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 주머니 안에 있었다

귄터 그라스 『양철북』을 읽고

by 건강한 오후

1980년 5월, 교실에는 냄새가 고여 있었다. 분필 가루와 왁스, 담임의 담배 냄새였다. 선생님은 그날도 출석을 불렀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라디오에서는 "폭도들의 난동"이라고 했다. 신문에는 "불순분자들의 소요"라고 실렸다.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교과서를 펼쳤다. 광주에서 사람이 죽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그래도 우리는 출석에 답했다. "네."

그날 오후 나는 평소처럼 문제집을 풀었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지우개로 문질렀다. 창밖 운동장에서 누군가 공을 차는 소리가 들렸다. 저녁은 어머니가 끓여준 된장국이었다. 밥을 먹었다. 잠을 잤다. 그 "네" 한 글자가 사십오 년 뒤에도 내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올봄, 나는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을 읽었다. 세 살에 성장을 멈춘 소년 오스카의 이야기다. 오스카는 나치가 집권하고, 이웃의 유대인 가게가 불타고, 사람들이 히틀러 만세를 외치는 것을 양철북을 두드리며 지켜본다. 그는 스스로 계단에서 몸을 던진다. 저런 어른들의 세계에 편입되느니, 차라리 난쟁이로 남겠다고. 전쟁이 끝나자 독일인들은 말했다. "우리는 몰랐다." 그러나 오스카는 기억하고 있다. 유리창이 깨지던 밤을, 이웃이 사라지던 아침을. 그는 난쟁이로 남음으로써, 공모하지 않는 유일한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책을 읽다가 손을 멈춘 것은, 오스카가 이웃의 가게가 불타는 것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대목이었다. 그는 북을 들고 있었지만 두드리지 않았다. 그 장면에서 나는 다른 복도를 떠올렸다.


2016년 가을이었다. 협력업체 직원 하나가 출입증을 반납하던 날, 나는 복도에서 그와 마주쳤다. 그의 손에는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다. 두툼하지 않았다. 몇 년을 일한 사람의 마지막 서류치고는, 얇았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나는 먼저 시선을 내렸다. 회의실에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나도 포함해서. 한 마디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도로 내려갔다. 이게 말이 되나. 그 문장을 나는 삼켰다. 삼키는 데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 1초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손은 바지 주머니 안에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퇴근 버스를 탔다. 창밖으로 가로등이 지나갔다. 핸드폰을 꺼내 뉴스를 봤다. 그 복도는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지워졌다. 집에 돌아와 밥을 먹었다. 텔레비전 소리가 배경처럼 흘렀다. 침묵은 결단이 아니었다. 그냥 — 멈춰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멈춰 있는 것은, 쉬웠다.


그라스는 2006년에 고백했다. 열일곱 살에 나치 친위대에 복무했다는 것을. 『양철북』을 쓴 작가가, 오스카를 창조한 사람이, 육십 년간 침묵했다. 어떤 이들은 그를 위선자라 불렀다. 나는 달리 읽었다. "우리는 몰랐다"는 말의 구조를.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아는 쪽으로 걸어가지 않기로 한 것이다. 1980년의 교실에서도, 2016년의 복도에서도, 나는 그 선택을 했다. 그라스의 육십 년이 나의 이십오 년과 다르지 않다.

나는 침묵으로 자리를 보존했다. 월급은 통장에 꽂혔고, 일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팀장은 나를 믿음직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웃었다. 그런 줄 알면서도, 잃고 싶지 않았다. 오스카는 계단에서 몸을 던졌다. 나는 던지지 않았다. 그 차이가 전부다.


은퇴 후 혼자 앉아 이 글을 쓴다. 창밖은 봄이다. 2016년의 그 사람이 지금 어디 있는지, 나는 모른다. 이 글이 그에게 닿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쓴다. 쓰지 않으면, 나 역시 결국 "몰랐다"고 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스카의 북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다. 둥둥둥. 그것이 고발인지 위로인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