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손은 맨발로 뛴다

덴마크 요구르트라고!

by 채송화

열어 놓은 현관문으로 남편의 발소리가 들린다. 남편이 기분 좋게 휘파람을 불며 오고 있다. 딱 그친다.

"엇! 왜 그래!"

화장실 문턱에 상반신만 걸친 채 누워있는 아내를 보니 놀라기도 했을 것이다. 몸이 분리되는 마술처럼 나는 상반신은 화장실 밖에 하반신은 화장실 안에 반반씩 걸치고 누워 남편이 올 때를 기다렸다.


흙 묻은 발로 남편이 뛰어 들어온다. 그예 매발톱으로 내 이마를 걷어찬다. 그럴 줄 예상했다.

남편은 가위손이다. (조니뎁도 아니면서) 나한테 잘한다고 뻗치는 손이지만 나는 늘 상처 입는다. 여기저기 긁힌 상처를 감싸 쥐며 제발 30센티 가까이 오지 말라고 간청할 때도 있다.

그런 나도 남편 놀라게 하는 데는 선수다. (위노나 라이더도 아니면서) 우리는 늘 서로 느닷없이 특히 상상도 못 한 평온한 시점에 놀라게 하고 놀라는 사이다. 멀리서 보면 시트콤이 따로 없다. 하이킥에서 이순재가 아파서 말도 안 나오는데, 하필 바보 같은 사위 정보석이 오더니 이순재 팔을 밟는다. 목소리가 안 나오는 이순재가 입을 벌린다. 정보석이 귀를 가까이 댄다. "파아알!!!!!!!!!!"그렇게 높은 소프라노라니! 그런 상황이 우리 부부한테는 흔하다.


"왜 그래? 또 볼 일 못 봤어?"

"가서 덴마크 요구르트 3개 사다 줘."

"아무거나?"

"아무거나!"


이 상황에 딸기맛 복숭아맛 따질 때인가? 하긴, 평소에 디테일을 강조하던 나한테 얼마나 혼이 났으면 저럴까 싶다. 그래도 저렇게 상황파악이 안 되나 싶으면서 일부러 이럴 때 교묘하게 나 약 올리는 건가 싶기도 하다. 심란하다. 스마트폰을 옆에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가 온다. 그럴 줄 알았다.


"왜"

"가게가 다 문이 닫혔어."

"편의점 가봐. 편의점에 있어"

예상은 했다. 아침 9시에 문을 연 슈퍼는 없으니까.


한 참 후 또 전화가 온다.

"뭐 사 오라고 했지?"

"덴마크 요구르트 3개"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온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나간 엄마"도 아니면서, 맨발로 나간 남편은 안 온다. 기분 좋게 맨발 걷기하고 온 남편이다. 변비 때문에 몸져누운(?) 마누라 때문에 발도 못 씻고 나갔다. 남편은 어디서 헤매고 있는 걸까.

기형도 시인이 엄마를 기다리듯, 나도 애타게 남편을 기다렸다.


또 전화가 온다.

"없대. 편의점 몇 군데 다녀 봤는데 없어."

"지에스도 없어? 세븐일레븐도 없어?"

"없어."

"그럼 그냥 아무거나 사와. 푸르밀이든 불가리스든 불가리아든 뭐든 아무거나 얼른 사가지고 와"


남편이 왔다. 아무거나 세 개를 연거푸 마셨다.

"내가 또 손으로 끄집어 내볼까?"

남편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변기에 앉아 있는 나를 본다. 고개를 저으며 화장실 문을 닫았다.


그랬다. 남편은 그런 적이 있었다. 관장도 해 주고. 필요하면 손으로 끄집어 내주기도 했었다.

울면서 화장실에서 나오면 잘했다며 얼른 쉬라하고 뒤처리를 남편이 다 했었다.

우리 할아버지도 그랬다. 옛날에 '국민학교'다닐 때는 학교에서 뭘 참 많이 했던 거 같다.

주사도 학교에서 맞고, 채변 봉투도 학교에서 가져오라 했었다. 그때는 할아버지가 다 해줬다.

볼 일 보고 나와서 "할아버지 똥 다 눴어" 하면, "어이, 잘했다" 하셨다.

다음 날 학교 갈 때 할아버지가 봉투를 잘 담아 건네주면 학교에 냈다.

나이 든 요즘은 병원에 내야 된다. 지금은 남편이 한다.

"자기 나 볼일 다 봤어."

"어 잘했어"


똥 잘 누고 칭찬 듣고 칭찬받는 일. 그런 일이 어디에 있나? 애기한테, 강아지한테, 고양이한테는 있다.

그리고, 치매 게시판에 있다. 엄마가 이렇게 해 놨다며 누군가 사진을 올렸다. 봤다. 찡그려지지 않았다.

내 것도 못 보는 앙상한 비위를 가진 나다. 지금까지 음식물 쓰레기도 버려 본 적 없다. 그런데 외면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태를 보니 어르신이 식사를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나는 남편 치매가 심해지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못한다. 안 할 것이다. 반대 상황이면 남편은 기꺼이 할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남편을 의지하고 있다.


내 일이라면 맨 발이든 맨 손이든 맨 몸이든 사리지 않고 덤벙 뛰어들던 남편과 살아봤다.

그런 사랑받으며 살아 봤다. 아직도 여전히 남편의 치매로 괴로워 울 때도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운다. 치매 남편이 내 등을 쓸어내려 준다.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준다. 가장 상처받고 있는 나날들 마저도 남편한테 기대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자신이 없다. 남편처럼 할 자신이 없다.


가위손이라 불렀던 남편은 치매로 무뎌져 가고 있다. 이런 걸 바란 건 아니다. 실패마저 그립다는 남편의 일기를 봤을 때 눈물이 났다. 나를 할퀴어도 좋으니 예전의 뒤퉁맞은 남편이 나도 그립다. 이제와 돌아보면 치매 전조였나 보다. 치매는 15년 무려 20년 전부터 진행된다고 하니, 남편의 뒤퉁 맞음은 치매 전조였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직은 고맙다. 느리고 더디고 어눌해도. 여전히 나의 가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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