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랑에 빠진 후, 사고 처리를 위한 수리점 탐방기
5월 말, 갑작스럽게 날씨가 더워졌다. 그늘은 시원하지만 햇살 아래에 있으면 참을 수 없이 더운, 데이비스의 여름이 시작된 것이다.
남편은 그 동안 휀더 라이너 없이 운전하면 큰일 난다며 계속 호들갑을 떨어왔다. 그걸 듣던 나는... 그냥 차가 잘 굴러가니 문제 없는 거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어차피 한국 들어갈 때 차를 팔아야 하는데 굳이 고쳐야겠어?"
"이거 큰일날 소리하네. 이대로 다니다가 돌멩이라도 들어가면 어떡하게?"
그래... 사실 남편의 말이 맞았다. 한국에서야 그럴 일이 거의 없지만, 미국에서는 길가에 타이어 뜯어진게 굴러다니고, 바람이 심하게 불때면 부러진 나무가지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가을이 오면 회전초(Tumbleweed)가 굴러다니기도 했다.
"귀찮지만, 고쳐두면 어차피 중고차 가격에 반영될거니까 돈 생각은 하지 말자."
남편의 마지막 설득까지, 그의 논리는 완벽했고, 결국 우리는 차를 수리하기로 결정했다.
처음 방문한 곳은 주변에서 추천한 로드샵이었다. Katy 할머니가 데이비스에서 수리 잘하는 곳을 잘 알 것 같아서 물어보았던 것. 무려 데이비스에서 30년 넘게 운영해 온 전통있는 수리점이었다.
방문해 보니 넓은 주차장에 깔끔한 대기실, 정돈된 작업장과 친절한 백인 매니저까지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혹시 보험처리 할 생각이신가요?"
매니저는 가장 먼저 '보험처리' 여부를 물어보았다. 일단 '아니요'라고 대답은 했지만 뭔가 찜찜했다.
"총 $2,000 정도 나올 것 같아요. Toyota 정품 부품으로 완벽하게 수리해드립니다."
매니저의 한 마디에, "좀 더 둘러보고 올게요"하고 발길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 남편은 엔진이나 주요 부품 교체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비싸냐고 투덜거렸다. 2,000불이라니, 나도 이건 너무 비싼것 같았다. 아무리 잘 고치는 곳이라고 해도, 기껏해야 보이지도 않는 부분인데 굳이 정품을 쓸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게다가, 왜 보험처리를 물어보았나 의구심이 들었다. 아마도 보험처리하면 더 비싸게 부르려는 속셈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에 방문한 곳은 남편이 google map 별점 보고 찾아온 로드샵. 라티노들이 운영하는 수리점이었는데, 처음 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처음 수리점과 달리 별도 주차장도 없이 길가에 수리를 기다리는 차들이 줄서 있었고, 대기실도 엄청 비좁았다. 한 손님이 상담하면 다른 손님들은 밖에서 기다려야 할 만큼. 하지만...
"음.. 휀더 라이너 뿐 아니라 앞쪽 범퍼도 교체해야 할 것 같아요. $1,300 정도 나옵니다."
What? 1,300불이면 된다고? 어떻게 이렇게 가격이 차이가 날 수 있는가 싶었다. 게다가 앞쪽 범퍼도 교체하는데도 더 쌌다.
"아, Toyota 정품이 아니라서 가능한 금액이에요. 중국산으로 교체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성능은 똑같아요! "
일단 견적을 받아온 후, 남편과 나는 커피숍에 앉아 진지한 가족회의를 했다.
"정품이 좋긴 한데..."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 부직포인데 싼 걸로 하자. 700달러면 한 달 렌트비 반이야."
사실 고민할 거리도 없었다. 바로 중국산 부품으로 하기로 결정.
결국 중국산 부품으로 결정. 그렇게 우리는 3일간 차 없이 지냈다. 다행히 DPNS도 여름방학이라 엘리를 데리러 갈 일이 없었고, 미리 코스트코에서 장도 잔뜩 봐뒀다. 남편은 Bar 시험 준비하러 자전거로 등하교. 데이비스가 자전거 도시라는 게 이럴 때 정말 감사했다.
'Stuck in a ditch' - 미국인들이 쓰는 이 표현처럼, 나는 미국 생활 내내 끊임없이 도랑에 빠졌다가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첫 도착 때 영어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해서 stuck in a ditch.
전쟁 터지고 환율 폭등해서 또 stuck in a ditch.
팔리지 않는 한국 집 때문에 stuck in a ditch.
제시와 페이지와의 갈등으로 stuck in a ditch.
남편의 갑작스런 Bar 시험 결정에 stuck in a ditch.
사라진 미국 박사의 꿈으로 stuck in a ditch.
하지만 그 때마다 매번 누군가가 옆에 있었다. Katy 할머니가, Teacher Becky가, Rick 할아버지가, 이름 모를 배관공이,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과 엘리가 곁에 있었다. 도랑에서 빠져나올 때마다 조금씩 더 강해졌고, 조금씩 더 미국이라는 땅에 적응해갔다. 완벽한 현지인은 되지 못했지만, 적어도 도랑에서 빠져나오는 법은 배웠달까.
그리고 그 고생 끝에는 항상 작은 보상이 있었다. 때로는 $12짜리 신선한 딸기였고, 때로는 인생 최고의 딸기 파이였고, 때로는 가족이 함께 웃는 순간이었다. 물론 그 보상이 $1,300짜리 수리비와 함께 온다는 게 함정이지만, 그것도 이제는 추억이다.
737일의 미국 생활. 우리는 계속 stuck in a ditch했지만, 결국 매번 올라왔다.
그리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와 이 글을 쓰는 지금 회고해보면, 결국 그 모든 도랑들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