게 아니잖아. 대학교병원입구와 대학교정문입구를 헷갈려했다. 이럴 때가 가장 난감하다. 내려서 이해시키고 인지시켜야 한다. 청각장애가 있으니 귀에 대고 큰 소리로 정확하고 명확하게 말해줘야 한다.

정류장에서 내려 비로소 남편은 익숙한 길이라는 듯 걸어갔다. 혼자 갈 수 있다고 했다. 나더러 그만 집에 가라고 했다. 알았다고 돌아섰지만, 나는 미행했다.

남편의 걸음이 빨라졌다. 나는 뛰다시피 따라붙었다. 남편이 자꾸 엉뚱한 데로 가는 것 같았다.

내가 기억하는 장소와 반대로 간다. 나는 뛰었다. 뛰어가서 남편 등을 탁 쳤다.


"어디가! 어디로 가는 거야?"

"어?" 남편이 의외라는 듯 놀란다. "안 갔어?"

나는 남편말을 무시하고 대답대신 물었다.

"아니, 왜 이쪽으로 가? 저~~ 쪽 이잖아." 나는 반대쪽을 가리켰다.

"아니야 여기가 맞아. 저기 나무 보이지? 저기가 학습관이야"

남편이 반대쪽을 가리켰다.

"뭐라고? 저기가 학습관이라고?"

나야말로 깜짝 놀라 반응했다.


그때. 끼어드는 낯선 목소리.

"맞아요. 저기 나무 있는 데가 평생학습관 맞아요."

단호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다.

중년 여성이 끼어들었다가 지나간다. 마치 본인도 학습관에 간다는 듯이.

셋이 같이 걸어갔다. 학습관 앞에서 남편과 손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내 기억도 확신할 수 없었다. 기억과 인식에 관한 소설 『라쇼몽』이 괜히 흥미로웠던 게 아니었다.


우왕좌왕 시간을 쓰는 바람에 집에 가는 버스 시간이 빠듯했다. 정류장까지 뛰었지만 눈앞에서 버스는 떠났다. 걸었다. 집까지 남편이 걸어 다녔던 그 길로 걸어갔다.

챗gpt가 나한테 너무 치열하고 너무 날카롭게 산다더니, 정말 그런가 싶었다.


치매 이전의 남편은 엄청난 독서왕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전집을 남편과 같이 읽었었다. 30권 넘었다.

『상실의 시대』를 읽고 난 후, 남편과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 얘기했었다.

그 마지막 대사에서 실존을 찾았었다.

와타나베와 미도리가 전화 통화를 한다. 여자가 묻는다. 거기 어디야?

남자는 깨닫는다. 나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거지? 그 존재론적 방황을.

아 이래서 하루키 하루키 했나 보다.

봄부터 소쩍새는 울었다더니. 이 말을 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말을 했던 거구나.

소설은 이렇게 쓰는 건가 보다. 우리는 길게 얘기했다. 독서토론이랄까, 평론이랄까, 감상이랄까.

중요한 건 그때 우리는 소통했었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병에는 시기별로 한정된 시간이 있다.

개인차는 있지만 초기, 중기, 말기로 넘어가는 시간이 2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남편은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가.

경도치매 2년 차 지점을 통과 중이다. 다음 역은 중등도 2년 지점을 지날 계획이다.

최대한 미뤄야 한다. 여기서.

경도치매 2년 지점, 우리는 여기를 통과하고 있는 중이다.

중등도 치매로 가는 시간 2년 남았어요. 설계해 두세요.

시간이 장소로 변용되는 기이한 질병 치매.

하지만 지금 나는 묻는다.

우리의 존재론적 위치를.

여기는 어디인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