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

A Lover's Concerto 통신은 끊어지는가

by 채송화

야니의 아크로폴리스 공연 실황을 들으며 태백산맥을 읽을 때, 이거 다 읽으면 무슨 재미로 사나 싶었다.

그것이 유일한 걱정이던 때도 있었다. 걱정은 한강을 읽으며 사라지고, 아리랑으로 임꺽정으로 장길산으로 토지로 갈아 타며 내내 즐거웠던 때가 있었다. 엄마가 있을 때 얘기다.


어제처럼 선명하다. 우리들의 채팅방. 누구는 기형도 시를 읊으며 심각했다. 나는 "배춧잎 소리 타박타박 엄마 걱정"을 말했다. 회사원들은 점심 메뉴를 정하며 활기찼다. 나는 '소화'라고 썼다. 칠복이 팔복이 깽이는 소화가 안 되냐고 물었다. 창조는 태백산맥을 떠 올렸다. 나는 반가웠다. 그렇게 창조님과 나는 글 쓰다 눈이 맞아 아니, 글이 맞았다. 따로 나가 둘이 채팅했다. 창조님과 수개월 채팅을 했다. 글로 정이 들어버렸다. 밤마다 전화 통화를 했다. 국문학을 전공했다기에 내가 먼저 번개를 제안했다. 처음 만나던 날 창조님은 기형도 시집을 나한테 선물로 줬다. 우리는 영화를 봤다. 전도연과 한석규가 우리처럼 채팅을 한다.

우리는 접속했고 몇 년뒤, 결혼했다.


신혼의 옥탑방에 우리 살림은 없었다.

하나씩 장만했다. 코미디 세상만사에 콩트를 써서 보냈다. 두 번이나 채택이 되었다. TV와 세탁기를 받았다. 가스오븐레인지를 목표로 했을 때 프로그램이 폐지되었다. 다른 곳에 투고했다. 이성미 박미선의 진실게임에서 VCR을 받았다. 이홍렬쇼에서 벽시계나 옷을 받았다.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결혼 예물 시계 세트를 받았다.


싱글벙글 쇼에서 오디오를, 이종환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시대에서 받은 카메라도 있었다.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서 화장품이니 휴대폰이니 케이크니 피자니 주유권이니 도서상품권이니 소소하게 받았다. 나는 주로 도서 상품권을, 형부는 주유권. 화장품은 언니를 주고 먹는 건 조카들을 주고 휴대폰은 오빠를 줬다. 그야말로 이건 언니 주고, 이건 오빠 주고, 이건 내먹고. 그랬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 김창완아저씨는 오십만 원 상당의 마리끌레르 상품권을 보내 주셨다.

엄마와 언니랑 같이 갔다. 엄마는 알록달록한 꽃무늬 셔츠 2개, 언니는 핸드백을 골랐다. 나는 빈손이었지만 좋았다. 외식상품권을 받으면 언니를 줬다. 심지어 언니 시아버지 환갑 장소와 샴페인까지 받아 줬었다.

한동안 폭풍 투고를 했었다. 가족사진 촬영권으로 사진도 찍고. 세계적인 첼리스트 미샤마이스키 공연도 월말상품으로 타서 봤다.


내가 제일 좋았던 건 야니 포스터를 받은 거였다. 김현주의 fm모닝쇼에 별명이 나 서기 pd라는 조정선 pd가 있었다. 음악사에 들러서 야니 포스터 있는지 물었는데 야니가 누구냐고 했다니까, "내가 직접 그려서라도 보내드릴게요"하더니 포스터를 보내왔다. 포스터를 방에 붙여놓고 아리아를 질리도록 들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는 왜 남편과 결혼했을까?

너무 슬퍼서 그랬던 것 같다. 엄마 돌아가시고 도무지 그 상실감을 이길 수가 없었다. 애도의 기간이 신혼 3년 내내 걸렸던 거 같다. 얼마나 울었는지. 남편이 없었으면 어떻게 견뎠을까 싶다.


남편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리기 전까지 남편은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존재였다.

우리는 소설을 읽는 듯 잘 살았었다. 하지만 진정한 소설은 치매가 진행되고부터 시작되었다.

바뀌지 않은 것 하나는, 창조님은 여전히 소설을 창조 중이다. 남편의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옛날에 엄마는 나한테 밤마다 닭 모이 쪼아 먹는 소리를 낸다고 했었다.

그 소리. 언제 까지나 듣고 싶은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그런 상실감을 또 겪고 싶지 않다.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삶은 곧 죽음이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갑자기 황망한 방식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엄마의 옛날 얘기 마무리 멘트처럼 "자알 살다가 어제그저께 죽었단다. 내가 그 상세집에 가서 잘 얻어먹고 왔잖나." 그러기를 원하는 것이다.

슬픔에 겨워 오열하는 것 말고. 잘 살았지. 잘 가자. 안녕. 그러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나가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갑작스러운 두절이 아니라.


남편과 처음 만나 연애할 때 자주 들었던 우리의 주제가. A Lover's Concerto를 듣는다.

남편은 아무 반응이 없다.


Don't ever make me cry...

창조님. 나를 울게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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