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을 위한 첫걸음
미국에 처음 도착해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1. 집 구하기, 2. 차 구하기, 3. 운전면허 취득하기, 4. 은행계좌 개설하기, 5. 핸드폰 개통하기 중에서 골라보자. 내 생각에는 4. 은행계좌 개설하기가 아닐까 한다. 만약 한국에서 로밍이나 유심 구입으로 통화가 가능하다면 말이다. 장기 거주를 생각하고 해외에 나가게 된다면 꽤 넉넉한 돈을 현금으로 가지고 나왔을 것이다. 우리도 그랬다. 상당한 돈을 호텔에 놓고 다니는 것은 불안하고, 가지고 다니는 건 더 불안하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먼저 은행계좌를 열러 BoA (Bank of America)로 향했다.
현금 뭉치를 들고 조마조마하면서(미국의 강도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울 지경이다) BoA에 도착하니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역시 미국 답게 은행 문 앞에는 경찰이 배치되어 있다. 다행히 은행 직원은 우리에게 큰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별도의 공간을 배정해 줘 계좌 개설에 소요되는 상당한 시간을 안온하게 보낼 수 있게 해 주었으며, 커피나 차 같은 음료는 물론이고 간단한 과자도 제공해 주었다. 지루한 걸 참을 수 없는 2살 아이에게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펜과 종이까지 가져다주는 배려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때는 '아직 캘리포니아는 친절한 시민들이 남아 있나 보구나'라고만 생각하고 기분 좋게 나왔지만...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역시 돈 가진 사람한테는 철저한 서비스 정신을 발휘하는구나'라고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그렇다. 미국은 정말로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다. 돈이 없으면 디즈니랜드에서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고, 돈이 있으면 디즈니랜드 안에 위치한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나와서 놀이기구를 바로 탈 수 있다. 잊지 말자. 은행이 당신에게 친절하다면, 그건 당신이 은행에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각 주마다, 그리고 지역마다 현지은행들이 있을 수 있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웰스파고(Wells Fargo)가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역시 가장 큰 은행은 BoA, 즉 뱅크 오브 아메리카와 체이스(Chase)가 있다. 이들 중에서 유학온 외국인에게 좀 더 친절한 은행은 BoA라고 생각한다. Chase의 경우 신용카드를 개설하는데 SSN (Social Security Number, 사회보장번호) 등을 요구하지만, BoA의 경우 조금 더 유연하게 대응해 준다. 우리 역시도 계좌 개설과 신용카드 발급을 동시에 할 수 있어,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잘 사용했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이유 중 하나가 말 그대로 "신용(credit)"을 쌓기 위함도 있는데, 외국인의 경우 신용카드를 사용해도 신용이 쌓이진 않는 것 같다).
은행에 돈도 넣어뒀겠다, 부족한 돈은 계좌이체를 통해 한국에서 보낼 수도 있겠다, 자신만만하게 집을 구하기 위해 데이비스를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런데... 혹시 연말에 미국에 여행을 가본 경험이 있는가? 특히 12월에는 월초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도시를 가득 메운다. 사람들은 흥겨운 노래를 부르면서 자기 집에 갖가지 다양한 장식들을 설치하곤 한다. 특별히 신경 써서 꾸민 집들은 많은 사람들의 방문을 받으며, 지역 커뮤니티에서 명성을 떨치게 된다. 미국 생존기를 찍다가 웬 크리스마스 이야기냐고? 그건 우리가 12월 12일에 미국 땅에 떨어져 크리스마스 연휴를 직격으로 맞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미리 인터넷과 Willow, Realter 등을 통해 알아본 바로는 South Davis에 한인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었고, North Davis에는 멋들어진 타운하우스가 있어 거주하기에 나쁘지 않아 보았다. 하지만 실제로 도시를 돌아다녀보니 인터넷에서 찾아본 것과 또 느낌이 다르다. South Davis의 경우, 동서로 가르는 Route 80 (80번 주간 고속도로)가 있어 지저분한 느낌을 받았고, 자동차 수리업체, 판매업체, 렌털업체 등이 밀집되어 있을 뿐 아니라 낡은 호텔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부 지역은 아파트를 새로 지어 일견 깨끗해 보였으나, 주변 주유소를 보면 대마초(weed) 냄새가 진동하고 있어 2살 아이를 데리고 살 만한 여건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한편 North Davis의 타운하우스, 정확히 말하면 와일드호스 지역과 새롭게 개발한 Cannery 지역이 마음에 들었는데, 두 군데 모두 월세로 나온 집이 없었을 뿐 아니라 관리사무소(management office)가 닫혀 있었다. 역시 크리스마스 연휴... 이럴까 봐 남편에게 좀 일찍 미국에 나가자고 했는데 회사 일이 바쁘다고 12월 중순에서야 출국할 수 있었던 남의 편이다, 정말.
Central Davis의 아래쪽에 위치한 Downtown에 상가들이 밀집해 있는데, 아무래도 유동인구가 많다 보니 부랑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비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나와서 구걸하는 부랑자들을 보니 Central Davis 쪽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간 West Davis. Highway 113 (113번 주도)가 남북으로 지나가고 있어 인터넷으로 볼 때에는 너무 고립되어 보였는데, 실제로 방문해 보니 오히려 번잡함은 없으면서도 113번 주도에 막혀 부랑자가 오기 힘들다는 장점이 있었다. 지역 또한 잘 가꾸어져 있었고, 대부분 가족 단위로 거주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남편이 학교를 등하교하는데 가깝다는 점 또한 마음에 들었다. Central Davis, Davis Manor 등 학교에 인접한 다른 구역의 경우 아무래도 Downtown과 맞닿아 있는 만큼 부랑자들도 보이고 집들도 지저분한 것이 눈에 보였던 것과 대비되었다.
하지만 당초 우리가 원했던 single house와 townhouse는 좋은 매물이 없었다. Willow에 단 하나 올라와있던 single house 매물은 Central Davis에 있었다. 기존 4R2B(방이 4개, 화장실이 2개)인 single house를 반으로 나눠 townhouse와 같은 느낌으로 월세를 내놓았는데, 우리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라 아쉽게도 single house 거주에 대한 열망을 내려놓아야 했다 (single house에 살면서 잔디를 깎는 등의 잡무가 많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여우의 신포도 같지만 사실이다!). West Davis에 나온 월세 매물은 2개, Portage Bay apartment와 스톤게이트 옆 Lakeshore aparment 뿐이었다. Lakeshore aparment는 호수를 옆에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컨트리클럽도 인접해 있어 테니스나 수영을 하기에 좋아 보였지만, 거주민들의 상태나 아파트 관리 수준 등이 Portage Bay apartment보다 부족해 보였다. 반면 Portage Bay apartment에는 우리와 같이 유학온 한국인 가족이 3~4세대 정도 거주하고 있다는 정보를 manager를 통해 들었는데, 그 까다로운 한국인들이 선택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었다. 또한 아파트가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었다는 점도 가점 요인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년 반 동안 머무를 우리의 보금자리를 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다른 집으로의 이사를 꿈꾸게 된다.
미국의 주거 형태는 크게 single house, townhouse, condomedium, apartment로 나뉜다.
- Single House (싱글 하우스): 독립적인 주택으로, 개인적인 공간과 마당이 있는 형태.
- Townhouse (타운하우스): 벽을 공유하는 여러 층의 집, 좁은 공간에 여러 가구가 살지만 독립적 구조.
- Condominium (콘도): 개별 소유의 유닛이 있는 공동 주택, 공용 공간은 관리 회사에서 관리.
- Apartment (아파트): 여러 가구가 함께 사는 공동 주택, 대부분 임대 형태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