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새크라멘토 과학관 MOSAC, 70달러의 가치

비싼 입장료보다 소중했던 아이의 수만 가지 물음표

by 유지니안

"우리 이번 주말엔 새크라멘토 과학관 가자."

2월의 어느 금요일 저녁, 이번 주말을 무얼 하나 고민하는 남편에게 말했다.

MOSAC(Museum of Science and Curiosity). 2021년 11월에 오픈했다는 따끈따끈한 신상 과학관이다. 그동안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가게 됐다.


토요일 아침, 데이비스에서 새크라멘토까지 I-80을 타고 20분. 고속도로에서 보이는 커다란 회색 돔이 눈에 띄었다. 1912년에 지어진 발전소를 개조했다는데, 오래된 벽돌 건물과 현대적인 돔의 조합이 독특했다.

주차비 6달러를 키오스크에서 내고(차량 번호판 입력해야 함), 입구로 향했다. 입장료는 어른 $19.95, 아이 $14.95. 주차비까지 합치니 거의 70달러. 코스트코에서 일주일 장 볼 돈이었다.

"비싸네..."

남편이 중얼거렸지만, 이미 온라인으로 예약한 터라 되돌릴 수 없었다.



들어가자마자 엘리가 달려간 곳은 "Design Callenge". 이 곳에서는 여러가지 블록들이 있었는데, 왼쪽에는 파란색 블록들이 수없이 많이 놓여져 있었고, 가운데에는 자석으로 붙이는 블록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작고 긴 나무블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나무블록을 쌓아 탑을 만들고 싶던 모양이지만, 역시 엘리는 파란색 블록들로 향했다. 거기에는 이미 블록으로 성을 쌓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엘리도 자연스럽게 그 무리에 합류했다.


파란색 블록은 가벼운 스펀지 재질이라 아이들이 집채만 한 성벽을 쌓아도 안전해 보였다. 엘리는 다른 아이들이 하는 걸 어깨너머로 보더니, 금세 자기도 벽돌을 하나둘 옮기기 시작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몸짓과 눈빛으로 소통하며 거대한 요새를 만들어나갔다.

“Here!”

더 큰 아이가 자기가 들고 있던 블록을 엘리에게 건네주기도 했다. 그 작은 사회 속에서 제 역할을 찾아가는 모습이 대견했다.


그 사이 남편은 나무블록을 가지고 도미노를 만들고 있었다. 30분 넘게 공들여 세운 나무 도미노가 드디어 마지막 조각을 남겨두고 있었다. 나도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데, 어디선가 달려온 작은 아이가 남편의 대작을 그대로 통과하며 와르르 무너뜨리고 말았다.

남편의 허탈한 표정과 아이의 해맑은 얼굴이 교차하는 순간, 우리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여기는 아이들의 공간이지, 아빠의 작품 활동 공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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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우리를 반긴 건 'Water Challenge' 섹션의 'Shaping the Flow'였다. 커다란 테이블에는 모래가 가득하게 쌓여 있었고, 천장의 프로젝터가 모래 위를 파란색과 초록색, 갈색, 노란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니, 모래를 높이 쌓으면 갈색과 초록색(산), 낮게 파면 파란색(물)으로 색이 변하는 것 같았다.

"Look! You're making mountains!"

옆에 있던 직원이 다가와 설명했다.

"And if you dig here... See? Now it's a lake!"

엘리는 신이 나서 모래를 이리저리 옮기기 시작했다. 산을 만들고, 강을 파고, 호수를 만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돋보기 모형을 가져오더니 엘리의 산 위에 가져다댔다. 그러자 갑자기 산 위에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닌가!

"엄마! 아빠가 내 산 다 무너뜨렸어!"

엘리가 만든 산이 결국 남편이 만든 폭우에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See how water flows? From high to low!"

직원이 그걸 보더니 설명을 이어갔다. 캘리포니아의 물이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시작해 센트럴 밸리로 흐른다는 이야기, 그래서 댐과 수로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직원은 모래와 함께 있던 나무 블럭을 들어 산과 산 사이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물이 계곡 안에 갇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찌나 신기하던지, 남편도 엘리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모래놀이에 열중이었다.

"엘리도 남편 닮아서 이과인가 보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저 멀리 떨어진 의자에 앉아 한동안 휴식을 취했다.




2층으로 올라가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놀이터였다. 엘리가 눈을 반짝이면서 달려갔다.

"와 이게 뭐지? 1층에도 블럭이 있었는데, 여기도 블럭이 있어!"

처음에는 블럭을 가지고 놀다가 금새 관심이 작은 공으로 향한다. 다른 친구들이 파이프를 이리저리 이어서 공이 파이프를 따라 이동하게 만드는 것을 본 엘리. 일단 분홍색 공들을 모으기 시작하는데,

"It's mine!"

다른 아이와 작은 다툼이 있었다. 엘리는 금새 양보했고, 다툼은 바로 진정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이 못내 불안했다.

'혹시 예전에 내가 페이지한테 장난감을 양보하라고 했던 게 아직도 영향이 있는걸까?'

엘리와 페이지가 멀어지기 전, 나는 엘리에게 장난감을 서로 share하고 양보하라고 가르쳤었다. 엘리는 그 당시 내 말을 듣고 울음을 참으며 아끼는 장난감을 건네주곤 했다.

친구와 잘 지내게 하려는 내 가르침이, 혹시 아이에게 '네 감정보다 타인의 요구가 우선'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준 것은 아닐까. 착한 아이가 되라는 말이, 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아이로 만든 것은 아닐까. 짧은 순간 수만 가지 후회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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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가 지겨워진 엘리를 데리고 간 곳은 'Design Challenge'. 공간은 뭔가 정신없어 보였다. 테이블마다 천과 막대기, 차와 바퀴 등이 잔뜩 쌓여 있었다.

"Today's challenge: Making wind-powered car!"

화이트보드에 오늘의 미션이 적혀 있었다.


남편의 눈이 반짝였다. 공대 출신의 피가 끓는 모양이었다. 그는 곧장 여러 모양의 바퀴를 비교하고, 어떻게 하면 돛이 바람을 가장 효율적으로 받아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설계에 들어갔다.

반면 엘리는 차의 성능보다는 디자인에 집중했다. 천도 크기보다는 모양에 좀더 집중하고, 바퀴도 자신만의 기준으로 골랐다.

자동차 만들기에 집중하는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는 근처 의자에 앉아 잠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았다. 오랜만에 육아에서 벗어난 짧은 나만의 시간이었다.


드디어 완성된 차를 바람이 나오는 발사대에 올려놓았다.

남편이 만든 날렵한 차는 제법 멀리 날아갔지만, 균형이 좀 안맞았는지 차가 서서히 왼쪽으로 이동하더니 결국 멈추고 말았다.

엘리가 만든 '예쁜' 차는 출발과 동시에 멈추고 말았다. 엘리가 시무룩해지자 남편이 말했다.

"엘리야, 괜찮아. 일단 너무 이쁘게 잘 만들었어. 아빠랑 함께 더 멀리 갈 수 있게 만들어 볼까?"

그렇게 둘은 한참을 더 자동차와 씨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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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향한 곳은 Destination Space. 전시관에 들어서자 어두운 공간에 반짝이는 행성 모형들이 우리를 맞았다. 마치 우주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엘리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을 재현한 조종석에 앉아 우주인이 된 것처럼 온갖 버튼을 눌러댔다. 남편은 지구 밖에서 식량을 재배하는 기술이나 물 재활용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한참 동안 흥미롭게 읽어보았다.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 이후 우주 탐사가 어디까지 왔는지, 미래에는 어떤 기술이 우리를 기다리는지. 잠시나마 로켓에 우리 가족의 자리를 예약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별을 향해 나아갈 준비가 되었냐는 전시관의 마지막 문구가 가슴에 와닿았다.


하지만 엘리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로켓 발사(Rocket Launch)' 코너였다.

투명한 발사관 두 개가 천장을 향해 솟아 있었고, 근처 테이블에는 로켓 몸체와 함께 바구니 가득 담긴 각양각색의 날개들이 놓여 있었다.

날개는 정삼각형, 길쭉한 삼각형, 동그라미, 하트, 사각형 등 다양한 모양과 크기로 준비되어 있었고, 로켓 몸체와 날개에는 벨크로(찍찍이)가 붙어 있어 쉽게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었다.


"아빠가 제일 높이 올라가는 로켓 만들어줄게!" 남편은 공대생답게 가장 멀리 날아갈 조합을 찾겠다며, 긴 삼각형 날개와 사각형 날개를 번갈아 붙여보며 무게중심을 따지기 시작했다.

반면 엘리는 성능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직 하트 모양 날개와 동그란 날개를 알록달록하게 붙여 '공주님 로켓'을 만드는 데에만 열중했다.


드디어 발사대 앞. 남편이 만든 날렵한 로켓은 발판을 힘껏 밟자 '슝' 소리를 내며 투명한 발사관을 벗어나 천장을 찍고 튕겨 내려왔다. 하지만 엘리가 만든 '공주님 로켓'은 발사되자마자 균형을 잃고 빙글 돌며 바닥으로 곤두박질.

엘리가 실망한 표정을 짓자, 직원이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It's a beautiful spin! That's how helicopters work!"

그 한마디에 엘리는 금세 기분이 풀려 다시 새로운 모양의 날개를 고르러 달려갔다.


전시관을 나서기 전에 발견한 건 '닐 암스트롱 되어보기' 포토존이었다. 달 표면에 서 있는 우주인 모형의 헬멧 바이저 부분에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다.

카메라 앞에 서자, 내 얼굴이 닐 암스트롱의 우주복 선바이저에 떠올랐다.

"엄마, 우주인이다!"

엘리가 자기 차례가 되자 신이 나서 화면 속 자신에게 손을 흔들었다. 낯선 행성에 첫발을 내디딘 탐험가처럼, 헬멧 속에서 반짝이는 아이의 눈. 그 작은 얼굴 위로 무한한 우주가 겹쳐 보였다.

어쩌면 모든 아이들은 저마다의 우주를 탐험하는 작은 닐 암스트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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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t show starts in 10 minutes!"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벌써 플라네타리움(Planetarium) 쇼 타임이 다가왔다. 줄을 서서 들어가자 100석 규모의 돔 시어터가 눈앞에 펼쳐졌다.

쇼가 시작하기 전, 불빛이 사라지자 엘리가 불안해했다. 하지만 곧 돔 천장에 노을이 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어둠과 함께 수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 불안은 곧 탄성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나레이션이 흘러나왔다.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신 것은 바로 오늘 밤 새크라멘토의 하늘입니다. 저기 북쪽 하늘에 국자 모양으로 빛나는 별들, 북두칠성이 보이시나요?"

화면은 순식간에 우리를 땅에서 쏘아 올렸다. 새크라멘토의 야경이 발밑으로 멀어지고, 우리는 순식간에 지구 궤도에 떠 있었다.

"That's Mars!"

화면이 붉은 행성으로 가득 찼다. 하얀 얼음으로 뒤덮인 극관과 거대한 협곡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That's Jupiter! The biggest planet!"

나레이션과 함께 거대한 목성이 다가왔다. 지구보다도 크다는 거대한 붉은 점, 대적점의 소용돌이를 보자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쇼의 하이라이트는 토성이었다. 우리는 마치 우주선이 된 것처럼, 얼음과 암석으로 이루어진 토성의 고리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했다.

엘리는 어느새 진짜로 우주선이 움직이는 듯 몸을 이리저리 기울이며 까르르 웃었다.




MOSAC을 나온 시간은 오후 5시. 점심은 미리 싸간 샌드위치로 간단하게 때우고 거의 5시간 가까이 있었는데, 다 보지 못했다. 'Powering Change'도 가보고 싶었고, 'Nature Detective'도 제대로 못 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백미러로 본 엘리는 카시트에서 곯아떨어져 있었다. 과학이 뭔지, 뭘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재미있었나 보다.


그날 저녁, 엘리가 목욕하면서 물었다.

"엄마, 우리 집 물은 어디서 와?"

"음... 저수지에서?"

"저수지는?"

"산에서 눈 녹은 물?"

"그럼 산은?"

MOSAC이 뭔가 스위치를 켜놓은 건 아닐까. 그날 이후 엘리의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70달러짜리 입장료로 우리가 산 것은 과학 지식이 아니라, 아이의 세상에 던져진 수만 개의 물음표였다. 낯선 땅에서 나는 아이에게 완벽한 정답을 알려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정답을 척척 알려주는 엄마보다,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함께 고개를 갸웃거려주는 엄마가 되어주고 싶으니까. 이 복잡한 세상의 원리를, 우리는 그렇게 함께 배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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