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블루베리 머핀에 담긴 미국의 정신

Morgan's California 농장에서 배운 진짜 용기에 대하여

by 유지니안

한국의 6월이 참외의 계절이라면, 이곳 데이비스의 6월은 블루베리의 계절이었다.

DPNS 친구들과 함께 블루베리를 따러 가는 playdate 날이 왔다. 우리가 향한 곳은 Morgan's California 농장. 지난 겨울, 떨어진 오렌지를 주우러 갔던 바로 그곳이었다.

다들 그렇듯 약속 장소까지는 각자 차를 몰고 갔다. 농장으로 향하는 길,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과수원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도시에서만 살았던 나와 엘리가 농장에서 직접 블루베리를 따게 되다니, 이것도 참 특별한 경험이네.'




도착한 Morgan's California는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다양한 과일들이 계절마다 다르게 재배되고 있었다.

농장 주인 할아버지가 낡은 트럭으로 우리를 언덕 위로 실어 날랐다. 트럭이 덜컹거릴 때마다 아이들은 까르르 웃었고, 나는 엘리가 떨어질까 봐 꼭 붙잡고 있었다. 한국에서라면 안전 문제로 절대 못 탈 트럭이었지만, 여기선 이것도 농장 체험의 일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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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올라온 언덕 위에는 정말 끝없는 블루베리 나무들이 있었다. 6월의 캘리포니아 내륙 지방답게 기온은 이미 섭씨 40도를 향해 치솟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챙 넓은 모자가 있었고, 무엇보다 수확의 기쁨이 있었다.

"자, 이렇게 따는 거야."

Katy 할머니가 시범을 보였다. 70대의 그녀의 손놀림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탁, 탁, 탁. 마치 피아노를 치듯 리드미컬하게 블루베리가 바구니로 떨어졌다.

"우와, Katy는 정말 전문가네요!"

"하하, 나는 몬타나 농장에서 자란 진정한 Farm Girl이야. 우리 엄마는 혼자서 100에이커 농장을 일구셨지."

그녀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마치 "작은 아씨들"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거친 상황에서 살아남은 강인한 여인들의 이야기.

한편, 엘리와 나는 한 알 한 알 조심스럽게 따고 있었다. 엘리는 따는 것보다 먹는 것이 더 많았고, 나는 멀쩡한 것과 무른 것을 구별하느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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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쯤 지났을까. 우리는 무게를 재러 카운터로 향했다. 아이들은 농장의 닭과 강아지를 쫓아다니며 놀고 있었다. 전형적인 백인 가족이 운영하는 농장의 오후 풍경이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농장 직원이 아이들에게 쿠키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동물들에게 먹이를 줄 수 있는 작은 서비스였다.

"자, 여기 쿠키야. 닭한테 줘봐."

금발의 아이, 주근깨 있는 아이, 곱슬머리 아이... 하나둘씩 쿠키를 받았다. 그런데 우리 차례가 되자 직원은 그냥 지나쳤다. 마치 우리가 투명인간인 것처럼.


'아, 또구나.'

나는 움츠러들었다. 엘리는 다른 아이들이 쿠키를 받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굳이 따지고 싶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지나가길 바랐다.

그때였다.

"Excuse me! 왜 이 아이에게는 쿠키를 안 주시죠?"

Katy의 목소리가 울렸다. 70대의 작은 체구에서 나온 당당한 목소리였다.

"아, 죄송합니다. 못 봤네요. 같은 그룹인 줄 몰랐어요."

여주인이 얼버무리며 쿠키를 내밀었다. 하지만 나와 엘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이곳의 현실을.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내가 만약 Katy 할머니의 입장이었다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남의 일에, 그것도 인종 문제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어떻게 이런 멋진, 그리고 실천하는 이성이 있을 수 있을까?




매주 금요일, Katy 할머니와 함께하는 쿠킹 클래스. 블루베리 농장을 다녀온 그 주 금요일은 우리 집에서 한국 음식을 소개하는 날이었다. 오늘의 메뉴는 떡볶이. 그런데 Katy 할머니가 뭔가를 들고 왔다. 예전에 김치찌개를 끓이려는 그녀에게 빌려주었던 뚝배기.

"Susie! 특별한 선물이야."

뚝배기 뚜껑을 여는 순간.

짜잔! 거기에는 블루베리로 만든 머핀이 담겨 있었다! 갓 구운 블루베리 머핀이 뚝배기 가득. 우리가 함께 딴 그 블루베리로 만든 머핀이었다.

"농장에서 있었던 일... 너무 신경쓰지마. 하지만 알아줘. 모든 캘리포니아 사람이 그런 건 아니야. 적어도 데이비스는, 우리는 달라."

나는 머핀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달콤한 블루베리가 터지면서 입안 가득 퍼졌다. 그 어떤 머핀도 내 인생에 이보다 더 맛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잊을 수 없는 블루베리 머핀이었다.


7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눈에서 총기가 반짝이고, 무엇이든 배우려고 하며, 진정으로 타인과 다른 문화를 품으려고 노력하는 Katy.

억만장자가 아니어도, 대단한 지위가 없어도, 건강한 마음과 모험가의 호기심으로 늘 배우고 또 실천하는 삶. 이것이야말로 내가 꿈꿨던 미국의, 그리고 이민자의 나라 캘리포니아의 진짜 모습이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구나.'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통해 나는 비로소 "배우고 실천하는 삶"을 몸소 체험하고 배울 수 있었다. 정말 소중하고 귀한 인연이었다.


나는 그날 깨달았다. 진짜 용기란 거창한 게 아니라는 것을. 작은 차별을 못 본 척하지 않는 것, "왜요?"라고 물을 수 있는 것, 그리고 상처받은 누군가에게 머핀을 구워주는 마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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