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텅 빈 집에 도착한 작은 기적

두 달 동안의 바닥생활을 청산하다

by 유지니안

2월의 어느 날이었다. 캘리포니아 땅을 처음 밟은 지 어느덧 두 달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남편은 학교에, 아이는 친구 페이지와 함께하는 놀이터에 제법 익숙해졌지만, 우리의 보금자리는 여전히 어딘가 모르게 낯설고 휑했다. 침대도, 소파도, 식탁도 없이 TV만 덩그러니 놓인 거실. 우리는 한국에서 가져온 퀸 사이즈 토퍼를 바닥에 깔고 잠이 들었고, 아이의 작은 프뢰벨 책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밥을 먹었다. 6개의 이민 가방에 꾸역꾸역 담아 온 최소한의 세간살이로 버티는 생활이었다. 평소라면 한 달이면 충분했을 이삿짐은 아직도 감감무소식. 코로나19로 인한 물류 대란 속에서 평소보다 세 배는 더 걸릴 것이라는 절망 어린 말에 우리는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쇼파없이 바닥에서 TV 시청 / 침대없이 토퍼에서 취침 / 책상없이 플라스틱 3단 서랍에서 공부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현대해운에서 카톡이 왔다. 우리의 짐이 드디어 LA 롱비치 항에 도착했고, 며칠 뒤 집으로 배송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 전화를 받던 순간의 안도감이란. 드디어 허리 아프게 토퍼에서 자지 않아도 된다. 카펫으로 인해 먼지가 풀풀 나는 바닥에서 TV를 보지 않아도 된다. 남편을 위한 책상도 드디어 온다. 프뢰벨 에듀테이블에 세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식판에다가 밥을 먹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2월 26일,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는 거대한 트레일러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구원이었다. 컨테이너 문이 열리고 현대해운 박스들이 하나둘씩 내려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수령해야 할 짐은 총 107개 박스. 어마어마한 양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포장이사. 하지만 미국에서는 소파, 책상, 침대, 식탁과 같은 "큰 짐"만 풀어주고 "작은 짐"들은 우리가 스스로 알아서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우리와 연결되었던 현대해운 팀장님하고도 다시 통화해 봤지만, 현지의 현대해운 정책 상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 원래 그렇다는데 우리가 어쩌겠는가. 그나마 큰 파손 없이 온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현대해운에서 온 인원은 총 4명이었는데 한 명의 한국인이 3명의 라티노들을 인솔하는 형태였다. 우리 짐을 잘 내려달라고 미리 음료수와 과자를 뇌물(?)로 바쳤다. 아울러, 미리 팁(tip)을 줄 수 있다고 넌지시 이야기했는데, 많은 동양인들이 팁을 주지 않았던지 인부들의 움직임이 한결 좋아졌다. 다만, 일부 우리가 하기 어려운 짐들도 같이 풀어줬으면 해서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우리는 고심 끝에 50불을 팁으로 지불하였다.


익숙한 우리 집 가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면서 텅 비었던 집에 온기가 도는 느낌마저 들었다. 상자를 열 때마다 잊고 있던 한국의 냄새가, 우리의 시간이 고스란히 배어 나오는 듯했다. 엘리는 자신의 책과 장난감들이 돌아온 것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고, 남편과 나는 말없이 서로를 보며 웃었다.

하지만 모든 짐이 제자리를 찾았을 때, 안도감과 함께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삿짐을 보내지 말 걸.’ 한국의 집은 기약 없이 비어있었고, 이 많은 짐을 부치는 데 쓴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어쩌면 미국에서 저렴하게 중고 가구를 사는 편이 훨씬 현명했을지도 모른다.




드디어 풀세팅된 우리 집. 마치 다시 한국에 있는 것 같은 묘한 느낌 때문일까. 한국에 있을 때 주말 점심마다 먹었던 김밥과 떡볶이가 먹어보고 싶어졌다. 한국에선 쉽게 먹었던 음식들, 하지만 여기서 제대로 된 김밥과 떡볶이를 먹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데이비스의 작은 한인 마트, Kim's Mart에 파는 김밥은 마치 편의점 김밥과 같았고, 떡볶이는 더더욱 그러했다. 따라서, 마침내 완전한 ‘우리 집’이 되었음을 자축하는데는 주말마다 즐겨 먹던 김밥과 떡볶이만한 것이 없었다.

"여보, 마트에서 김밥이랑 떡볶이 재료 좀 사올래?"


나는 서둘러 소매를 걷어붙였다. 밥솥에 밥을 안치고, 시금치를 데쳐 소금과 깨소금으로 조물조물 무치고, 가늘게 채 썬 당근을 기름에 달달 볶았다. 그 향긋한 기름에 계란 지단을 부쳐내니 고소한 냄새가 온 집에 퍼져나갔다. 김발 위에 김을 올리고, 소금과 참기름으로 간을 한 고슬고슬한 밥을 얇게 폈다. 그 위에 색색의 재료들을 가지런히 올리고, 두 손에 힘을 주어 단단하게 말아 올렸다. 겉면에 참기름을 살짝 바르자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옆에서는 남편이 떡볶이를 만들었다. 트레이더 조에서 사 온 떡국떡을 물에 불리고, 고춧가루를 듬뿍 풀어 붉은빛을 냈다. 진간장과 굴소스로 깊은 맛의 뼈대를 세우고, 물엿 대신 넣은 메이플 시럽이 달콤함을 더했다. 양배추와 대파, 어묵을 숭덩숭덩 썰어 넣고 보글보글 끓여내니, 매콤달콤한 향기가 김밥의 고소함과 어우러져 군침을 돌게 했다.

20220617_122713.jpg
20220422_174141.jpg
처음 만들었던 김밥. 밥이 너무 많았다. / 남편이 만든 떡볶이. 한번에 때려박았지만 맛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식탁이 차려졌다. 비록 완벽한 레시피는 아니었지만, 그 맛은 세상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훌륭했다. 우리는 이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눌 친구가 생기기를, 언젠가 이 집에서 미국 친구들에게 진짜 한국의 맛을 선보일 수 있기를 소망했다. 캘리포니아의 햇살 아래,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데이비스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keyword