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영어보다 용기가 먼저

놀이터에서 찾은 인연

by 유지니안

“Hi, Hello!”

목구멍에서 겨우 쥐어짜 낸 나의 어색한 인사에, 놀이터 벤치에 앉아있던 금발의 엄마는 잠시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답해주었다. “Oh, hi there!” 그 짧은 한마디. 거절당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온몸에 퍼지며, 나는 가까스로 다음 말을 이을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놀이터에 가는 것은 더 이상 절망적인 출근이 아닌, 나름의 목표의식이 있는 ‘미션’이 되었다. 나는 매일 다른 엄마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는 것을 스스로에게 부과된 과제처럼 수행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반갑게 맞아준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는 가벼운 눈인사로만 답했고, 어떤 이는 대화를 이어가기 부담스러운 듯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인사를 기다렸다는 듯이 반겨주었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너희는 어디서 왔니?”, “아이가 몇 살이야?”, “데이비스는 마음에 드니?” 같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15년 전 학생으로 처음 캘리포니아에 왔을 때 느꼈던 그 따뜻한 정, 낯선 이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도움을 주려 하던 그 친절함이 여전히 이곳에 남아있었다.

흔히 뉴욕을 비롯한 동부의 도시들이 효율성을 중시한 나머지 때로는 퉁명스럽고 개인주의적인 분위기를 풍긴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곳 캘리포니아, 특히 작은 소도시 데이비스에는 미국 서부를 개척했던 이들이 지녔던 특유의 개방성과 진취적인 DNA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어쩌면 낯선 이의 인사를 경계하기보다 미소로 답해주는 너그러움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모여들고 섞여드는 과정을 통해 체득된 그들만의 생존 방식이자 지혜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까. 어색했던 나의 인사는 이제 놀이터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엘리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놀이터로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떠듬떠듬 영어단어도 이야기하게 되었다. 나 역시 주기적으로 나오는 엄마와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거의 다 외우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묻고, 아이들의 나이를 이야기하며, 데이비스의 저렴한 식료품 가게 정보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섬과 같았던 나와 엘리는, 이제 서서히 현지인들의 대륙에 안착하고 있었다.




그 무렵, 우리에게 운명처럼 한 가족이 다가왔다. 우리 엘리보다 한 살 많은 만 3살 소녀, 페이지(Paige)와 그녀의 엄마였다. 활달한 성격의 페이지는 약간 낯을 가리는 엘리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자신의 장난감을 건네고, 같이 미끄럼틀을 타자며 손을 잡아끌었다.

페이지의 엄마 또한 내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 LA에서 데이비스로 왔는데, 근처에 시댁 식구들이 함께 살고 있어 속내를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를 애타게 찾던 중이었다고 했다. 새로운 곳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아이의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 하는 우리의 처지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SE-e0fc18ee-5db1-4dbb-bb4d-3a5f48c663d6.jpg?type=w1 서로 죽고 못 살던 페이지와 엘리


우리는 주말마다 함께 플레이 데이트(Playdate)를 하고, 다른 동네의 새로운 놀이터를 찾아다녔다. 서로의 집에 초대해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기나긴 오후를 함께 보냈다. 엘리와 페이지는 전쟁통에 떨어졌던 자매와 같이 서로를 살뜰히 챙겼다. 서로 완벽히 통하지 않는 대화 속에서도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그들만의 언어로 소통했다. 엘리의 얼굴에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꾸밈없는 웃음꽃이 피어났다. 얼어붙었던 내 마음에도 따스한 온기가 스며들었다. 고립의 시간은 그렇게, 찬란한 우정의 시간으로 채워져 가고 있었다.

SE-24cc9314-0e74-4edc-9639-c9b66479fe61.jpg?type=w1 왼쪽에서 3번째가 페이지, 4번째가 엘리


그러던 어느 날, 페이지의 엄마와 커피를 마시며 여느 때처럼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아이를 보낼 어린이집을 찾지 못했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그녀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아, 페이지는 ‘DPNS’에 다니고 있어! 엘리도 같이 다닐래?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는데 진짜 도움이 됐거든.”


DPNS (Davis Parent Nursery School). 부모들이 조합원처럼 참여하여 함께 운영하는 협동조합형 어린이집이었다. 비용이 저렴한 것은 물론, 무엇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엄마가 ‘보조 교사’로 수업에 함께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직 영어가 서툴고 분리불안이 남은 엘리에게는 그 어떤 비싼 사립 유치원보다 완벽한 환경이었다.

특히 페이지가 이미 그곳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더 큰 확신을 주었다. 엘리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라면, 적응은 문제없을 터였다. 나는 마침내 우리에게 꼭 맞는 동아줄을 찾았다고, 이 길고 어두운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미처 몰랐다.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그 어린이집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했던 인연을 잔인하게 끊어낼 비극의 시작점이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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