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미국 땅 밟자마자 첫 타격

모든 것이 처음인, 처음 같은, 처음 아닌

by 유지니안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다(Everybody has a plan until they get hit). 나도 그랬다. 학생시절 일 년 간의 학창시절 경험만 생각하고 너무 자신만만했던 것 같다. 가족이 함께 나간다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SE-47d24c2b-3c9b-4238-92da-661fe5d8f5d7.jpg?type=w1 코로나19로 인해 이용객이 없어 널널했다


인천공항을 떠나 샌프란시스코 상공에 다다랐을 때, 15년 전의 단상이 떠올라 왠지 모를 먹먹함이 다가왔다. 그것도 잠시, 입국 심사부터 과거와 다른 싸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앞서 가던 한 여성이 Secondary room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친절했던, 누구에게나 환영을 보내던 캘리포니아는 더 이상 없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약간의 긴장 속에서 입국 심사가 시작되었는데, 다행히 한국에 직장이 있고, 학업을 위해 가족이 함께 와서 그런지 까다롭게 심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Why are you here?" "Where will you be staying?" 정도의 간단한 질문과 답변이 오갔고, 곧이어 "Enjoy your stay"라며 웃으며 보내주었다.


여자 혼자 입국하는 경우에는 입국 심사가 훨씬 더 까다롭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영어가 서툴거나 체류 목적이 불분명하면 질문이 길어지기도 하고, 가끔은 Secondary room으로 데려가 추가 심사를 받기도 한다.




다소 긴장되던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서, 만 2살 아이를 들쳐업고 이민가방 6개와 캐리어 2개를 바리바리 싼 채로 게이트를 통과한 순간부터 생존적 문제가 다가왔다. 이향만리에서 핸드폰이 먹통이 되어버리면서, 디지털 미아가 되어버린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를 달래면서,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수많은 짐들을 깔고 앉아서 핸드폰 유심을 다시 설치도 해보고, 설정에서 네트워크 재설정도 해보고, 전원을 껐다 켜보기도 했지만 도저히 해결되지 않았다. 미리 약속해 둔 Davis Airporter를 어디서 타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야속하게 시간은 자꾸 흐르고 있었다. 우리 부부 모두 등골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점점 호흡은 가빠져오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강박관념까지 생길 것 같던 그때. 돌이켜보면 그때는 정말 '멘붕'이라는 단어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는 심정이었다. 그나마 공항의 무료 와이파이가 한 줄기 빛이 되어 주었지만, 그마저도 속도가 너무 느리고 자꾸 끊겼다. 그러던 그때, 갑자기 핸드폰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Davis airporter에 전화해서 탑승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고, 우리 가족은 무사히 Davis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정말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비행기가 너무 "일찍" 도착해서 생긴 일이었다. 행정처리를 담당한 우리 남편은 여유 없이 딱 맞는 (perfect fit) 것을 좋아했고, 때문에 비행기 도착 시간에 "딱 맞춰" 유심이 개통될 수 있도록 신청했던 것이다. 예정보다 일찍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우리는, 그렇게 1시간 동안 고립된 섬에서 구조만을 기다리는 디지털 미아가 되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데이비스까지 약 2시간 거리, 어떻게 가야 할지 고민했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방법은 Hertz나 Enterprise에서 차를 빌려서 직접 운전해서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금세 기각되고 말았는데, 일단 짐이 너무 많았고, 만 2살 아이도 있어 운전까지 신경 쓰다가 큰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다음 생각한 것은 Uber나 Lyft 같은 공유택시. 미리 예약할 필요도 없고, 그 자리에서 바로 잡아서 출발하면 되기 때문에 편리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짐이 적었다면 말이다. 이민가방 6개에 캐리어 2개를 넣기에 공유택시는 너무 작았다. 결국 선택할 수 있던 것은 Airporter. 미니밴으로 오기 때문에 짐을 다 싣을 수 있었고, 직접 운전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편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선택이 완전히 편했던 것은 아니다. 적어도 "공항에서 정확히 어디서 탑승하는지"는 사전에 꼭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Ground Transportation으로 가면 된다는 안내만 받고 출발했는데,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출구가 여러 군데에 있고, 실제 탑승 위치에도 Davis Airporter라는 표지판도 없었다. 기사 아저씨가 종이에 이름을 들고 서있지도 않았고, 번호표 같은 것도 없었다. '디지털 미아에 이어 실체적 미아까지 되는구나'하는 절망감이 온몸을 감싸는 순간, 공항을 거의 한 바퀴 돌다시피 하면서 Airporter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Davis에 미리 예약해 둔 호텔(Residence Inn Sacramento Davis)로 이동하는 길, 우리 모두 너무... 너무 지쳐버렸다. 한국에서 새벽부터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공항에서 기다리다가 비행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니 핸드폰은 먹통에, 짐은 한가득, 만 2살 아이는 계속 칭얼대고, Airporter를 찾느라 헤매고... 그 와중에 우리 눈에 들어왔던 건, 농장과 들판, 그리고 풀을 뜯어먹고 있는 소떼. 시각적 인식과 함께 찾아오는 강렬한 시골 소똥 냄새까지. 내가 꿈꾸던 캘리포니아는 사시사철 시원한 바람에 고층 빌딩들, 햇살 가득한 해변 도시, 주말마다 식당에서 브런치를 먹고 아이와 남편은 해안가에서 모래성을 만드는 곳이었는데. 현실은 "리틀 텍사스"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 와중에 겨울이라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나는 갑자기 우리의 여정이 더없이 두려워졌다. 현실은 브런치가 아니라 정글 생존기였다.

Airporter를 타고 Davis로 이동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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