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나는 스물셋이었다. 1989년 음력 1월, 세상의 온기가 아직 땅속에 묻혀 있던 싸늘한 겨울밤이었다. 방위 근무를 마치고 자정을 넘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집에 들어섰을 때, 낯선 정적이 온 집안을 짓누르고 있었다.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까지 모두 모인 그 풍경이 어떤 종말을 예고하고 있었음을, 술에 취한 나는 알아보지 못했다. 큰어머니는 나에게 몹시 취했으니 일단 방에 들어가 자라고 권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 새벽, 누군가 나를 깨웠을 때 아버지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나는 임종을 보지 못했다. 내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술이라는 마취제 뒤에 숨어 외면했던 것이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은 얼어붙었고, 차갑고 거친 아버지의 손을 잡았을 때, 나는 영원히 침묵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들이 얼음처럼 단단하게 굳어져 내 안의 죄의식을 보존했다. 나는 입관 때 비로소 통곡했지만, 그 눈물은 아버지가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었고, 내가 평생 짊어질 침묵의 무게에 대한 절망이었다. 아버지는 쉰아홉에 생을 마감하셨고, 나는 그 후 정확히 37년 동안 그 침묵의 징벌을 짊어지고 예순의 나이가 될 때까지 걸어왔다. 나는 아버지가 살지 못한 시간을 살고 있고, 이 사실은 때로 묵직한 죄책감으로 다가와 숨통을 조인다.
대학 입학 후 어느 주말, 친구가 사우나에 가자고 했다. "대학생 됐으니까 사우나 좀 가야지." 친구는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탈의실에서 옷을 벗는 친구의 몸이 보였다. 매끈하고 탄탄했다. 어제까지 고등학생이었던 우리는 이제 어른의 몸을 얻고 있었다.
사우나 안으로 들어섰다. 뜨거운 증기가 시야를 가렸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뜨거운 공기가 목구멍을 긁었다. 친구가 나무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살갗이 닿자 타는 냄새가 났다. 나도 옆에 앉으려는 순간, 건너편에 앉은 사람이 보였다. 아버지였다. 심장이 두 번 뛰었다. 쿵―, 쿵―. 한 번은 놀라서, 두 번째는 아버지의 몸을 보고.
내 기억 속 풍채 좋던 아버지는 사라지고, 가죽만 남은 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친구의 탄탄한 어깨너머로 보이는 아버지의 등은 마른 나뭇가지처럼 휘어져 있었다. 증기 속에서도 척추뼈가 하나하나 세어졌다. 첫 번째 뼈, 두 번째 뼈, 세 번째 뼈. 피부 아래로 뼈가 도드라졌고, 친구의 매끈한 등과 대조되어 아버지의 등은 더욱 앙상해 보였다. 아버지는 나를 보지 못했다. 아니, 못 본 척하셨는지도 모른다. 증기 속에서 고개를 숙이고 계셨다.
나는 친구 옆에 앉았다. 친구는 신이 나서 "야, 대학 생활 어때?"라고 물었고, 나는 "좋아"라고 대답했다. 그 웃음이 증기 속에서 금속처럼 울렸다. 그러나 내 시선은 계속 아버지에게 가 있었다. 증기는 비겁한 나를 숨겨주기에 충분할 만큼 자욱했다. 그 뿌연 장막 뒤에서 아버지는 앙상한 뼈로 홀로 계셨고, 나는 친구의 건강한 웃음소리 뒤로 숨어버렸다.
아버지가 일어섰다. 비틀거리며 벽을 짚고 나가셨다. 나는 뒤따라 나가야 했다. "아버지, 괜찮으세요?"라고 물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친구가 물었다. "너 아는 사람이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모르는 사람." 그 말을 뱉는 순간, 혀끝이 사우나의 열기보다 더 뜨겁게 데이는 것 같았다. '모르는 사람'이라는 다섯 글자가 증기 속에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내 이마에 낙인처럼 찍혔다. 벽을 짚고 나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그 짧은 문장에 얻어맞은 듯 휘청거렸다.
그날 사우나에서 나와, 나는 친구와 함께 삼겹살을 먹었다. 친구는 대학 이야기를 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주를 마셨다. 목구멍으로 소주가 넘어갈 때마다 아버지의 등뼈가 떠올랐다. 첫 번째 뼈, 두 번째 뼈, 세 번째 뼈. 나는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아버지 방문 앞에 섰다. 불이 꺼져 있었다. 노크를 하려다 손을 내렸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와 마주쳤다. 아버지는 "잘 갔다 왔나"라고 물으셨고, 나는 "네"라고 대답했다. 그것뿐이었다. 아버지는 어제 사우나에서 나를 봤을 것이다. 증기 속에서 친구와 웃고 있는 나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나를.
그 후로 나는 사우나에 갈 때마다 아버지를 찾았다. 증기 속 뿌연 실루엣들 사이에서 아버지의 등뼈를 찾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없었다. 아버지는 그날 이후 사우나에 다시 가지 않으셨다.
37년이 지났다. 나는 이제 친구와 사우나에 가지 않는다. 혼자 간다. 탈의실 거울 앞에 선다. 내 몸이 보인다. 어깨가 처지고, 배가 나오고, 피부가 늘어졌다. 거울 속 내 얼굴에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서려 있었다.
사우나 안으로 들어간다. 증기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몸이 보인다. 젊은 사람들도 있고, 늙은 사람들도 있다. 나는 구석에 앉아 내 등을 만져본다. 척추뼈가 손끝에 걸린다. 첫 번째 뼈, 두 번째 뼈, 세 번째 뼈. 내 손가락이 척추 마디를 하나씩 짚어 내려갈 때마다, 37년 전 사우나의 그 뜨겁고 비겁했던 증기가 다시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이제야 나는 아버지의 뼈를 세고 있다. 37년 전 세지 못한 아버지의 뼈를, 나는 이제 내 등에서 세고 있다. 나도 아버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날 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펼쳤다. 선생은 친구 K를 배신하고, 평생 그 죄의식을 침묵으로 부패시켰다. K가 죽은 후, 선생은 단 한 번도 사과하지 못했다. 늙어서야 편지에 고백했다. "나의 진짜 죄는 침묵이었다." 나는 책을 덮고 창밖을 보았다. 마당의 감나무가 어둠 속에 서 있었다. 아버지가 심으신 나무였다. 선생의 침묵이 K를 향한 배신이었다면, 나의 침묵은 아버지를 향한 평생의 배신이었다. 사우나에서 삼킨 그 한마디가 37년 동안 내 안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아버지는 말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이미 행동으로 가장 큰 사랑을 내게 고백하고 계셨다는 것을. 나의 학력고사 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시험장 방문이 그랬고, 더욱 깊이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누나의 결혼 날짜를 나의 시험이 끝난 후로 미루셨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는 내게 단 한 번도 "사랑한다" 말하지 않으셨지만, 당신의 가장 귀한 딸의 결혼마저 나의 입시라는 벽 뒤로 미루는 것으로 말없는 사랑을 표현하셨다. 나는 젊은 날 아버지의 무덤덤함에 실망했지만, 예순이 된 지금은 그 무덤덤한 "그래" 뒤에 얼마나 큰 기쁨과 희생이 숨어 있었는지 눈물로 깨닫는다.
오늘 밤 나는 37년이 훌쩍 넘은, 너무 늦어버린 고백을 편지로 쓴다. "아버지, 사랑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대학에 합격했을 때, 아버지는 '그래'라고만 하셨고 나는 실망했습니다. 이제 압니다. 그 무덤덤함 뒤에 얼마나 큰 기쁨이 숨어 있었는지." 그러나 펜이 멈췄다. 37년 동안 말하지 못한 것을, 편지로 쓴다고 해서 전해질까.
나는 빈 종이를 접어 마당으로 나갔다. 감나무 아래 무릎을 꿇고 흙을 팠다. 손톱 밑으로 차가운 흙이 파고들었다. 37년 전 아버지의 손을 잡았을 때처럼, 사우나에서 세지 못했던 아버지의 척추뼈를 떠올렸을 때처럼. 편지를 묻고 흙을 덮었다. 손바닥에 흙이 묻었다. 나는 손을 털지 않은 채 감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감나무는 40여 년 전 아버지가 심은 나무였다. 이제 내 키보다 높고, 가지마다 굳은살이 박였으며, 껍질이 갈라져 있었다. 그러나 가지 끝에는 주황빛 감이 열려 있었다. 그 거친 껍질 사이로 해마다 새싹이 돋는다. 말하지 못한 것들은 그렇게 매년 봄꽃이 된다. 그때, 감 하나가 떨어져 내 손에 닿았다. 아버지의 무덤덤한 "그래"처럼, 그 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감을 입에 넣었다. 껍질을 씹자 단맛이 퍼졌고, 속살을 씹자 떫은맛이 혀를 덮었다. 단맛과 떫은맛이 뒤섞였다. 37년의 맛이었다. 뜨거웠던 증기가 식어 흙냄새로 돌아왔다. 손에 묻은 흙을 바라보았다. 이 흙 아래 편지가 묻혀 있고, 그 편지 아래 아버지의 침묵이 묻혀 있으며, 그 침묵 아래 내 평생의 죄가 묻혀 있다.
나는 손을 털지 않았다. 흙이 마를 때까지, 그대로 서 있었다. 손끝에 사우나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뜨거운 증기가 목구멍을 긁던 열기, 세지 못한 아버지의 척추뼈, 삼키지 못한 말이 목구멍에서 맴돌던 무게. 37년이 지나서야, 나는 아버지에게 말을 건다. "아버지, 괜찮으셨나요."
바람이 감나무 가지를 흔들었다. 가지 끝에서 감 하나가 또 떨어졌다. 이번에는 흙 위에 닿아, 쿵, 하고 소리를 냈다. 아버지의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