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의 종말
엄마 뱃속에서부터 옛날 얘기를 들었다. 엄마는 옛날 얘기를 잘했다. 외할아버지는 더 잘했다. 엄마는 시집오기 전까지 외할아버지한테 '고담'(고전을 일컫는 듯)을 들었다고 한다. 춘향전이니 옥단춘전이니 물론이고 선녀와 나무꾼을 비롯한 방대한 설화 민담 전설. 엄마는 엄마의 아버지한테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외갓집 옛날 얘기는 사실 '노동요'였다.
외가를 비롯해 그 당시 우리 고향은 삼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삼을 삼고 베를 짜고 그랬던 것이다.
밤이 이슥하도록 무르팍이 벗겨지도록 삼을 삼아야 한다. 그래서 외할아버지는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었던 것이다. 엄마는 얘기 듣는 재미에 날 새는 줄 모르고 삼 껍질을 벗겼다고 했다.
그렇게 십 대 시절을 보내다가 중매로 이웃마을 아버지와 혼인하게 되었다.
엄마가 만약 유투버였다면 옛날 얘기 할머니로 대박이 났을 것 같다. 귀가 보배라고 엄마는 외할아버지한테 그대로 전수받은 셈이다. 그리고 또 그대로 우리 형제들을 그렇게 키웠다. 그런데 유독 막내인 내가 옛날얘기에 열광했다. 나는 또 해줘. 또 해줘. 잠이 들 때까지 졸랐다. 엄마는 "얘기 좋아하면 나중에 못 산단다" "가난하단다" 하면서도 술술 얘기를 해주었다.
엄마의 옛날얘기는 그리움이었을 것이다. 친정이 그리울 때마다 엄마는 옛날얘기를 하며 달랬던 건 아닐까 싶다. 내가 엄마의 얘기가 그리운 것처럼.
여자들은 왜 나무꾼을 만날까. 친정이 하늘나라인 선녀는 날개옷을 찾으면 친정으로 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친정이 없는 여자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추억 속으로 가겠지.
엄마가 친정에 가면(엄마는 외갓집을 가면 한 보름동안 갔다) 언니가 대신해 줬다. 팔베개를 하고 엄마를 흉내 내며.
엄마와 아버지는 문학적 비유를 기가 막히게 했다. 그래서 언니와 나도 무슨 말을 하든 비유를 해야 대화가 맛이 났다. 하다못해 아버지는 "나는 풀섶에 앉은 새와 같다." , "나뭇가지 앉은 새와 같다"며 엄마 돌아가신 빈방에서 울었다. 밖에서 듣다가 나도 울었는데 울면서 그 와중에 비유하며 중얼거린 아버지가 웃겼다.
언니한테 말해줬다. 언니, 아버지가 풀섶에 앉은 새 같대. 새가 어떻게 풀섶에 앉아? "앉아 풀섶에."
언니는 아버지 반응이 늘 그랬다는 듯 시큰둥했다. 그러면서 외롭고 불안한가 보네 덧붙였다.
나뭇가지 홀로 앉은 새 같다는 둥 그러더니 아버지는 새처럼 날아갔다. 다른 여자한테 가서 재혼했다.
영화를 보면 애들이 잘 때 동화책을 읽어 주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볼 때마다 느낀 건데, 왜 책을 읽어주지? 그냥 옛날 옛날에 하면서 얘기로 해 주면 더 좋을 텐데 싶었다. 아마도 나는 엄마가 들려주는 생생한 옛날 얘기를 접해봤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처럼 맛깔나게 옛날 얘기를 하는 사람이 흔하지는 않다. 그래서 <전설의 고향>이 인기였는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니 내가 유독 <토지>에서 좋아했던 장면도 얘기하는 씬이었다. 거복이 엄마이자 평산의 처 함안댁(?)이 바느질하면서 들려주는 얘기. 특히 양금석 배우였을 때. 그 어둑한 밤 조명까지. 또 영화 소재도 작가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가 유독 끌렸다. 이 모든 게 다 내 자라난 배경과 이렇게 연결이 되다니.
결혼하고는 남편이 엄마 대신이었다. 모든 면에서 남편은 내 엄마였다. 잠이 안 올 때 엄마 대신 남편이 이야기를 해줬었다. 특히 나는 보석날창이라는 동화를 좋아했다. 남편은 구연동화를 하듯이......
아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남편은 이번 상반기에 구연동화를 배우러 다녔었다.
지금은 남편이 책 읽는 소리를 위안으로 삼는다. 발음도 어눌해졌지만 그래도 목소리를 듣는다.
치매 환자가 채매 책을 읽는다. <알츠하이머의 종말>을 소리 내서 읽는다.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을 읽는다.
뇌 지도를 그려가면서 읽는다.
읽고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아니 읽으면서 잊어버린다. 그런데도 읽어낸다.
딱따구리가 주둥이를 연마해 '보석날창'으로 만들었듯이, 남편도 그런 것 같다.
남편도 시를 암송하고 책을 낭독하며 소리를 연마한다.
글 읽는 소리는 늘 안심이 된다.
엄마는 엄마의 일생을 기록으로 남겼다. 아버지도 뭐든지 메모해 두었다. 할아버지는 비가 오면 늘 소리 내서 고전을 읽었다. 빗소리와 글 읽는 소리. 할머니와 엄마의 두런두런 말소리. 어릴 때 그런 정겨운 소리를 들으며 낮잠을 자곤 했다. 긴 여름 낮. 다섯 시쯤 비가 개고 산 위로 물안개가 올라가면 엄마는 국수를 삶았다.
아침인 줄 알고 학교 갈 착각을 하던 그런 때가 있었구나...
그 아늑함이 그리운 걸까. 남편이 소리 내서 책을 읽을 때 가장 안심이 된다. 내가 이 생활을 버티는 것도 읽고 쓰는 것 때문일까? 그때의 아늑함이 지금 위로로 작용하는 것일까?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아직도 회자되는 시트콤 하이킥.
폭우 속 자동차 안 엔딩. 세경과 이선생은 영원한 기억이 되었나.
알츠하이머의 종말은 과연 올 것인가.
종말은 기억 너머의 시작이 될 수 있을까.
엄마도 이젠 없고
엄마 대신 한다던 남편마저 치매라니
김소월의 노래라도 부르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