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한 파묵 『순수 박물관』을 읽고
서랍을 연다. 낡은 목재의 마찰음이 고요한 방 안을 긁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가끔 이렇게 연다. 그 안에는 버려지지 못한 시간들이 엉겨 붙어 있다. 고장 난 시계, 색 바랜 인화지, 누군가의 온기가 증발한 손수건들. 사물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것들이 점유한 부피만큼의 기억을 견디고 있다. 이 물건들을 보다가, 나는 이스탄불의 한 박물관을 떠올렸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 『순수 박물관』의 주인공 케말은 떠나간 연인 퓌순의 흔적을 수집했다. 그가 모은 담배꽁초는 4,213개에 달했다. 세어진 것이다. 그는 퓌순의 집을 사들여 박물관으로 개조하고, 그녀가 만졌던 귀걸이와 소금 통을 유리장 안에 봉인했다. 케말에게 박물관은 구원인 동시에 스스로를 가둔 감옥이었다.
나의 서랍 또한 작은 박물관이다. 거기 1950년대의 어느 날이 박제되어 있다. 어머니의 유품 중에서 가져온 신혼여행 흑백 사진 한 장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다. 그런데 이 사진을 꺼낼 때마다, 나는 처음 보는 것 같은 감각을 느낀다. 두꺼운 비닐 사이에서 꺼낸 사진은 누렇게 곰삭았다. 테두리는 세월에 깎여 모서리가 둥글다. 사진 속 두 남녀는 경직된 자세로 서 있다. 스물두 살 여인의 눈매에는 낯선 도시로 시집가는 불안이 서려 있다. 한복 치마의 다림질 자국은 칼날처럼 선명하다. 딸을 보내며 외할머니가 눌러 적셨을 인두의 열기가 반세기 너머의 나에게까지 전달된다. 10년이 지나도 낯선 얼굴. 나는 어머니를 아직 다 보지 못했다.
사진 옆에는 어머니가 쓰시던 돋보기 안경이 놓여 있다. 플라스틱 테는 닳아서 하얗게 일어났다. 어머니는 이 유리알을 통해 매일 아침 세상을 읽었다. 신문을 펼치고, 돋보기를 들고, 창가 쪽으로 몸을 기울이던 자세. 그 자세가 몇 년이고 반복되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안경을 고쳐 쓰던 손의 각도까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케말은 담배꽁초의 개수를 세었지만, 나는 어머니가 이 안경 너머로 보냈을 시선의 횟수를 가늠하지 못한다. 수만 번의 아침이 이 도수 높은 유리알 속에 침전되어 있다. 케말은 소유하려 했고, 나는 확인하려 한다. 확인할수록 낯설어진다. 그 차이가 전부다.
사진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돌려주지 못하고, 안경은 그녀의 체온을 기억하지 않는다. 사물은 그 자리에 있다. 한때 어머니가 이것들을 만졌다는 것을, 그렇게 시위한다. 케말의 박물관도 실패했다. 그는 박물관을 완성한 뒤 고독하게 죽었고, 퓌순의 기억은 잠긴 채 낡아갔다. 그럼에도 나는 서랍을 열고, 사진을 꺼내고, 안경을 만진다. 불완전한 줄 알면서도.
서랍을 닫는다. 나무와 나무가 맞물리는 소리가 단호하다. 창밖의 감나무 아래, 혼자 마시는 차의 온도가 미지근하게 식어간다. 다시 어둠에 잠긴 사진과 안경은 그곳에서 낡아갈 것이다. 다음번에 서랍을 열면, 나는 또 처음 보는 것처럼 그 사진을 꺼낼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고, 오늘 믿기로 한다. 서랍을 닫은 뒤의 시간은 산 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