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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너는 없어

너에겐 닿지 않을, 조용한 복수

by 감성반점


며칠 전,
20년 전에 유행했던 애절한 발라드 곡을 듣다가
문득 떠오른 친구의 이별 이야기.
그 감정에 마음을 실어 만들어본 가사입니다.

나의 30세 이전 주요 장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친구.

그 친구는 미치도록(이보다 더 어울리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사랑했던 여자친구와의 이별로
하루하루를 술에 의지해 살아내고 있었죠.

뒤늦게 들은 얘기지만,
혼술이 흔하지 않았던 그 시절,
친구 집 근처 대폿집 이모가
오죽했으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총각은 무슨 사연이 있길래
맨날 깡술을 그렇게 마시노?
하늘이 무너져도 살아갈 길은 있데이. 힘내소."

그 연애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지켜본 저는 안타까운 마음에
친구의 헤어진 여자친구 집 전화번호를
몇 번이나 눌렀는지 모릅니다.
(그땐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었죠.)
물론, 그녀는 받지 않았고요.

그 번호의 마지막 네 자리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2965

965가 '구르고'로 읽혀서 기억에 남는지도.


정말 친구는, 구르고 싶을 만큼
실연의 고통이 컸던 겁니다.

결국 저는 친구와 함께
그녀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문을 두드리자 그녀의 오빠가 나왔고,
그는 친구를 아는 눈치였습니다.

"ㅇㅇ이는 만나지 않겠다고 하니,
나랑 잠깐 얘기합시다."

놀이터에서 두 사람은 한참을 얘기했고,
잠시 후 친구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이젠 됐다. 그만 가자."

그 말 한마디는
미련의 끈을 스스로 잘라내는

가위 같았습니다.

저는 그때,
친구만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이 화가 났고,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아가는 것 같아
괜히 더 미웠습니다.

물론 지금 그 친구는
'2965'도 잊은 채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때의 감정으로 돌아가
이 가사로 소심한 복수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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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가는 모든 걸 직접 경험하고 가사를 쓰는 건가?
그렇다면 도대체 몇 번의 사랑과 이별을 해봤다는 거야?'
이런 어리석은 의문을 가졌던 게 사실입니다.

가사를 몇 번 써보면서 그 의문이 풀렸어요.


간접경험이나 상상으로도 얼마든지
감정의 극단을 유영할 수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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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젠, 너는 없어

작사: 감성반점

[Verse 1]
넌 내가 어떤지
전혀 관심이 없어
이젠 네 세상엔
내가 없나 봐

가끔 그게 화가 나
어떻게 날 이렇게도
쉽게 지울 수 있어?

[Pre-Chorus]
난 한참이나
너에게 머물렀는데
너는 언제부터
내 소식조차 필요 없었을까

[Chorus]
넌 너의 세상에서 살아
나도 너 없는 어둠에서 나가
기억 속 널 지워낼게
이젠 너 아닌 나를 위해

네가 떠난 그 자리에
흉터처럼 남은 상처를
조용히 감싸 안아 준
그를 위해

[Verse 2]
둘이 자주 걷던 골목
난 다른 손을 잡고 걸어

연어회 대신 어묵탕
좋은데이 대신
참이슬을 마셔

[Bridge]
간판 속 네 이름도
이젠 그냥 스쳐 지나가

너에게 쏟던 마음
이젠 나를 위해 쓸게

잊으려 애쓰는 게 아니야
살기 위해 멀어진 거야

[Final Chorus]
사랑은 끝났고
나만 여기 남겨졌어

미칠 듯 아팠던 겨울
봄바람이 감싸 안아줘

심해 같은 어둠을
다시 와 준 빛으로
내 세상은 다시 따스해
난 그때보다 더 행복해

[Outro]
네가 뭘 하든 상관없어
잘 살라는 말도 안 해

이 서운함조차도
너에겐 닿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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